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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각자의 눈

by 격암(강국진) 2021. 11. 9.

21.11.9

누구나 자기의 경험과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 섯불리 중립이나 보편을 말하는 사람은 오만한 것인데 이는 자신이 지금 '세상의 진실을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러저러한 것은 상식이다'라는 자신의 믿음을 과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눈과 입장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세상에는 내 눈이 닿지 않는 거대한 무지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섯불리 그런 식으로 말하지 못한다. 전국 지도를 모르는 사람이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이 나라의 중간이다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예는 찾아보면 무수히 많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흥미를 끄는 주제중의 하나는 정치와 관련된 것으로 사람과 성공에 대한 믿음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시련을 겪는다. 그 시련의 어려움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중의 재능좋고 운이 좋은 사람은 그 시련속에서 자기를 전부 잃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건 이런 것이다.

 

여기 여러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잔인하고 비열한 사람들은 잔뜩 봤지만 자기 자신만은 그들과 다르다는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람도 이런 저런 좀 나쁜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다. 자신은 아직 자신이 이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빼앗기지 않았다는 최후의 긍지를 지키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지킨 것이다.

 

소설 1984에서는 이런 긍지를 빼앗아 가는 정부를 묘사한다. 거기서 주인공이 가진 최후의 긍지란 그가 그의 애인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그 최후의 긍지를 빼앗긴 사람은 이제 더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그를 개조해 내는 것이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종종 듣는다. 가족을 잃어버린다던가, 큰 학대를 당했다던가하는 식의 불행을 겪으면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곤 한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아니 사람은 본래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단언한다. 한마디로 그 사람은 불행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줄서기를 당연한 것으로 아는 사람에게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은 매우 짜증나는 존재들이다. 교통혼잡의 예를 보면 알지만 그런 시도는 흔히 모두의 패배를 낳는데 혼란때문에 질서있게 줄서서 해결하면 금방 끝날 일이 훨씬 더 늦어지기 때문이다. 새치기를 한사람조차도 늦을 때가 있다. 하지만 새치기를 당연한 것으로 아는 사람은 새치기를 안하면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새치기를 안해도 결국 누군가가 새치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새치기로 인해 생긴 혼란따위는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본래 세상에 있는 것이며 변할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종교를 진지하게 믿는 신자들이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소통이 안된다. 한쪽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뻔히 보이는 진실이 다른 쪽에서는 전혀 근거를 알 수 없는 비방이거나 세상에 대한 전혀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결론으로 보인다. 그래서 종교와 정치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말로 하는 격투기쯤이 되고 만다.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나 말꼬리잡기를 계속할 뿐 진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인정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는 '사실들'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의 핵심은 믿음에 있다. 믿음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믿음이며 적어도 그저 몇시간안에 들을 수 있는 사실들로 바뀌기 어렵다. 21세기에도 지구가 평평하다던가 백신을 맞으면 빌게이츠의 조종을 받는다는 걸 믿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수준으로 존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뭘 믿는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키는 체험'에 있다. 믿음은 그 체험에서 나온 것인데 정보나 설득은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 이 체험을 주지 못한다. 감정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꼭 객관적으로 강렬한 체험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강렬한 체험을 통해 혹은 오랜시간 누적되고 반복된 체험들을 통해 만들어진 믿음의 체계는 아무 댓가 없이 간단히 대체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를 어렵게 한다.

 

예를 들어 세대차이는 각 세대가 다른 시대에서 겪은 경험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집단적으로 보았을 때 이 차이는 논리와 설득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세대가 조화롭게 사는 시대가 있다면 그것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체험과는 다른 체험을 이 여러 세대들이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같이 겪은 사람들은 동지애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전쟁같은 전쟁의 경우에도 사실이지만 지난번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같은 것을 같이 겪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차이를 가진 사람들도 같은 일을 겪으면 그 안에서 동지애를 가지게 되고 서로간의 차이를 작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불행히도 한국안에서 생겨나는 불화는 어느 정도 한국인들이 한반도의 남쪽이라는 작은 땅에 갇혀서 자기만 쳐다보고 살았기 때문에 심화되었다. 외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외국과의 관계를 한국인으로서 공통으로 겪으면 그 체험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고 한국인을 하나로 묶어 줄 수도 있을터인데 한국인은 아주 오랜동안 이 땅에 갇혀서 살았다. 의미있는 외국과의 관계따위는 없었다. 

