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인간이 지금정도 사는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여러가지를 댈 수 있겠지만 그 이유들은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문명이란 결국 협동과 공동체에 대한 것이지 누군가 개인이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실 내가 아는 한 가장 유약한 동물이다. 성인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성인은 보통 20세 이상을 의미하는데 유년기가 20년이나 되는 동물이 지구상에 어디 따로 있겠는가. 유년기가 길다는 것은 혼자서는 제대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인데 무려 10년 20년을 무력하게 성장하는 동물이라는 것은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뱃속에서 10여년을 임신상태로 지내는 동물이랄까. 

 

이 사실은 다른 동물들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인간이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며 어떤 의미에서 개체가 아니라 군집으로 하나의 생명으로 다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몸에 있는 하나의 세포는 몸바깥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다. 그래서 그건 하나의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다. 인간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걸 생각해 보면 개체성이 아주 흐린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산다는 일이 참 어렵다. 서너 사람과 같이 사는 걸 가족이라고 한다면 5천만명과 같이 사는 것은 국가다. 가족도 국가도 결국 사람이 같이 사는 일에 대한 것인데 그게 쉽지 않아서 지금도 수 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책이 그것에 대해서 만들어 지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생각하면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란 말은 보편적인 단어로 모두를 포함한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면 우리 모두를 이렇게 하나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폭력이 되기가 쉽다. 차이가 나는 대표적인 것이 재산이니 그걸 예로 들면 여기 모임이 있다고 하자. 거기서 돈을 모아 회식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보통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 모임이 대기업총수들의 모임이라면 한끼에 수십만원하는 식사도 별거 아닐 것이다. 그들은 모임에서 그 정도 가격의 음식을 먹는 일에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월급이 2백도 안되는 월급쟁이가 끼어있다면 아무 생각없이 결정한 회식 자리가 그 월급쟁이에게는 생계에 위협이 될 정도일 것이다. 

 

이런 예를 들으면서 그러니까 부자는 부자끼리 놀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에 말한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포기하고 살아도 된다면야 무슨 문제이겠는가. 그게 아니니까 문제다. 나라에서 법을 정한다. 그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인간, 사람, 시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인간들은 모두 서로 다르지 않은가? 뭐가 공평하고 옳은 것일까? 예를 들어 어쩔 수 없으니 모두가 군대를 가라는 법이 있지만 정말 모두가 군대를 간다는 법은 공평한거 맞나? 모두가 교통신호를 어기면 같은 범칙금을 낸다는 것은 공평한거 맞나? 그렇다고 해서 재벌 회장이 회사돈 1억을 쓴 것은 푼돈이니 벌을 줄 일이 아니지만 가난뱅이가 몇만원짜리 식사를 무전취식한 것은 큰 벌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일주일에 5일을 일하고,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한다는 기준은 누구에게 평범한 것인가? 요즘에는 식당에 가면 터치 스크린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곳이 많다. 그런 서비스는 공평한가? 기계치인 노인들에게는 차별적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딘가에 평범의 선을 긋는다. 그 선을 긋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그 선을 엉뚱한데다 그을 때도 많다. 남녀가 결혼하면 아파트 전세금정도는 있어야 하며 예식장에서 수백명 불러서 식을 올리는 것 정도는 평범한 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과연 오늘날 평범한 한국인 남녀커플이 평범한 결혼을 정말 무리없이 할 수 있는거 맞을까? 그거야 말로 월급 2백짜리 월급쟁이가 재벌들이나 연예인 흉내내는거 비슷한 거 아닌가? 이러니까 평범이나 보편이라는 단어는 폭력이 되기 쉬운 것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사람은 많은 측면들에서 서로 다르다. 같은 행동을 해도 그 해석도 보상도 처벌도 결코 같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를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고 깊이 고민해도 절대 그걸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감수성과 지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래서 하다못해 무슨 국회의원 같은 것이 아니라 친목계나 노인정 총무를 해도 사람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사람에 대한 무한한 희망으로 들떠 있던 이상주의자가 사람에게 실망해서 완전히 그 반대로 행동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마 정치뉴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국민에게 실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국민이 개라는 국개론같은 말이 돌아다니겠는가. 

 

계몽주의적 이상은 이게 다 올바른 지식이 퍼지지 못한 것이 문제이니 널리 보편적 지식을 퍼뜨리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이상도 사실 어느 정도는 보통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이 되고 전체주의가 되기 쉽다. 이런 쉬운 지식을 왜 못받아들이냐고, 이런 좋은 법을 왜 못 받아들이냐고 화를 내지만 세상은 한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진보적 이상주의자들의 생각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순해서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된다. 당연한게 아니다. 

 

이 함께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터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궁극의 전쟁터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연결되는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표적인 것이 언어다.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무의식중에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풍경을 바꾼다. 누가 고마운 사람인지, 누가 악당인지를 결정한다. 어휘력이 떨어지고,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편안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언어는 그걸 쓰고 퍼뜨리는 사람에 의해서 고쳐진다. 나는 보편적인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 인간의 개성을 없애기에 비판적이지만 좋은 글을 함께 읽게 하는 공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좋기 때문이고, 좋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데 있어서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면 저질 인터넷 사이트 같은 곳에서 저질의 글만 반복해서 읽어서는 이상한 망가진 말들만 쓰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무슨 무슨 노, 노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고, 한남이니 김치녀니 같은 멸칭도 자주 보인다. 문맥적으로 말도 안되는 곳에서 빨갱이운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같은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돈버는 법이나 자기 계발서에는 관심이 있지만 아름다운 글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오늘날의 서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이 인기를 얻는 것도 아니다. 바벨탑의 전설은 높은 탑을 쌓던 사람들이 서로 언어가 달라져서 망한다고 말한다. 이건 꽤 상징적이다. 사회가 그 언어가 분열되어 쓸데 없는 싸움으로 결국 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희망적인 면을 말해보자면 그래도 한국은 세계적으로 컨텐츠 강국이라는 것이다. 자기 나라 영화와 드라마가 자기 나라 시장을 지키고 수출도 되는 몇 안되는 나라다. 이 말은 어떤 컨텐츠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공유는 결국 언어와 철학의 공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한국인의 눈으로 본 세상을 한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불안한 흐름이며 그나마도 세대별로 분열이 일어나는 것같아 보이는 것이라도 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나는 지난 1년간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에 빠져 살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대안적 삶을 제시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고 자유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같은 기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개 물질적이고 산업적인 것에 주목하지만 나는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언어와 철학이 될 수 있고 그래야만 진짜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다고 믿는다.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게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라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추구해야 올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발전이 멈춰버릴 거라고 믿는다. 

 

결국 인공지능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궁극에는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사는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사이를 잇는 새롭고 훌룡한 매개체가 될 때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 그때는 남북이 나눠서 쓸데없이 싸우고,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눠져서 싸우는 이런 일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도 전화기는 쓰고, 인터넷도 쓴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못쓴다. 그들이 진정으로 개방되면 국가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중국도 이러고 있다. 인공지능은 더 큰 격차를 만들 것이다. 제대로 써서 그걸 쓰는 사람들의 네트웍 속으로 들어오던지 아니면 망해서 사라지던지의 양자택일이라는 점이 훨씬 더 분명해 질 것이다. 나는 이런 힘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퍼져서 좀 더 좋은 세상이 오게 될 것을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