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청준의 마음 비우기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벌써 한 1년반 정도 AI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을 골몰하다가 이런 책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하더군요. 오랜만에 느리고 느린 세상 그리고 인간다운 세상에 돌아온 것같았습니다.
저는 종종 그런 말을 합니다. 말의 내용보다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어머니나 군대간 아들과 통화를 했다고 하는 아내에게 목소리는 괜찮다더냐고 물어봅니다. 죽겠다라고 말해도 목소리가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고 아주 좋다는 말을 해도 목소리가 나쁘면 그건 사실 아주 안좋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청준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글도 마찬가지로 그 내용 이전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문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내용이 심각하든 슬프든 아니면 가볍고 웃기는 것이든 단어 하나 하나들이 선택된 것 그리고 문장이 어떻게 풀려나가는가에 따라서 글을 읽고 느끼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용 따위 상관없이 그저 줄줄 읽고만 있어도 뭐가 마음에 위안이 되는 글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게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다른 것도 많이 있겠습니다만 그 글이 어느새 나를 느리고 느린 인간적인 세상으로 데려가서 그런 것같습니다. 어느날 이유없이 길을 나서서 또 이유없이 어딘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푸르고 저기 멀리에 있는 나무에는 새들이 지저귀더라라고 하면 내용적으로는 사실 아무 말도 안한거나 다음없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고된 삶에 지쳐서 산책을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한가하기 짝이 없는 행운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유없이 행동하니까 그것에 어떤 해석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냥 눈을 들어 세상을 보니 구름과 새가 보이더라라는 말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세상은 치열하게 이유를 따집니다. A가 B가 되는 이유를 몇가지나 나열해도 왜 꼭 B냐고 아닐 수도 있지 않냐고 반박이 들어올 것같은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푹 빠져 있다가 이청준의 책처럼 다른 세상에 대한 글을 읽으면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고양이나 거북처럼 인간도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는다면 그저 살 뿐이지 이거니 저거니 따지는 것은 두번째일 것입니다. 물론 아무 생각도 없이 계속 살 수는 없지만 살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지 생각하기 위해 사는 것이 되면 이미 정상이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이청준의 책은 항상 술에 취해서 사는 것같은 화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쭈그러진 웃음을 짓는 그 화가는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괜찮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읽으면 마치 여유로운 목소리로 전화를 듣는 것같습니다. 내용이 뭐가 되던 그 목소리는 지금 다 괜찮다고,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같습니다.
내가 말한 느리고 느린 인간적인 세계란 결국 이청준의 세계일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를 자기의 세계로 초대해서 그걸 보여줍니다. 저도 책을 2권 출간했고 벌써 20년이상 계속 글을 써왔습니다. 블로그의 이름도 나를 지키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푸근한 세계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같습니다. 재능이건 노력이건 이청준같은 분을 쫒아갈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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