 

일단 냉전시대는 공산권 국가들을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북한, 중국, 소련 모두 공산국가이니 우리는 일본을 제외하면 소통할 나라가 없었던 셈이고 그 일본조차 과거사 문제로 제대로 소통할 나라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의 국력이 워낙 형편없고 한국이 고립되어 있어서 한국이 바라보는 미국은 선망의 대상일 뿐 우리와 제대로 소통할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각자의 입장을 피력하고 절충하는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명령을 듣거나 원조를 받아야 하는 굴욕적 관계였다. 많은 한국의 지도층이 미국에서 유학을 했거나 자식을 미국에서 낳아서 미국인으로 만들거나 했다. 이 땅은 한국땅이지만 미국인과 한국인중 더 자유로운 사람은 미국인처럼 보였다. 

 

냉전이 끝나고 한국의 국력이 좀 더 성장하면서 이같은 상황은 좀 바뀌었다. 삼성이 소니를 이기고 현대차를 미국에 팔기도 하는 일은 벌써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이때 이런 일을 목격하면서 크게 세상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있었다. 최근에도 한국이 공식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G7같은 국제회의에 초청되며 한류로 세계에 자기를 알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런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외교같은 외교를 하기 시작했다. 아닌 일에는 아니라고 말하고, 나름 전략을 세워서 친분도 쌓는다. 세계속에서 아무 존재감이 없던 과거와는 다르다. 한국은 정말 선진국중의 한 나라, 강대국중의 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들도 오직 그것에 민감한 사람들,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일 뿐이다. 나는 얼마전에 보수정치인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잘한게 있으면 세가지만 대보라고, 금방 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현정부를 지지하는 나로서는 이 질문이 매우 비열하고 오만하게 들렸다. 문재인 정부가 잘한게 뭐냐는 질문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문재인이 아니라 다른 보수 정치인이 대통령이었으면 지금 더 좋은 세상을 살고 있겠는가하고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그렇다치고 박근혜 정권을 겪고 나서도 문재인 정권이 이룩한 것이 다 당연한 것이고 이룬게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의 한국의 국제적 지위와 수출은 해방이래 최고다. 그걸 이룩한 것은 정부가 적어도 방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어렵냐고? 보수 정권은 그 방해안하기를 못해서 나라를 수렁에 빠뜨리고 결국 탄핵까지 생기게 했다. 저 보수 정치인은 은근 슬쩍 현 문재인 정권 기간에 생긴 모든 좋은 일은 전부 그저 국민이 잘해서 생긴일이고 정부가 잘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잘한게 뭐가 있냐고 질문하고 있다. 본래 한국에 생긴 좋은 일과 정부 정책과의 인과관계를 100% 잘 보이게 만드는 일이란 한반도 운하사업같은 것을 밀어부치는 일따위에서나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류가 크게 성장했지만 그걸 문재인 정부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나 만들며 정치했던 보수정치가가 문재인 정부가 뭐한게 있냐고 말할 수 있을까? 이명박 박근혜 때 있었던 방역참사들을 보면서도 지금의 코로나 방역을 업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전시작전권을 거꾸로 돌려주고 국방에 도움이 안되었던 보수 정권과 달리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려고 노력하고 국방을 다진 이 정부가 국방분야에서 업적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보수 정치인들 중에 누가 문재인 대신에 정치를 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렇게 물으면 보수 정치인들은 여러명 손을 들 것이다. 문제인 하는 만큼은 나도 할 수 있다고. 노무현때도 그랬다. 너도 나도 노무현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마추어라고.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인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명박과 박근혜다. 그래서 정말 그들이 이 나라를 빛나게 만들었나? 

 

체험은 우리를 바꾼다. 하지만 그 체험조차도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질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다 온 한국인들이 많은 이 시대에도 서양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에서 사는 것은 거기서 사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만 하고 특히 여성들은 거기서 살면 천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각자의 눈은 이렇게도 바꾸기가 어렵다. 그야 말로 누군가의 피눈물이, 아니 생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까지 온 한국의 저력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체험들이 한명 한명씩 바꿔서 한국의 분열이 줄어들고 하나의 국가로서 좀 더 세련되 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때야 말로 진정으로 한국이 새출발할 수 있는 시대일 것이다.

 

이제 한국의 미래를 바꿀 대선이 또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당선된 이 나라에서는 어떤 결과든 나올 수 있다. 아직도 자신이 이명박 박근혜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까지 이 나라가 흘린 피땀이 부족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제 2의 박근혜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미래로 갈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아주 슬플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 살아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밝은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그런데 그런게 어디있냐면서 그걸 걷어차는 것을 보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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