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21
얼마전에 저임금 노동자의 유입이 위험하다는 글을 썼는데 그에 대한 댓글을 하나 읽으면서 나는 새삼 한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국가의 가장 큰 자산은 대중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의 리더나 귀족이나 기업가나 지식인이 사회를 주도한다고 생각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쉽게 대체가능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이는 문맥의 혼동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내가 대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뿐만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긴 세월동안의 진화를 거친 문화적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 집단을 말한다. 즉 한국으로 치면 한국어를 쓰고, 한국 음식을 먹고 만들며, 한국의 주거 문화에 익숙하고, 한국의 음악과 미술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에 익숙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와 문화의 총합적인 것을 대중이라고 할 때 이 대중은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조선왕조실록을 글자수로 따져서 만자쯤 아무 글자로나 바꿀 수 없고, 고전이 된 소설의 가치를 단순히 페이지숫자로 따질 수 없듯이 한국인 노동자가 부족하면 외국인 노동자 천만명쯤 불러오면 된다는 생각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말하는 대중이 가진 지능, 윤리, 문화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백마리의 늑대나 양은 그냥 마릿수로 셀수 있지만 인간은 그런게 아니다. 인간의 뇌안에 있는 뇌세포가 그냥 뇌가 되는게 아니라 그 뇌세포들의 연결이 인간의 지능을 만들어 내듯이 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는 그 대중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지능이다. 따라서 그걸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크나큰 낭비가 된다.
이는 물론 소프트파워를 강조하는 시각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가, 영어로 말하고 있는가라던가, 한국인들이 어떤 종교를 믿는가 하는 것은 초등생의 눈으로 보는 논리적 관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러나 문화적 파급력에서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소프트 파워란 바로 그 문화적 힘이 군사력이나 경제력 이상으로 강력할 수 있음을 말하면서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조선 이전의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류도 없다. 다른 무엇보다 한글의 힘이 그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동의 하는 사람들 조차도 정치경제기술분야에서는 몇몇 정치가나 몇몇 과학자 혹은 몇몇 기업가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단 한명의 정치가가 있으면 그 나라는 잘 될거라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몇명만 있으면 과학이 크게 발전할 거라는 것이고,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기업가 몇명만 있으면 한국의 산업은 크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히 쓸 수 있는 자원이 있을 때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가를 결정할 때 영향을 준다. 과학발전을 위한다면서 유명 과학자 몇명 불러오는데 자원을 다쓰자는 생각따위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말하자면 프로야그 리그가 없어도 이승엽 3명만 있으면 혹은 MLB의 유명 선수 몇명만 있으면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최고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같다. 이게 옳을까? 아니 반대다. 환경이 안되면 스타는 힘을 쓰지 못하고, 반대로 환경이 만들어져있으면 스타는 사실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아인쉬타인이 없었어도 상대성 이론은 누군가가 발표했을 것이고, 스티브 잡스가 없었어도 같은 일을 하는 스타 기업가는 누군가 미국에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많은 직종들은 매우 전문화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천재는 그 사회에 크게 의존하면서 성장하고 기능한다. 뉴튼이 자신은 그저 거인의 어깨위에 앉아 있다고 말했던 17세기에도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20세기나 21세기에는 이런 말이 더더욱 사실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배경에서 동떨어져서 홀로 존재하는 천재란 사실 21세기에 살아남을 수도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는 것이다. 메시가 한국에 와서 평생산다고 갑자기 한국축구가 세계정복을 하게 되는게 아니다.
