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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나는 누구인가

나의 질문, 나의 답

by 격암(강국진) 2020. 12. 2.

20.12.2

10년이나 20년전의 글들을 다시 읽다보면 저는 지난 십수년간의 여러 글들이 어떤 길을 따라왔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것들은 겉보기에 여러가지 길들을 따랐으나 결국은 초기 질문이라는 같은 원인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저의 어릴 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그 초기 질문을 한마디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세상의 본질적 근본적 질서를 알지 못한 채 지엽말단 적인 지식을 외우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인생이란 마치 게임의 법칙을 모르면서 하는 게임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자 마자 삶을 살기란 게임을 하고는 있는데 그 규칙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대개 우리는 우리를 키워주는 부모의 행동을 그냥 따라합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규칙을 따르는 것인지 모르면서 그냥 같은 상황에서는 똑같이 행동한다는 식이죠. 

 

그런데 그게 살다보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내 생각에는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같은데 부모나 주변의 선생님이나 형이 다르게 행동하면 그냥 따라하기 힘들죠. 그럴 때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종종 어리석은 어린애 취급을 받거나, 이해하지 못할 조각난 문장들을 설명이라고 받게 됩니다.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 그런 답답함은 경험에 의해 쉽사리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 부터 두가지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는 외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해하지 못할 일만 쌓여가고 저는 영 세상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때문에 저는 자연히 일종의 진리라고 할 지식을 전해줄 책이나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의 법칙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고, 내가 나이가 들어서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고 나자 더 이상은 그냥 참지 못하고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저는 기성세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결국 저도 나이가 들면서 한가지 비밀을 알게 되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이란 어릴 적부터 내 앞에서 내가 어리석다는 둥, 너는 그것도 모르냐는 둥 잘난 척 했던 사람들도 실은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는 겁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면서 그것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아는 척했거나, 실은 그다지 일관성도 없고 깊이도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그다지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저는 철학책따위를 뒤적이며 답을 찾았지만 꽤 오랜동안 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답이 없다기 보다는 제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본질주의자라고 포퍼가 부른 사람들처럼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이라고 하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본질을 찾고 그 답에서 좋은 대학생활을 하는 법을 찾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한 것이죠. 

 

그런데 이런 사고 방식은 실제로 해보면 굉장히 절망적입니다. 왜냐면 수학을 제외하면 사실 어떤 본질주의적인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절대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바보라서 답을 찾았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어느날 좋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해 봅시다. 젊고 미숙한 제가 알면 뭘 얼마나 알며, 경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제 지식과 경험으로 그런 질문에 대한 최종적 답이라고 믿을 만한 것이 나오지는 않지요. 그래서 저는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 질문과 관련이 된다싶은 책과 자료를 읽고 사람들의 조언이나 강의도 듣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참고해야 할 것은 끝없이 늘어갑니다. 그래서 금방 상황은 분명해 지는데 저는 결국 영원히 그 참고자료들을 다 읽고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겁니다. 

 

이런 접근은 마치 누군가가 영어라는 언어를 처음 만났는데 영어를 공부하겠다며 프랜드라는 단어를 배운 상태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멍청하지만 성실한 친구는 프랜드가 정확히 뭔지를 배우고 나서 다음 단어를 공부하겠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겁니다. 그런데 영어의 프랜드가 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서구 사회를 전부 다 알고, 영어를 이미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엉터리 영어 학습법이 통할 리가 없죠. 

 

철학적으로 삶이 부조리하다는 말은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조리라는 말은 본래 영어로는 absurdity나 irrationality로 표현되는 말입니다. 즉 터무니없음이나 비합리적임같은 단어들이죠. 부조리라는 한국말을 가지고 고민하면 그 뜻이 다르게 이해되기 쉽지만 영어단어를 보면서 생각하면 결국 삶의 부조리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데 이 세상은 실질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것의 의미는 그것이 그와 관련된 것과 가지는 관계와 문맥에서 나오게 됩니다. 당신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기말고사를 잘 보고 1등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런데 그 학교나 그 학교가 포함된 나라라는 문맥 자체를 무시할 정도의 일이 생기면 그런 일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세상이 서양학문을 중심으로 여긴다면 유교경전외우기 1등을 하는 게 중요할까요? 나라에 전쟁이 터지고 외적이 이 나라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지금 그 학교 성적이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질문할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의 최종적이며 객관적인 답은 절대로 인간이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주를 아는 사람이 동서남북이라는 방향이 우주적인 의미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계의 북쪽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좁쌀같고 우물같은 작은 세계를 온 세계로 여기고 그 안에서 뭐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요 의미로 삼을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그게 필요하기 조차합니다. 그게 삶이라는 게임의 한가지 특성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모른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진다고 더 잘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살고 때로 우리의 인식의 지평이 크게 확대되고, 우리의 삶이 무너져서 지난 긴 시간동안 그 안에서 아둥바둥댔던 것이 적어도 대부분 허무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규칙도 모르면서 게임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도 뛰어야 하는 겁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말입니다. 그래야 경험이 생기고 학습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 자신도 잘 모르던 저의 질문은 다르게 표현하면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같은 질문이었죠. 어리석게도 그렇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저는 인생의 의미를 알고 나서 인생을 살고,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나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을 저 자신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죠. 그러니 아무리 찾아도 공부할 것만 많고 지치기만 할 뿐 답이 있을리가 없었죠. 산다는 일을 전혀 잘 못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저는 대단한 해방감을 느꼈고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일들에 대해 나름의 개인적 의견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죠.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는 어디에 서 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자주 제가 쓴 글을 보면서 저도 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군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고 남의 글도 읽지만 제 글도 다시 읽습니다. 최근에는 철학을 위한 여행이라는 옛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숙한 예전에 썼던 이 글을 보니 그리운 생각도 납니다. 그리고 예전의 제가 생각도 납니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고자 오늘은 이 글을 썼습니다. 언젠가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도 지금의 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제가 또 읽게 될 날이 올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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