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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를 떠나며

by 격암(강국진) 2023. 1. 31.

23.1.31

전주를 떠나기로 했다. 8년만의 일이다. 이제 한달 후면 나는 전주를 떠나 오송이라는 곳에 가게 된다. 보통은 이사가 일때문이지만 그런 것은 아니니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내가 어쩌다가 전주를 떠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정리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이유들이다. 

첫번째 이유, 새로운 곳이 매력적이라서. 

내가 전주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이미 전주에 8년이나 살았고 새로운 장소가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여전히 전주를 좋아하며 집을 찾다보니 어쩌다 전주를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전주가 아주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전주의 장점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틈틈히 이야기했으므로 길게 말하지는 않겠다. 전주는 문화와 역사가 있고, 대도시의 번잡함이 없으며, 맛집과 좋은 카페가 많고, 도서관이 훌룡하고 전라도의 여러 관광지를 쉽게 갈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곳에서 조금 살다가 전주로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8년을 살고 보니 익숙해졌다. 새로운 자극을 원하게 되었다. 


사실 상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전주만 해도 수도권의 변화에 비하면 변화가 느리다. 한옥마을은 발전이 멈추고 퇴보하는 느낌조차 든다. 한옥을 보고 싶다면 한옥마을로 가라고 할 분위기는 아니다. 서울에 있는 은평한옥마을이 차라리 더 멋지다. 이케아나 코스트코같은 대형매장은 전라도에 없다. 이것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정당화할 움직임이 충분히 있는 것도 아니다. 전주도 사방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데 이런 도시에서 이케아나 코스트코는 도시 정서를 해친다고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전통의 향기가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첨단의 느낌도 없으니 뭔가 허송세월하는 느낌이 강하다. 

두번째 이유, 좋은 집을 못찾아서.

같은 집에서 8년이나 전세를 살고 나니 안 그래도 집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신축일 때 들어온 집은 이제 슬슬 낡은 티를 내기 시작했는데 내 집이 아니니 내가 고치기도 그렇고 주인도 내가 살고 있으니 고칠 수 없어서 불안했다. 그래서 우리를 내보내고 수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전주를 떠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자연스레 전주의 여러 집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좋은 집이라는 게 시장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결국 오송의 집으로 가게 된 것이다.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답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이었다. 지역도 물론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며, 좋은 집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좋은 집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이것도 긴 이야기가 필요한 주제이지만 짧게 이야기하면 싸고 넓고 구조에 대한 고민이 많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루하지 않은 집이다. 물론 집에 대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단열이 좋다던가, 벽 마감재가 훌룡하다던가 수납이 좋다던가 하는 것들은 그냥 기본이다. 이러니 일단 아파트가 탈락이고 단독주택도 탈락이며, 낡은 빌라들도 탈락이다. 게다가 내게 있어서 좋은 집이란 비싼 집이 아니다. 이건 무엇보다 내가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지만 좋은 집에 살면서도 집에 얽매이기 싫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투자의 이유가 크지만 전재산이 8억이라면 4억쯤 융자를 내고 10억짜리 집에 산다. 그러니까 집의 가격이 전재산보다 더 크다. 난 이런 건 싫다.  

이러니까 집고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까다롭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와 주거문화를 함께 보는 시각도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저렴하고 좋은 집을 많이 가진 지역이 사람들을 붙잡는다. 사람들이 어떤 곳에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직장과 교육이다. 이건 지금도 사실이지만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재택근무의 시대이며 삶의 만족도를 추구하는 시대이고 특히 고령화로 인해 은퇴자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아이를 다 키우고 은퇴한 사람들은 어디에 살까? 그들의 삶의 만족도에 크게 기여하는 부분이 집이다. 싸고 좋은 집이 있다면 이왕이면 거기서 살아 보고 싶을 것이다. 남는 돈으로는 다른 일도 할 수 있고, 집이 좋으니까 그 안에서 행복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파트가 좋은 집이다. 그러니까 아파트도 필요하다. 하지만 주거의 미래를 생각하는데 그저 아파트가 답이라는 식으로는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주인세대는 단독주택이 아니지만 넓은 야외 베란다 공간이 있어서 작게 정원을 꾸밀 수도 있고 야채를 키울 수도 있으며 바베큐를 할 수도 잇다. 보통 옥탑을 포함해서 2층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손님대접도 쉽고 그게 아니라도 부부가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떨어져 있기 좋다. 아파트는 사생활이 안좋기 때문에 은퇴한 부부가 하루종일 시간을 같이 보내면 오히려 껄끄럽다. 단독주택은 비싸고 보통 너무 외진곳에 있기 쉽다. 아뭏튼 여러가지 좋은 집이 있는 지역이 그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큰 기여를 하지 않을까?

