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인기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때 지금 AI가 그런 것처럼 카오스연구가 인기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련한 논문을 썼지요. 그런데 이런 인기는 카오스 연구 그룹의 건강성을 해칩니다. 뜨네기들의 환장파티처럼 변하면서 장기적으로 그 분야를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연구그룹이 와해되는 겁니다. 이런건 티비에 나와서 인기가 많아진 동네 맛집이 초심을 잃고 망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지금의 AI 인기도 그래서 AI의 건전한 발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한류열풍이라는 것도 중국의 한한령에 힘입은 바 큽니다. 중국이 한국 컨텐츠를 계속 소비해 줬더라면 중국자본때문에 한국 컨텐츠 시장이 왜곡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자본에 기대어 한국에 대작 드라마가 나오는 일이 많은데 그것이 기회이자 위기인 이유입니다. 중국자본만큼은 아니더라도 미국 자본도 자기를 잃어버리게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의 장점이라는 시즌제가 없는 한드라는 것도 이제는 옛 말이 되었죠.
한국 대학은 인기입니다. 전국민의 7-80%가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부터 대학입시를 걱정하는 나라가 한국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뒤집어 말하면 이 인기가 한국 대학을 망쳐왔습니다. 대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입시열풍에 지배당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중고 교육은 대학입시가 목적이 되고 대학입학은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버린지 오래이며 이제는 이런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드물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미디어는 연일 초전도체나 AI나 상온핵융합이나 반도체따위의 첨단 산업을 이야기하면서 한국도 더 발전하자고 말하고,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적어도 30년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이제 한국 대학 입시는 의대가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한 의사보다 창의성이 덜 필요한 학과가 또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교육열이 뭘 위한 것인지, 교육의 목표가 뭔지, 대학의 존재이유가 뭔지 질문이나 던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한국 대학의 인기는 대학에 들어가야만 하는 사람이 대학에 들어간다기 보다는 경쟁에서 이겨서 대학에 들어갈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은 것이 대학이니까요. 이런 현실을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이걸 생각해 봅시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곳일까요 아니면 학문을 위한 곳일까요?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에게 대학은 취업을 위한 곳입니다. 그리고 학자도 축구선수나 작가나 가수처럼 그에 걸맞는 재능을 필요하며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소수입니다. 이 두가지 사실과 높은 경쟁이 합쳐진 지금의 교육현실은 진짜 학자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성장할 시간을 빼앗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단한 수학자가 될 재능을 가진 아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학교실에서 비슷비슷한 문제를 더 빨리 풀기 위해 계속 반복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관심없는 다른 과목들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현실을 좋아할까요? 이건 마치 뛰어난 웹튠작가를 양성하겠다면서 초중고에서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바쁘게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만화볼 시간이 없고, 스스로 만화를 그려볼 시간이 없으며, 아마도 웹튠작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주장되는 다른 교양교육에서 실패하여 대학입시에서 실패하고 결국 웹튠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리학자가 되는 길은 그냥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입시가 여기에 끼어듭니다. 대학교 물리학과에 들어가지 못하면 시작도 못하니까 물리학자가 되려면 이러저러한 단계들을 거쳐서 대학입시에서 승리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 그 단계를 계속 늘리고 벽을 높게 쌓는 겁니다. 말하자면 지금의 교육이란 상당부분 어떤 걸 공부하고 싶어하고 그런 것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걸 못하게 하는 장벽으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그 길고 긴 대학입시의 승자는 그저 암기에 능숙하고, 참을 성이 높으며 자기 흥미를 가지기 보다는 모든 과목을 두루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학문을 하는 사람의 재질은 이런게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창의성이 없습니다. 이런 건 단순한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적합한 재능들입니다. 퀴리부인이나 아인쉬타인이 한국에 태어나도 대학입시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오래된 말이지만 지난 몇십년간의 교육개혁은 그런 말을 더더욱 옳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입시요강은 복잡하고 아이들은 이제 유치원때부터 무슨 영어유치원에 다니며 밤마다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수두룩 합니다. 학원선생은 시험성적을 잘받기 위한 얇팍한 꼼수짜기에 분주합니다. 학자가 될만한 아이들도 이런 아이들과 입시전쟁에서 싸워 이겨야 대학에 들어가서 학문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좋은 대학이란게 뭘까요? 졸업하면 취직을 척척 시켜주는 대학? 무엇보다도 취업을 중시하는 대중이 원하는 대학은 이것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대학의 인기는 결국 대학을 이렇게 만듭니다. 그런데 대학의 본질은 학문에 있는 겁니다. 