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보다 보면 코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말했으면서도 이따금 그걸 다시 깨닫게 되는 일이 생긴다. 전주에 산 것도 이미 3년이 넘었으니 내 주변의 것을 왠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구이저수지에 가보고 아 내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잘 몰랐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없으니 발상이 좀 바뀐 것 뿐인데 다른 것이 자꾸 보인다.
그리고 오늘은 모악산에 가보고 그걸 느꼈다. 모악산은 전주에 붙어 있는 산으로 여러 암자며 절이 있지만 금산사가 그중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 그래서 모악산에 오르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지만 금산사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유명하고, 또 그 반대쪽으로 전북도립 미술관이 있는 모악산 관광단지로 해서 올라가는 길이 유명하다. 유명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뜻이고 그래서 당연히 주차장 같은 시설이 있는데 나는 왠지 금산사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정이 가질 않아서 미술관쪽으로만 계속 다녔었다.
그런데 어제 구이 저수지에 다녀온 후에 지도를 보다 보니 전주에서 오히려 가까운 쪽으로 주차장이 있는 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모악산에 가는 또 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달성사와 금곡사로 통하는 길이다. 오늘은 이 길을 다녀왔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 맘에 든다. 편백나무 숲 아래에 있는 평상도 마음에 들고 자연스레 형성된 산 아래 마을의 풍경도 마음에 든다. 편백나무 아래의 평상에 누워서 위를 보니 많이 봤던 편백나무들이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었던 것을 몰랐던 나를 비웃는 것도 같았다.
주차장의 모습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달성사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아주 완만하다. 사실 달성사와 금곡사까지의 길은 등산가들에게는 산책이라고 부를 평탄하고 완만한 경사의 길로 2킬로미터 정도 밖에 안된다. 길에는 마포도 깔려 있어서 걷기도 쉽다.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인 나무가 멋지다. 한국은 일본보다 멋진 나무가 드물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화낼지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일단은 기후가 달라서 일본이 나무가 더 잘크는 것같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한국이 조선말엽에서 일제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까지 거치면서 너무 국토가 황폐해 져서 그런 것같다. 일본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훨씬 많다. 우리도 몇십년 지나면 나라가 훨씬 더 멋있어 지리라 믿는다. 그러자면 있는 나무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길이 워낙 평탄해서 내 맘에 든다. 사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생각에 잠기기 좋아한다. 그래서 경사가 너무 심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별로 내 취향이 아닌데 생각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뭐든지 공짜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달성사까지라고 해봐야 1킬로미터가 조금 넘으니 금방이다. 그래도 이 길에 오래된 뭔가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만약 아무 것도 없이 그냥 걸어야 했다면 훨씬 적적했을 것이다.
달성사를 지나 1킬로미터가 안되게 걸으면 편백나무 숲이 나온다. 그 곳이 어쩌면 오늘의 주인공이다. 사실 이 길이 다 맘에 들었지만 나는 한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탄한 길이라서 그런지 특징이 별로 없다. 산에 왔다는 느낌이 덜한 것이다. 그런데 편백나무 숲 아래의 평상을 보니 반갑다. 이제는 약간 걸었으니 평상에 앉아서 핸드폰도 들여다보고 가져온 책도 약간 읽었다. 이 편백나무 숲은 금곡사의 바로 아래에 있다.
편백나무도 보고 금곡사도 보았지만 길이 평탄하고 쉬었던 관계로 좀 더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헉헉 대기 시작한다. 이 곳부터는 경사가 심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표지판을 보니 나는 금곡사에서 겨우 3백미터를 더 간 것인데 산에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힘든 건 경사의 정도지 거리가 아니다. 이 3백미터를 가는게 금곡사까지 오는 것보다 더 땀이 났다.
겨우 겨우 계단길을 따라 올라 가다 보니 난 하나를 깨달았다. 경사가 심한 쪽이 훨씬 산답고 경치가 아름답다. 계곡의 물소리가 더 큰 것도 경사가 심해서 물이 더 콸콸 흐르기 때문이다. 결국 평탄하기만 한 길은 그리 아름답지 않고 경사가 심한 것은 산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법이다.
꽤 땀나게 올랐는데 금곡사까지 300미터라는 말을 들으니 정상까지의 2.1킬로는 다음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단련을 위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이 길을 찾은 것으로 기쁘다. 표지판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아 약간 쉬었다가 다시 편백나무 숲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평상위에 누우니 아까 말했던 풍경이 보였다. 아래에서 본 편백나무들은 느낌이 달랐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식당이 내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서 3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길은 내게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의 거리같은 느낌을 준다. 늘 가던 길인데 골목 하나를 다르게 돌았더니 내가 모르던 세계가 확 펼쳐지는 것이다. 다음번에는 가족과 함께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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