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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보편복지는 누가 반대하는 것일까?

by 격암(강국진) 2024. 1. 6.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반복되는 논쟁이 있다. 그건 바로 보편복지에 대한 것이다. 내가 말하는 보편복지란 국민 모든 사람에게 같은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사건은 현 서울시장인 오세훈이 이전에 서울시장이었던 시절에 벌어졌던 무상급식 논쟁이었다. 우리는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해야 할까 아니면 급식비를 낼 가난한 학생들을 찾아서 그 아이들에게 보조금을 줘야 할까? 그도 아니면 충분히 부자인 사람들을 골라내서 그들을 빼고 나머지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받아야 할까? 이미 무상급식이 주어지고 낮은 출산률로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도 식상해진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무상급식하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직을 걸고까지 투표를 진행했던 오세훈의 행동은 어처구니가 없으며 이 문제가 단순히 무상급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 바닥에 깔린 철학의 문제, 사상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비슷한 논쟁은 코로나 시절에 보조금 지금문제로도 벌어졌다. 과연 코로나 지원금은 국민 개개인을 살펴서 그 필요에 따라 지급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모든 국민이 같은 금액을 지불받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해서 국민들이 모두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의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대학 등록금 무료화는 괴멸적인 수준의 출산률을 보았을 때 한국이 해야 할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학자금 융자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정도로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으니 그게 최소한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대학 등록금이란 사실 애초부터 대학의 기능을 생각해 보면 불합리한 면이 있다. 지금의 대학은 연구기능이 크게 강조되는 곳이지 교육기능이 강조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도 연구 업적으로 뽑으며 연구는 학생들 교육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이 든다. 대학들은 대학원에 진학할 학생이 없어서 난리다. 국가와 기업은 물론 훌룡한 연구결과를 원한다. 그런데 왜 대학등록금 같은 것으로 국민들을 괴롭히고 공부에 뜻을 버리게 하는가? 의대같은 곳이 아닌데 대학을 졸업하면 그 4년동안 들인 돈을 벌 수는 있는가? 9급공무원의 인기가 줄었지만 요즘도 그것이 여전히 인기인데 9급공무원은 고졸도 시험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상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은 국가라는 것을 가족의 연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도 들어난다. 가족은 대개 작은 수의 사람으로 이뤄져 있고 때문에 가족들은 서로 각자의 사정과 입장을 살필 수 있는 상황에 있다. 그러니까 큰 딸이 저 번에 막내를 위해서 희생했다면 그걸 기억해 두었다가 이번에는 그것을 보상해 준다던가,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이 가족 중에 누구인지를 알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을 모두가 돕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적이다. 작은 가족은 대개 가장이라 불리는 리더가 있는데 그 리더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은 가족들을 끊임없이 살피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내의 일이 형평에 맞게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누가 양보했고 희생했는지, 누가 힘든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대한 국가나 거대한 기업이 이런 가족윤리나 규칙의 확대속에서 유지될 수 있을까? 누가 세상을 두루 살펴서 균형을 맞춘다는 말인가? 그 사람이 예술이나 과학이나 프로스포츠나 기업이나 지역 개발이나 역사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날 수가 있는가? 대통령이 모든 국민을 두루 직접 살펴서 정의를 찾아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본인이 힘든 것같은가? 본인이 억울한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는 나보다 힘든 사람이 우글대고 더 억울한 사람들이 잔뜩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는 대통령이 꼭 공평하게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방대한 규모의 관료조직, 관리조직에게 넘겨지지만 방대한 조직을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부패하지 않고 불공평하지 않은지는 어떻게 아는가? 그러니까 또 이번에는 그들을 감사할 조직도 필요해진다. 그들이 정말 공평하게 일할까? 그들을 유지하게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운영비가 필요할 것인가. 이 문제때문에 불우이웃 돕기 성급따위를 모아서는 그 대부분을 조직에 있는 사람들의 인건비로 쓰고 돈 자체는 불우한 이웃에게 거의 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려온다. 돈을 모아서 불우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이 관리 문제로 이정도 인데 한 국가에 관련된 관리조직이 어느 정도의 돈을 먹어 치우고 있을까? 

 

결국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세상에서는 5명이나 20명쯤으로 이뤄진 작은 집단에서 통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된다. 보편복지가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보편복지는 대부분 정답인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관리비용이 얼마나 나올 것인가를 잊고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들사이에서 통하던 방식이 통할거라고 믿고 있다. 국가는 가장이 아니다. 내가 힘든 걸 호소하면 나를 보살펴 주고 도와주는 곳이 아니다. 나와 국가는 인간적인 접촉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세하게 살 필 수가 없다. 통계자료를 모으는 것 자체가 비용이외에도 개인정보의 사용문제를 일으키지만 숫자로 어떤 인간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면 도대체 그 숫자가 얼마나 많아야 하는 것일까? 국가는 시민들 하나 하나와 인간적인 접촉을 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매우 단순화된 숫자를 보고 대충 처리할 뿐이다. 그렇게 해도 처리비용이 천문학적이다. 

 

그런데도 정치가와 악수한번 하고 그분이 우리를 도와줄꺼야 같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안타깝다. 그들은 국가운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사실 그런 식으로 보편복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보편복지다. 선별복지는 지원을 요청하는 서류가 필요하고 그런 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한 돈이 관공서에 이미 있어도 그런 지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왜 그렇겠는가? 그들은 복잡한 것에 약하다. 생업에 바빠서 교육수준이 떨어지고 인맥이 약해서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것에 약한 사람들이 보통 선별지원을 옹호한다. 부자는 지원하지 않고 그 돈이 자기에게 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앞에서 말한 이유들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다. 지식도 없고 서류작성에도 서툰 사람들이 보편복지에 반대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요령좋은 부자들이 복지혜택을 차지하는 일이 많다. 복지와 사람사이에 법과시스템의 장벽을 쌓을 수록 이렇게 된다. 상황은 지금 이순간에도 더 나빠져가고 있다. 세상은 눈부시게 복잡해져 가고 있다. 작년에 힘들었다는 통계기준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지원하면 상황이 이미 바뀌어서 도둑놈같은 사람들에게 지원금이 가고 정말 힘든 사람들은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즉 선별복지는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너무 느려서도 문제가 있다. 자영업자를 살리자고 하지만 망해도 싼 자영업자가 망해야 살아남아 마땅한 가게의 형편이 좋아지기도 할 것이다. 

 

코로나는 지나갔지만 시련은 미래에도 있을 것이고 물론 지금 이순간에도 국민들을 시련 속에 있다. 제발 더이상 시스템과 규칙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선별복지따위에 대한 미련을 버렸으면 좋겠다. 선별복지란 공중화장실에서 가난한 사람이란 걸 증명해야 휴지를 주겠다는 소리와 비슷한 것이다. 게다가 우수운 것은 선별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선별 처벌은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통 신호 범칙금을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을 둬서 지불하게 하는 것은 왜 주장하지 않는가? 하루 일당이 몇만원인 사람과 연봉 몇억하는 사람이 같은 범칙금을 받는 것은 공평한 일일까? 선별처벌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꾸로 이뤄진다. 부자가 1억을 사기칠 때와 가난한 자가 1억을 사기 칠 때 더 강하게 처벌받는 것은 가난한 자이다. 재벌회사쯤 되면 몇백억 사기쯤은 언급할 가치도 없어진다. 이미 처벌의 세계에서는 보편 처벌을 실시하고 있으면서 복지가 되면 꼭 누군가를 개입시켜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은 이걸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가까운 미래에 꼭 다시 나타날 것이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문제다. 모두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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