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처럼 볕이 좋았다. 아내가 동생과 여행을 간터라 나는 운동도 할겸 산책로를 새로 하나 찾아 보기로 했다.
전주에 있는 우리 집에서 차로 달려 20분정도가면 있는 곳에 모악산과 경각산이란 산이 있다.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이 경각산보다 더 유명하고 높이도 약간 더 높다. 모악산은 높이가 794미터이고 경각산은 659미터이다. 경각산은 더 험준하다는 핑게인지 아니면 모악산이 어머니 산이라선지 남성의 산이라고 부른다지만 그거야 사람이 가져다 붙인 것이지 산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두 산의 사이에 있는 것이 구이 저수지다.
아내의 말마따나 이정도면 저수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지 않은가 싶다. 저수지는 길쭉하게 생겨서 길이 방향으로는 3킬로미터나 되고 폭은 넓은 곳은 7백미터쯤 된다. 전주에서 바라봐서 구이 저수지의 오른 편에 있는 것은 모악산이고 왼편에 있는 것이 경각산이 된다. 저수지는 그 두 산 사이에 고인 물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보다 유명한 것은 모악산이라 모악산에는 전주에 살면서 여러번 갔었고 경각산은 그런 산이 있는 줄도 최근까지 몰랐다. 가깝지만 지도를 보지 않으면 산이름 모르는 일이야 많이 있으니까 나같이 무심한 사람에게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구이 저수지에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리라 생각하지만 이 멋진 저수지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도대체 구이 저수지의 반대편에는 뭐가 있는건가하는 궁금증이 들게 되었다.
모악산 자락에는 전북도립 미술관이 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것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큰 미술관이 산자락에 있으면 산책을 한 끝에 시간내서 미술작품도 감상할 생각이 들게 되니 도립 미술관은 모악산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모악산 자락에는 식당들도 있는데 그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이 맛있는 집들도 있다.
그런데 찾아보니 구이저수지 건너편 경각산 자락에는 대한민국 술 테마 박물관이란 곳이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구이 저수지를 돌아 도착해 보니 모악산쪽의 분위기와는 여러모로 분위기가 달랐다. 가깝다면 코앞인 곳인데 경각산 쪽은 이런 깊은 시골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농사짓는 시골분위기가 깊다. 그곳에 사는 분들은 모처럼 방문한 방문객이 이런 소감을 보이면 기분이 좋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말은 칭찬으로 하는 말이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전주시 자체를 시골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어떤 기준으로 말해도 좀 지나친 억지고 특히 내가 사는 전주 신시가지 쪽은 더욱 그렇다. 한켠에는 아파트 촌이 있고 도청앞에는 번화한 음식점 거리가 있어서 어딜봐도 도회지 번화가 같은 느낌을 주며 시골과는 거리가 멀다.
차를 달려 전주 경계선을 벗어 나도 익산이나 김제쪽으로 가면 번화한 도회지 느낌은 아니라고 해도 심심산골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사람의 손때가 탄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이저수지의 모악산 쪽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각산 쪽의 풍경은 넓은 벌판의 농지다. 그 길을 요즘 같은 봄날에 걷거나 차로 천천히 달리고 있으면 복잡한 도회지 생각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까마득하다. 내 맘에 꼭 든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정작 그 넓은 벌판은 찍은 것이 없지만 구이 저수지가 아닌 곳의 사진들이 몇장 있다.
글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이 광경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봄날에 이 풍경 안에 있는게 좋았다. 그 안에 있으니 여기도 약간만 손을 대면 디즈니랜드나 스위스 부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이대로가 좋다. 다시 말해 저 멋없는 콘크리트 길이 좋다.
나는 도회지 사람이라 벌레나 거친 산길같이 자연그대로의 풍경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미를 찬양하는 거 같아도 나는 역시 가게도 있고 길도 예쁘게 정돈된 쪽이 좋다. 다만 그렇게 해서 유명한 곳이 되고 상업적으로 발달하면 아무래도 분명히 사라지는 것이 있다. 요즘 여행을 가보면 전국에 예쁘게 단장해 놓은 곳이 많다. 부산의 동백섬같은 곳이 한 예일 것이다. 그런 곳의 길은 아주 깨끗하고 쾌적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시끄럽고 왠지 진짜 자연에 와있다는 생각은 덜 든다.
여기 구이 저수지를 포함해서 전국에는 많은 지자체들이 만든 뭔가 하나 아쉬운 듯한 곳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뭔가 볼 것이 부족한 듯하고, 뭔가 약간 덜 깨끗하고 그런 곳이다. 말하자면 2등이나 3등 관광지랄까. 그래서 그런 곳은 붐비지 않는다. 특히 오늘 같은 평일에 가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개발과 비개발의 경계쯤에 있는 듯한 그런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왠지 누구도 없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위에 있는 착각을 준다. 전주 한옥마을은 좋은곳이지만 이런 매력은 잃었다. 집에서 차로 20분 심지어 자전거로도 올만한 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운 좋은 것이다.
내가 술테마 박물관에 온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번에는 우연히 이 장소를 발견하고 박물관을 들어가 봤는데 그래서 구이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는 일을 정작하지 못했다. 술박물관은 나름 쏠쏠한 재미를 줬다. 나는 이런 후미진 곳에 이런 박물관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기대치가 낮아서인지 나는 오히려 박물관이 너무 좋아서 놀랐다. 박물관을 보고나니 술을 시음도 시켜준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시음을 많이도 시켜줘서 절대 돈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이 박물관은 구이저수지 주변에 놓여진 데크길로 이어진 주차장을 제공한다. 공짜다. 차를 세우면서 산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 와서 차를 세우고 하룻밤 잠을 잔다면 오토 캠핑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으니까 가능한 발상이겠지만.
나는 드디어 구이 저수지 주변길로 접어들었다.
언젠가는 이 구이 저수지 주변을 하나의 길로 연결할 계획이 있는 모양이지만 지금은 양쪽의 길이 연결되어져 있지 않고 이 데크길도 1.5킬로미터 정도다. 술박물관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가는 데크길은 경각길이라고 부르고 오른편으로 가는 길은 모악길로 부른다. 나는 양쪽으로 다 가본 후 모악길에 이어진 산길을 따라 약간 걷다가 돌아왔다. 계속 걸으면 구이저수지 너머까지 가는 것같았지만 길이 얼마나 좋을지 몰라서 오늘의 탐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 것이다.
구이 저수지는 디즈니랜드나 스위스는 아니다. 하지만 기대치는 낮추고 약간의 누추함을 눈감을 만한 관용을 가지고 길을 떠나면 집앞의 저수지도 스위스 못지 않다. 다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구이 저수지의 풍경에 분명 감탄했다. 아름 다운 곳이다.
아름다운 곳에 사람이 너무 많이 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너무 오지 않아서 관리가 되지 않게 되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 균형점 어딘가에서 구이 저수지가 아름답게 발전해 가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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