세번째, 커뮤니티 기능이 떨어져서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은 꼭 전주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곳에 가면 꼭 더 좋을거라고 많이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우리 부부가 이 지역의 사람들과 좀 더 강하게 결합하여 살았더라면 이사를 나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이유를 넣은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지역이 직장과 교육 이외에도 매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 시대인데 이 커뮤니티 기능이라는 것은 주거 환경과 함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큰 요인은 이웃과의 인간관계다. 

나는 외롭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개인주의적이다. 하지만 내 아내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전주를 떠나고 싶다고 말한 아내의 주요 요지도 이것이었다. 나의 성향상 이 지역 사람들과 강한 연대를 가지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우리는 전주에서 8년을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 여기서 두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따라서 학교의 학부모 모임 같은 것에도 정기적으로 참석 했으며 영화제를 포함한 자원봉사일도 나가고는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치고 아내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 살 때에도 이정도의 시간과 환경에서는 장기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친구를 구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떠나기가 쉬운 것이다. 아마 인간적 유대가 더 강했더라면 오히려 아내가 이 지역을 떠나는 것에 반대했을 것이다. 

일단 커뮤니티 기능이라고 쓰기는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필요하다. 커뮤니티 혹은 인간관계는 오늘날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특히 우리나라 노년세대의 커뮤니티는 젊은 세대의 커뮤니티와 전혀 다르다. 집단주의적인 노년세대는 말하자면 공사구분이 안되고, 니것 내것을 구분하지 못하며, 쉽게 호형호제하는 식의 가족문화로 들어가는 일이 많다. 또한 노년세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대개 취미가 다양하지 않고 경험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평생 직장에서 일만했으며 술먹고 돈이야기하는 식으로 대화의 주제가 단순하고 조금만 친해지면 부담스런 부탁도 쉽게 할 것같은 그런 분들이 한국의 노인세대에는 많다.

그런데 젊은 사람비중이 높은 수도권과는 달리 지방으로 오면 노인 비중이 높아진다. 어디 한적한 작은 시골에 가서 살겠다고 한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이 노인 문화에 적응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흔히 시골에 가면 텃세가 세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니것 내것 구분하고 살던 도시의 사람들은 종종 시골 노인들의 커뮤니티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문화를 정겹고 좋은 거라고 할 사람도 있을테지만 내가 보기에 만약 그 지역이 젊은 인구를 원한다면 이런 커뮤니티는 대개 장벽이 된다. 

나는 노인이 아니지만 젊지도 않다. 그래서 가끔 수도권에서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 번개같은 식으로 모여서 행사를 하고 흩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도 잘 적응이 안되기는 한다. 서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앱같은 걸로 연락해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행사가 끝나면 또 산뜻하게 헤어진다고 한다. 만나면 나이가 뭐냐, 뭐하는 사람이냐 물어보고 금방 형동생하면서 죽을 때까지 알고 지낼 것처럼 구는 노년세대와는 너무 다르다.

문화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젊은 세대의 커뮤니티고 따라서 미래의 커뮤니티다. 그래서 도시는 이런 인간적 접촉을 늘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고민해야 한다. 인간적 접촉을 위한 서비스, 인프라가 필요하다. 노인세대를 위해서도 그걸 마련해야 하지만 젊은 세대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그래야 그 도시는 더 매력적이 될 것이다. 이는 젊은 사람들을 유출시키기만 하는 지방도시에서는 더 중요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공감대는 그리 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 말한대로 지방으로 갈 수록 노인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젊은이들의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점점 더 심화될지도 모르겠다. 

맺는 말

이건 전주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다른 도시 특히 지방도시라면 다 가지는 문제이며 오히려 전주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는 좋은가. 아니다. 나는 지나치게 사람많고, 주거비는 비싸며, 교통은 막히는 도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나 문제는 있다. 다만 매력적인 지역, 사람을 끌어모으는 지역이라는 측면에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삶의 질은 언제나 좀 더 개선될 법도 하다. 예를 들어 좀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시에서 설계 같은 부분에 대해서 투자를 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집구경을 하다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런 건 정말 대충 살자고 지은 집같다는 느낌을 주는 집들이 많다.

이사는 이제 한달이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주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전주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내고 가자고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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