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대학입학이란 바보같은 생각이다.

요즘 교육부가 대학생 입학자의 25%를 무전공으로 받게 하겠다고 해서 화제다. 반대에 부딪혀서 잠깐 물러서기도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는 모양이고 명분은 융합 인재를 육성한다고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전공 대학 입학이란 건 비인기학과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도 바보같은 생각이다. 

 

사람들이 대학에 가서 뭘 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내가 젊었던 30년전에도 흔했다. 그때도 벌써 대학교수들이 어떤 컬리큘럼을 짜서 뭘 가르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뭘 가르치던 대학이라는 곳이 제공할 수 있는 한가지는 있었다. 그건 바로 고등학교때까지 만날 수 없거나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우선 학생은 특정한 전공을 가진 교수를 만난다. 그게 아니더라도 공통의 전공을 선택한 같은 학과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학문적으로 앞선 사람들과 만나고 같은 전공을 택한 사람들과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야 말로 고등학교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경험이다. 

 

그런데 대학이 전공을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또다른 고등학교일 뿐이고 사람들은 아무런 소속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특별히 만나서 소통할 이유가 더 줄어든다. 이렇게 될 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정말 뻔한 공부만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졸업한 대학은 뒤돌아보면 별로 얻은게 없는 곳이 될 것이다. 대학수준에 가면 일반사회처럼 진짜 중요한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학생들의 대학 전공을 융합하는 것이 융합형인재를 길러내는 일일까? 그렇다면 교수들은 어떤가. 무전공 교수라는 것이 있을 수 있나?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 있는 이 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것은 전형적으로 어린 세대에게 모든 짐을 다 떠넘기는 수법이다. 기성세대가 융합하는 방법을 모르겠으니 니들을 억지로 융합시켜 놓겠다, 니들이 뭔가를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배운 교수들이 융합하질 못하는 일을 학부생들에게 왜 떠넘기는가? 그들은 아직 뭘 배운 것도 없는데 말이다. 

 

교육이란 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일이 아닌가? 식당이 재료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들어와서 손님이 알아서 음식을 창조해서 먹으라고 해도 되는가? 유치원때부터 대학입시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정작 그 대학이란 것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뭘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겠고, 학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니 대충들어와서 대충 나가라는 것인가? 그렇게 딴 졸업장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알려질 때 쯤이면 유치원때부터 안달복달하면서 공부한 모든 것은 다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각 학과에서는 또한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들과 연구를 진행할 새로운 세대를 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신세대가 미래 학문의 주역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키우려면 신입생때부터 해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무전공 학생들이 대학원생이 되면 그들은 전공분야의 공부가 부족해서 연구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들과 함께 연구할 교수들에게 뭘 배운 적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 

 

융합형인재란 뒤집어 말하면 아무 것도 잘하지 못하는 개성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대학졸업장을 따고 박사까지 한 교수들도 융합형 인재가 되기 힘든데 아직 제대로 된 학문을 배워 본 적도 없는 젊은이들이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건드리고만 있으면 어느 하나에도 나는 전문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즉 대부분 개성이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요즘 기업들은 이같은 추세와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예전에는 학과 상관없이 대학 졸업생이라면 와서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취업시켜서 내부에서 일을 가르키겠다는 식이었다. 그 안에서 명문대 프리미엄이 있는 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기업이 당장 쓸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기업에서 장기간 근속하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시대에 개성이 없어진다는 것은 기업이 원하는 바와 거꾸로 가는 것이다. 이러니 무전공 대학생이란 기업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융합형 인재라는 것은 필요없는가? 지금의 대학은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나도 생각한다. 다만 교육계에 있는 사람들이 교육을 자기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빠져 있는게 문제다. 즉 초중고와 대학이라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학생들의 여유시간을 빼앗아 가고 만다. 자꾸 뭘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융합형 인재를 대학이 키우는 것은 교회에서 물리학 강의를 하는 것처럼 본래 말이 안되는 것이다. 

 

대학은 지금 이대로 있어도 된다. 다만 여유 시간을 주고 그 융합형 인재라는 것을 대학 이라는 기관 바깥에서 키워야 한다. 전문화는 대학의 본질이다. 그걸 허물면 개선이 안된다. 대학의 핵심은 결국 교수고 교수는 전문화된 분야에서 논문을 쓰는 것으로 뽑는다. 이건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어 왔다. 교수는 출판한 논문수로 평가받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문출판은 보편적 지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주제에 전문화되었을 때 유리하다. 이렇게 대학교수 임용의 현실은 오히려 더 전문화되어가는데도 대학교육을 자꾸 구부려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건 잘생긴 기준으로 사람을 뽑고 그 사람에게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라는 말처럼 모순이다. 

 

융합형 인재라는 건 대학을 넘어서 존재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 산업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위해 캠프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졸업장이 아니라 교양을 위해서 특정한 책에 대한 강의 코스를 열수도 있을 것이다. 유튜버가 자신이 컨텐츠를 만드는 법을 설명할 때 자기의 학벌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에 모이듯 특정 주제에 대해서 모여서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걸 위해서 국가가 인프라를 보조하거나 인력을 보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융합형 인재를 졸업장을 주고 평가를 하는 대학에서 양성하겠다는 생각은 이런 흐름 자체를 망가뜨리게 되기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더 바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만들어서 오히려 바보로 만들게 되기 쉽다. 

 

융합형 인재를 키운다고 하면서 정작 요즘 아이들은 내가 크던 30년 40년전보다 더 입시전문 기계처럼 큰다. 무전공 대학생이란 생각은 그 목표를 오히려 해치는 정책일 것이다. 누가 그런 정책을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사람이 창의성이 있고, 융합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게 문제다. 권위주의적인 군인같은 사람이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같은 기업가를 키워내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든다. 한류를 국가가 키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종종 가장 큰 한류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