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화화분이 하나 있다. 지난 겨울에는 그 국화가 죽어 그저 하나의 나무토막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눈비 맞도록 내버려 두고 비료한번, 물한번 준 적이 없었다. 봄이 되어 그 나무토막에 생기가 돌아왔을 때는 그래서 참 놀라웠다.
그런데 그 나무토막은 단순히 생기를 되찾은 정도가 아니라 이내 엄청나게 가지를 뻣어 성장하기 시작했다. 국화화분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스티로폴 상자에 담긴 작은 흙덩이에 불과했던 녀석인데 뿌리 부분에 걸맞지 않게 가지를 크게 뻣고 잎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면서 과연 이렇게 무성한 잎들에서 꽃이 날 것인지,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 힘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고 쳐다보았다.
가을이 되어 꽃망울이 맺기 시작하자 그 꽃망울의 수가 워낙에 엄청났다. 나는 이제 이 꽃을 피우리라 생각하면서 날마다 국화화분을 보면서 그 꽃망울이 자라기를 기다렸다. 우리 집에 방문한다는 어머니며 처제가족에게 멋진 국화를 자랑하겠다는 야심도 가졌다. 하지만 한달이 가도록 작은 꽃망울은 꽃이 되지 못했다. 조금씩 조금씩 꽃망울이 커졌고 이내 그 꽃망울이 터지고 난 후에도 그 작은 꽃은 활짝 핀 국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시간은 결국 흐르는 법이고 펴야 할 꽃은 피는 법이다. 국화는 피었다. 하나 둘씩 활짝 피기 시작했다. 아직도 국화화분에는 다 피지 못한 꽃망울이 있기는 하지만 이정도면 활짝 피었다고 말할만 하다. 나는 근래에는 안나가던 베란다가 나가서 국화옆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을 방문하신 어머니도 국화 꽃을 보면서 감탄하신다.
국화 화분 옆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어 본다. 이러고 있으니 정원에 꽃을 길렀다는 정약용같은 위인이 된 것같다. 정원에 대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것이 왜 좋은지 이 국화 화분이 새삼 알려준 한 해였다. 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즐겁고 꽃이 피는 것을 보는 것이 즐겁다. 흔한 꽃 화분 하나지만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다가 놓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꽃은 자식같고 가족같다.
꽃망울이 피는 것을 보면서 부터는 꽃이 피는 것이 기다려 졌고 조바심이 났다. 이 꽃망울들이 전부 활짝 핀 국화꽃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하고 상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꽃이 피기 시작하자 꽃망울이었을 때, 아주 살짝 꽃이 피었을 때가 국화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꽃은 다 피면 시들기 마련이다. 제대로 피지 못한 꽃망을에는 생기가 가득하고 그 색이 가장 강렬하지만 활짝 핀 국화는 감탄을 하게 만들면서도 어딘가 예전같은 강렬한 젊음이 이미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꽃은 아직도 계속 더 피고 있다. 그 화분옆에 앉아서 멍하니 꽃을 바라보고 꽃과 함께 햇볕을 쪼이기도 하면서 국화꽃의 봄 여름 가을을 추억한다. 직접 키운 꽃이라서 일까 꽃에는 정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올해는 국화가 뜻밖의 선물이었다. 항상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선물이 있으면 감사하고 기쁘다. 그것이 그저 죽은 줄 알았던 국화가지에서 국화가 핀 사건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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