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29
보수진보 논쟁이란게 구체적 사안에서 뭘 말하는가는 어느 정도 사람에 따라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그 논쟁이 어떤 증거나 사실의 수집으로 끝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결국 무엇을 보수라고 부르던 그것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믿음은 사실로 증명하거나 부정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뭐하러 세상에 이렇게 많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가 보수 진보 논쟁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은 기억할만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싸움을 정리하는 한가지 방법이며 어떤 의미에서 보수 진보 논쟁을 끝내는 지름길입니다. 즉 뭘해야 이 지리한 싸움이 발전적으로 해체될것인가를 보여준다는 것이죠.
보수라고 해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에게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식민지 정신입니다. 즉 외세를 정점으로 하여 힘이 센 순으로 피라미드를 만들고 세상은 이런 질서로 굴러가게 되어있으며 이 구도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해방직후, 해방도 우리의 무력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며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던 그때 우리는 미국의 원조로 나라를 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책 한권 식량 한 포대 던져주면 그걸 기반으로 뭔가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죠. 그 시절은 이미 반세기가 넘은 옛날인데도 지금도 보수는 한국은 대기업중심으로 커야 하고 내수보다는 수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외국눈치만 보고 어떻게 빌어먹으려고 하는 거지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보수중에는 많습니다. 이들은 광화문에서 열심히 성조기를 흔들고 군사작전권을 가져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입니다. 상당히 많은 자칭 보수들 그리고 그 지지자들의 기본발상은 한국인은 못났다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 점을 스스로 매일 말버릇처럼 말하는 보수도 있고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을 한국사회에서 제외하면 진보보수논쟁은 이미 예전에 끝났을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보수의 언행을 보면 대개의 언행이 잘 이해가 됩니다. 식민지 시대가 아니었으면 한국이 근대화하지 못했을거라는 주장도 보수진영의 주장중 하나인데 이것도 결국 조선민족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라는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는 결코 숫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선말엽의 상황이 나빴기에 불가능했다고 말한다면 해방이후의 한국이 오늘날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룰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역사에 예측가능하지 못한 일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도 조선인은 안된다는 겁니다. 결국 조선은 불가능했다는 말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고 그럴듯한 이야기로 덮은 자신의 믿음의 고백이요 그 고백은 나는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믿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그런 주장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그런 주장이 광범위하게 바로 그 조선민족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것은 지독한 자기비하적 시각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수 진보 논쟁이 표면적으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던지 간에 결국 그 뿌리를 보면 한 쪽은 나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뭘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쪽은 우리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물론 보수 진보논쟁을 완전히 이렇게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보수진영에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한국인의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이 많고 진보진영도 가만히 보면 말을 교묘하게 해서 그렇지 우리는 허약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신념을 뱉아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건 수학이 아니니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권에서 극좌파였다가 나중에는 극보수로 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사람들은 이것을 큰 전향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극좌파던 극보수던 본질이 같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은 한국인 대중에 대한 믿음의 부재입니다.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급진주의라는 보수건 진보이건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좌절을 말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른 사람들이 다 제 정신이 아니고 구제불능이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시스템으로 시스템을 확뒤짚어서 사람들을 정신개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론 때때로 이런 좌절감을 경험합니다. 사람들을 참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급진주의자는 그런 좌절감이 뼈속까지 스며서 항상 좌절해 있는 사람입니다. 입으로 희망을 말하는듯해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완전한 절망감속에서 말하는 희망입니다. 정상적이고 온건한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대중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에는 외국에서는 수십년전에 없어졌다고 하는 진보 보수 논쟁같은게 있는가. 