학문은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나름의 재능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학자를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학자만 고상하고 위대하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든 가수든 축구선수든 각 분야는 그 분야가 요구하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미적분쯤은 쉽게 느끼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학 교육의 핵심중의 핵심은 차세대 학자가 될 사람들을 길러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그들이 한국 학문의 미래를 지켜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연일 미디어가 말하는 첨단학문도 할 수 있게되겠죠. 그 명맥이 끊어지면 한국 대학의 핵심 가치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뜻있는 사람들부터 한국 대학을 외면할 겁니다. 이 말은 한국 교육으로부터 탈출하는 것만이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유일한 길이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절에 다니면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경쟁이 심해진 나머지 신앙심이 있는 사람은 절에 들어가기 어려워진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심이 말라버리면 절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보면 결국 문제의 핵심에는 취업을 하고자 지식을 배우려는 대중의 열망이 온통 대학에 집중되어 대학졸업장이 지식을 가졌다는 증명서처럼 사용된 것에 이유가 있습니다. 더하여 말하자면 학벌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허영도 문제였겠죠. 사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 사람들도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니까요. 교육이라는 것은 정말 막연한 말인데 그것을 대학을 다니는 것과 동일시 할 때 큰 왜곡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일년가야 책한권 읽지 않는 사람이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본인을 지식인으로 생각하고 교육받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런 왜곡을 보여줍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대학교육은 본질적으로 학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중에 오늘날 유튜브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은 100년전처럼 지식이 찾기 힘든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컴퓨터 코딩이 필요하다거나 프로그래머로 살고 싶다고 해서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초등학교때부터 코딩을 취미로 해왔다면 대학교에 가기 전에 이미 훌룡한 코딩실력을 키웠을 텐데 대학에 합격해서 그 후에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을 막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쓴 말들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도 대안이 없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며 대학교수나 대학당국도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도 두 명의 아이들이 있지만 모두 대학에 보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농사만이 산업이라고 생각했던 농부들은 산업혁명이 오면 당황하게 됩니다. 유학교육만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사람들은 근대학교가 세워지자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대학교육이 아니면 단순노동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업이 천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선 시대사람과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은 백년이나 2백년전처럼 대학같은 기관만이 지식을 집대성하고 독점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것만 해도 시대는 변한 것입니다. 지금의 교육은 개성이 없고 그저 참을성있게 단순노동을 잘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는 지적은 그런 걸 잘 하는게 AI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찔 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육의 승자는 의대라지만 의사가 하는 일이야 말로 AI에 의해서 대체될 일이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대에 안가고 컴퓨터 공학과에 가야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스케일이 작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빌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을 해서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지요. 어쩌면 앞으로의 시대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뛰쳐나와서 창업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자기 일을 찾지 못하고 계속 학교에 오래 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학자가 되어서 성공하던가 아니면 가장 대책없는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학교들을 교회같은 곳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성직자가 될 것도 아니면서 주말성경학교를 계속 다니면 어디에 취직이 됩니까?
우리가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어느날 미래가 아주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쩔 수 없다. 대안이 없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옳다고만 하면서 시야를 좁히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요즘 AI 뉴스를 보면 알지만 한 달 한 달이 다릅니다. 아니 한 주 한 주가 다른 것같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될지 모르고 나는 30이 될 때까지 유학만 공부했다는 말과 비슷한 후회의 말을 하게 되서는 안될 것입니다. 개인들도 대학도 정부도 말입니다. 특히 정부가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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