다시 프로야구 리그로 돌아가 보자. 이 경우에는 우리가 왜 그런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로야구 리그라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야구 경기장이나 운영 단체, 운영 관행, 유소년 야구팀들, 야구 팬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가 만들어 낸 의미 같은 것들의 총합을 말하는 것이다. 선동렬같은 전설적인 투수에 대한 기억같은 거 말이다. 이런 것들은 하루 아침에 어떤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천재들이 이런 배경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배경이 존재할 때 천재의 등장은 오히려 필연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산이 바짝 말라 있을 때 일어난 산불을 모두 그걸 시작 시킨 담배불 하나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은 문맥에 따라 옳기도 하고 전혀 틀리기도 하다. 산이 바짝 말라 있다는 사실을 기정 사실화 했을 때는 담배불 조심을 하라는 경고는 당연하고, 담배불로 산불을 일으킨 사람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나라의 산은 늘상 말라 있고, 저 나라의 산은 늘상 촉촉할 때 건조한 나라에서 산불이 나는 이유를 저 나라 사람들이 담배불을 함부로 다뤄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문맥에서는 산이 말라 있는 나라에서는 산불이 나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따라서 과학발전의 역사를 말할 때 아인쉬타인의 아버지가 결혼을 안해서 아인쉬타인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라는 식의 말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프로야구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프로야구가 이렇다고 하면 이해를 하면서도 정치니 경제니 과학이니 기술이니 하는 분야에 이르면 사람들은 종종 다시 그 영웅론으로 돌아간다. 단 하나의 행동, 단 한명의 리더가 모든 일을 했다거나 모든 일을 저질렀다는 해석을 문맥을 무시하고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야구는 매우 복잡하고 긴 준비가 필요한 것인데 경제나 정치나 과학이나 기술은 그보다 간단하고 쉬운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면 20세기 이래 가난한 나라였다가 한국만큼 경제성장을 한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 이에 대한 반례가 있다고 한들 그게 몇나라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박정희니 이승만이니 하는 사람을 들이밀면서 그분덕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안타깝다. 여기에 대해서 이병철이나 정주영같은 기업가 몇몇을 들이대는 사람들은 안타깝다. 한국의 성장은 한국인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물려 받은 문화 속에 있던 것에 힘입은 바가 가장크다. 그걸 잊고 한국인이 한글을 쓰건 영어를 쓰건 무슨 상관이냐고 하고, 조선을 그저 잊혀져야 할 지옥처럼 말하는 사람은 안타깝다.
한국이 자동차를 만들고, 반도체를 만들고, 핸드폰을 만들기 전에는 한국이 그런 걸 만들 수 있을리가 없다고들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일단 한국이 그걸 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그거야 이러저러한 것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할 수 있는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에 가서 새마을 운동같은 걸 좀 하면 그 나라도 금방 한국처럼 부자될거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의 가치와 존재를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깔아도 그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차를 팔아도, 핸드폰을 팔아도, 그걸 사용하고 비판하는 사용자가 있어야 한다. 영화를 만들면 그것을 소비하고 비판하고 좋은 영화를 알아주는 대중이 있어야 영화산업이 되는 것이다. 한류가 성공하자 수없는 사람들이 국가 정책에 의해서 성공했다는 말을 했다. 참으로 한심한 의견들이다. 문화 수출 정책이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다는 말이며, 돈이 성공을 결정한다면 돈은 부자나라가 더 많이 쓰는데 상대적으로 작고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세계속에서 문화산업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는가?
답은 대중에게 있고 우리는 이 대중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이 대중이란 것이 고정된 것이고, 이민은 절대 반대한다는 그런게 아니다. 우리는 이 대중을 오히려 거대한 인공두뇌같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이미 엄청난 양의 정보가 누적되어 있고 지금도 빠르게 정보를 더 누적시키고 있다. 그러니 변화는 필연적이다. 좋은 이민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수단 중의 하나다. 하지만 변화가 아니라 파괴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 정체성을 아무 생각없이 파괴하는 일이 바로 그 인공두뇌의 파괴다. 이걸 잊어버리면 우리는 프로야구 리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을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착각하기 쉽다. 프로야구를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이런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21세기는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져 있는 망의 세상이다. 망보다 중요한 스타는 없다. 망이 스타를 만든다. 우리는 조금씩 최적화를 해가면서 한발 한발 전진할 뿐이고, 혁명적 변화가 온다고 해도 그건 건조한 산처럼 준비된 바탕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혁명을 일으킬 결정적 담배꽁초를 찾는다거나 그런 담배꽁초를 수십개 만들어 보겠다는 식의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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