결국 한국은 아직도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괜찮은 사람,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이 조선놈은 못났다라는 식의 자기비하적 사고에 빠져서 보수라고 불리는 세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보수세력의 기둥에 가해지는 가장 강력한 공격이라는 것은 보수세력을 비판하는게 아니라 한국인이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선놈이 못났다, 조선놈은 서양사람보다 친절하지도 않고 머리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잘난 한국인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만큼 읽으시면 느끼셨을지 모르나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보수는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치료해 줘야할 대상이라는 주장에 찬동하는 편입니다. 단 정확히 말하면 사실 이 치료해줘야할 대상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은 다만 스스로 보수정치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상처입은 영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사실에 근거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조선놈이 못났다라는 기본적믿음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 뿐입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못난 조선놈들을 선동해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치료대상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경험자이거나 2차적 피해자입니다. 이것은 나라가 망할정도로 엉망이었던 조선말엽의 난리에서 식민지시대를 겪고 해방이후 몇십년간의 가난을 겪은 세대가 대대로 이어서 자식들에게 가르쳐준 경험적 믿음이며 그중 가장 강력한 경험은 물론 한국전쟁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강도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해서 그 경험의 속박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믿었다가는 나라를 믿었다가는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하는지 아는가. 인간이란게 얼마나 잔인한지 아는가. 이런 주문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것은 상당부분 그런 상처를 입은 국민의 마음을 감싸안아줘야할 사회가 거꾸로 그런 상처를 이용해서 정치력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끝났는데 계속 방송에서는 빨갱이 간첩잡으라는 이야기가 가득했지요. 이들은 그다지 윤리적이거나 준법정신이 없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남들도 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 깨끗하면 손해이고 조금쯤 더러운것이 정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이 그런건 물론 아니지만 유독 기독교=보수라고 할정도로 한국에서 기독교 세력의 보수지지율이 높습니다. 저는 그것도 사회가 불안한 영혼들을 내버려둔 사이에 사이비 종교인들이 그들을 이용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영혼의 안식을 주고 지혜를 줘야할 목사들이 단순한 빨갱이론에 불과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친미반공정당을 세우겠다는 둥 하는 것을 들으면 안타깝습니다. 자기 영혼을 구제하는 것은 둘째치고 도대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은 어찌되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이 치료대상에 해당하는 보수세력 -진정한 의미의 보수나 진짜 소신을 가진 보수가 아니라-을 뒤흔드는 것은 한류열풍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의 문화상품이 외국에 팔리고 우리의 가수나 배우가 그들이 그토록 한국인들보다 위라고 믿고 있는 외국선진국 사람들에 의해 영웅처럼 평가받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10년간에 걸쳐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집회를 하고 스스로 뒷정리를 하는 시민의 모습을 꼽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치료대상으로서의 보수세력에게 가장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한국인이란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고 세금도 포탈하고 거짓말을 밥먹듯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폭력적인 폭도인데 누가 선동한 것도 아니고 돈도 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나와서 평화집회에 참석하고 깨끗히 뒷정리도 자발적으로 하는 시민이란건 믿을 수 없는, 마치 닭이 송아지를 낳은 것 같은 그런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수세력에서는 이게 돈 안주고 선동 안했으면 있을 리가 없는 거라고, 북한의 사주가 있었을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대치라는 상황은 아마도 앞으로도 20년정도는 없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치료대상이라고 말했지만 전쟁의 휴유증같은 것은 어느정도 불치입니다. 연령적으로 보았을때 그들이 노후하여 사망하고 사라지는 시대가 와야 한국은 본질적으로 바뀔것입니다. 그때까지 한국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엄청난 사건이 또 있지 않다는 전제에 말입니다.
저는 보수 진보논쟁에 대해 두가지를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이 싸움은 한국의 비극적 역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치료대상으로의 보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미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안타깝게 생각해야 할 역사의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불신의 동굴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엄청지불했고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해야할 대상입니다. 그들도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들을 더이상 보수도 뭐도 아닌 보통 시민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나 비판이 아니라 사랑이고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수 있게 하는 증거이며 그로인해 파생되는 안정감이라는 것입니다. 아 이젠 빨갱이가 처들어 와서 모두 다 죽이는일은 없겠구나라고 믿는게 필요합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하지 하고 코웃음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찌보면 행운아라서 그렇습니다. 정신적 치료가 필요할 만큼 비극적인 일을 목격하고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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