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4
전주의 생활은 아직도 안정이 되려면 멀었다. 이삿짐도 오지 않았고 가구도 가전도 오지 않아 여전히 최소한의 살림으로 캠핑하듯이 살고 있다. 그래도 아주 급한 불은 끈 셈이라 최근에는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집 근처의 몇군데 가게를 들려보고 구경도 해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곳들이 송연가맥과 전주옥이다.
송연가맥은 우리 집에서 불과 몇백미터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나는 가맥집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가맥집에는 생맥주는 없고 냉장고에 맥주가 채워져 있을 뿐이며 익숙해 지면 그냥 냉장고에서 자기가 맥주를 가져다 먹는 식인가 보다 가져온 맥주도 안마시면 돈 안내도 된단다. 오랜만에 먹는 맥주여서인지 그날따라 차가운 병맥주가 유달리 맛이 좋았다. 가격은 병당 3천원. 기본안주로는 땅콩과 옥수수뻥튀기가 나왔고 우리 부부는 만오천원짜리 두부 황태탕을 시켰다.
전주의 특색인지 한국의 특색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전주의 특색인 것 같다. 내가 가게들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의 메뉴가 참 양이 많다는 것이었다. 전라도의 음식인심이 후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가 보다. 뭘 시키든 음식을 많이 준다. 아래에 잠시 언급할 전주옥도 마찬가지였다.
두부황태탕 하나를 시키니 맥주 3병정도를 마시려면 더 안주를 시키려고 해도 시킬 수가 없을 정도다. 오히려 시원한 황태국물을 마시느라 맥주를 마시는 속력이 느려진다. 이런데도 주인 아주머니는 국물이 필요하면 더 주겠다고 말한다. 아마 이런 가맥집에는 4명정도가 가서 안주 한개를 시키고 술을 마셔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1인당 만원정도의 술값이 나올 것같다. 안주 두개면 엄청 푸짐하다. 돈부담 없이 술마시고 싶을 때 좋은 가게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는 없는 손님이 이곳에는 꽤 있었다.
가게는 다 그렇지만 이런 가게일 수록 기본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친절, 맛, 기본 안주의 질 같은 거 말이다. 멋진 인테리어를 보려고 들어가는 가게는 아니다. 나는 공짜로 주는 땅콩안주와 옥수수뻥튀기가 좋았다. 특히 옥수수뻥튀기가 좋았는데 주인 아주머니에 따르면 아는 업자에게서 구하는 것이라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첫번째 동네 가맥집 구경으로는 성공적이었다. 두부황태탕은 저녁을 먹지 않은 우리 부부의 저녁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양이 많았고 맛도 좋았다.
전주 음식들은 대개 깊은 감칠 맛이 있다. 나로서는 재료를 풍부하게 쓰기 때문인지 장맛이나 젓갈류의 맛이 뛰어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다 맛이 아주 좋았다고 말하고 옥수수뻥튀기도 좋았다고 말하니 뻥튀기를 퍼주신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푸짐하게 퍼주셨는데 다음에는 더 큰 봉지로 주겠다고 말한다. 덕분에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훌룡한 선물이 되었다. 가게중에는 한번이면 충분한 집이 있고 단골로 삼고 싶은 집이 있는데 이 가게가 어느 쪽이냐고 하면 역시 다시 가보고 싶은 집이다.
전주 신시가지 우체국에 볼일이 있어서 일을 처리하고 나오는데 보니 전주옥이라는 가게가 그날 문을 연다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전주옥의 개업 첫번째 손님이 되었다. 아직 가게는 좀 어수선했지만 목조 인테리어로 꾸며진 가게 내부나 가게의 메뉴가 마음에 들었다. 메뉴중에는 육회비빔밥도 있어서 우리는 그걸 시키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아침일찍 되는 것은 쇠고기 무우국과 김치찌개뿐이었다. 가게의 음식맛은 훌룡했다. 특히 쇠고기국이 좋았다. 아내는 소고기국이 아니라 갈비탕 아니냐고 하면서 먹었는데 정말 맛이 그렇다.
밑반찬이 수십가지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다 맛이 있었다. 사실 전주에서 여태까지 들어가본 가게중 기본 반찬이 맛이 없는 곳이 없었다. 중국집에서도 김치를 준다는 것은 나에게 특이해 보였고 그 김치가 아주 훌룡했으니 더욱 특이했는데 어디나 김치를 준다. 일본에서는 그 김치 한접시가 상당한 가격인데 말인다. 전주옥의 김치도 말할 필요도 없이 훌룡했다.
전주, 특히 전주의 한옥마을 주변이나 신시가지에는 커다란 식당들이며 카페가 아주 많이 있으며 그중의 다수는 서구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주가 변질될 것을 걱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돌아다녀본 바로는 그런 가게들이 그렇게 장사가 되질 않는다. 나로서는 전주에 가면 전주옥 같은 곳에서 육회비빔밥을 먹고 싶지 스테이크나 파스타를 먹고 싶지는 않다. 카페조차 동양식일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는 허세가 든 카페보다는 정을 붙일수 있는 내실있는 카페를 좋아한다. 물론 앞으로 살다보면 화려하고 서구적인 것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쪽으로 단골로 삼을 만한 집도 만나게 될테지만 아직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보인다. 전주는 결국 전주의 맛을 지킬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시가지 우체국 앞의 전주옥의 특징이라면 특징은 아주 아주 근사한 커피머쉰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공짜로 뽑아먹으라고 주는 믹스커피같은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제대로 원두부터 갈아서 커피를 뽑아주는 커피 머쉰이다. 우리는 부부는 6천원 7천원 하는 메뉴를 시키고 맛있게 잘 먹었을 뿐 아니라 나가서 커피숍에서 먹으면 몇천원은 하는 원두커피를 마셨다. 이집에서는 그냥 찬물을 주는게 아니라 슝늉물같은 것을 주는데 그것도 좋았다. 마지막으로는 개업떡이라면서 금방 만든 시루떡을 주셨는데 이게 또 너무 맛이 좋았다. 내가 그렇게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떡이 이렇게 맛이 있을 수가 있나하고 감탄했다. 나는 전주에 빠진 것일까 뭘 먹든 다 맛이 좋다고 느끼는 것일까.
내가 보기엔 전주의 가게들의 맛의 수준은 높다. 양도 푸짐하고 인심도 좋다. 사람들의 맛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것같다. 그러니까 어디나 어느 정도의 맛은 한다는 느낌이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전주가 이렇게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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