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4
진리란 보편적인 것이고 통상 그래서 보편적인 사실이 더 중요하고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뒤집어 말하면 특수하고 임의적인 것은 편협한 것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 둘의 싸움은 근대화에 대한 비판속에서 일찌기 지적되어진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보편성의 공격을 받고 당대의 기준으로만 보편을 바라보며 보편적이 되지 못하는 것을 범죄로 여기거나 보편성이 있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유한성때문에 설사 당대의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보편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법과 과학을 비교해 보자. 과학은 국적이 없다. 맥스웰의 방정식이 일본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중력의 법칙이 한국 일본이라는 국적에 따라 변할 리도 없다. 반면에 교통법은 어느 정도 임의적이라 한국과 일본은 차를 운전하는 방향이 다르다. 서로 다른 법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쪽의 법이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일본처럼 운전한다면 처벌을 받거나 사고를 내게 될 것이다. 자연법칙이 교통법보다 더 중요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교통법이 안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성에 매몰되면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을 사소하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마치 당장 점심먹을 돈도 없는 사람이 국가예산같은 엄청난 돈을 말하면서 그에 비하면 1억은 돈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 질 수 있다. 교통법은 어떤 의미로 보편적이 아니지만 생생한 현실이다. 그걸 무시하면 죽는다. 유한한 인간인 우리의 삶은 온통 특수하고 임의적인 것으로 차있다. 사실 문화나 인문학은 대부분이 특수하고 임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보편에만 기반하여 합리성을 추구하는 일은 때로 지극히 비합리적인 것이 된다. 자살이 비합리적인 거라면 말이다.
인간이 표준화 기계화된다는 근대화의 문제는 지적만 되었을 뿐 해결이 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오히려 훨씬 더 심해졌다. 오늘날에는 전에 없이 빠른 통신과 물류덕분에 온 지구가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정부나 탈레반같은 곳은 유독 자주 내정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지만 세계가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과 문화적 특수성의 주장은 편안히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이 요소수를 주지 않으면 한국이 문제가 생기고 호주가 석탄을 팔지 않으면 중국이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자연히 여러가지 개인적 생활과도 연결된다. 중국의 난방문화가 미세먼지를 만들고 그것이 한국에 영향을 준다던가, 중국이 한국컨텐츠를 가지고 돈을 번다던가 하는 일이 개인과 연결되지 않을 수는 없다. 중국에서 학대에 가까운 노동으로 싸게 물건을 만들어 한국에 보급한다면 한국이 그 물건을 싸다는 이유로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윤리적인 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그런 비보편적 문화가 과연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요소수 대란이 보여주듯 유지될 수 없는 것에 의존하면 우리는 언젠가 댓가를 치루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낯선 사람이 파는 물건이라면 싸다고 해도 무조건 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우리와 소통하는 사회가 우리와 너무 다를 때 그 소통속에 존재하는 잠재적 위험은 오늘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보편성이 위협하는 경계는 국가와 국가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계는 개인에서 가족으로 지역에서 국가로 가정에서 직장으로 여러방향으로 그리고 여러 단계에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날 그 경계들에서는 모든 것을 보편화하려고 하려는 힘과 생존하려고 하는 힘이 강하게 부딪히고 있다. 엔트로피가 극대화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렇게 된 상태를 바로 죽음의 상태라고 부른다. 살아있는 상태란 어떤 경계안에 물질이 특수한 형태로 모여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것은 보편화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통상의 생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조직과 같은 유기적 단체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가족은 가족의 질서를 개인내부로 보편화하려고 하고, 국가는 국가질서를 가정에 침입시키며, 직장은 직장의 질서를 개인과 가정에게 침입시킨다. 이 힘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때 우리의 삶은 위기에 처하고 종종 문자그대로 생명이 위험해 진다.
물론 보편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보편의 성취는 오히려 종종 역사의 발전이고 성취라고 말해진다. 같은 말을 쓰고, 물자를 자유롭게 분업하여 생산해서 우리는 부유해졌다. 전쟁을 끝내고 차별을 끝내고 모두가 하나되는 세상을 우리는 꿈꾸고 성취해 왔다. 정치적 감동은 대개 더 넓은 분야에서 소통이 가능해지고 통일의 순간이 왔을 때 일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했다 시피 통일과 보편은 죽음의 힘이기도 하다. 나는 과학자로서 과학을 소중히 여기지만 주술과 미신의 세계에는 전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건 과학과 법의 관계와 같다. 어느 마을이 성황당 나무에 기도를 하면서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고 할 때 그것은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존중해줘야 할 믿음이기도 하다. 보편의 논리로 신성을 거부하지만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사실 현대국가에서도 이 점은 잘 기억되어졌다. 현대국가는 평등과 보편을 추구하여 모든 경계를 파괴하고 하나로 통일하는 것같지만 그들은 개인이라는 존재는 소중히 한다. 다시 말해 국가적 보편성이 개인의 자유와 정신을 허물어 버리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안된다고 따로 규칙을 정해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의 자유와 정신을 지키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재산이므로 현대국가에서 사유재산권에 대한 존중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적이다. 거대한 국가의 안정성은 작은 개인이라는 개념의 안정성에 크게 의존하도록 설계되어져 있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런 문맥에서 우리는 왜 공산주의의 메세지가 그토록 막기 힘들었고 달콤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경계조차 상당히 허물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산사회가 얼마나 행복하고 멋진 것이 될 것인가. 보편은 멋지다면서? 통일은 멋지다면서?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세계에 단 하나의 국가만 존재하는 미래나 공산주의사회는 지극히 자연스런 미래 비전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보편의 매력에 끌리고 있다. 개인과 개인간에 존재하는 장벽이 만들어 내는 비효율을 허물고 보편을 세우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풍요로움에 도달할 것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모든 인간이 부속품같아지는 사회다. 적어도 지난 냉전시대에 있었던 공산주의는 그랬다. 니것 내것이 없다는 것은 내 자주권도 없다는 것이다. 자주권이 없으면 정신도 없다. 그런 세계에서 인간들은 그냥 사료를 먹여서 살찌우는 가축이 아니면, 쓰다가 버리는 공구같은 것이 된다.
냉전이 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끝난 이래 자유시장주의가 역사적인 최종승리자가 되었음을 확신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보편화의 입장에서 보면 공산국가의 이상은 보편화를 위한 한가지 시도에 지나지 않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보편화의 힘은 날로 커져만 왔다. 최근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퇴조하는 것같은 징조를 보이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민주국가라는 세계의 여러나라들의 정치적 상황이 엉망이라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고 코로나 상황이 보여준 소위 선진국들의 민낯이다. 그게 어딜봐서 보편화와 이성의 힘을 믿는 합리적 시민들의 모습인가?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코로나에 대해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의 문맥에 따라 뒤로 물러나서 세상을 보면 문제는 단순히 세상에는 바보들이 많다는 비난을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보편화의 힘때문에 사람들이 정신적으로건 육체적으로건 죽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한다. 우리가 시스템의 논리로만 볼 때 그것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게 정말 옳기만 할까? 위에서 말한 성황당나무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라. 성황당나무를 믿는 사람들을 어리석다라고만 말하는것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살려는 몸부림이며 그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몸짓이다.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은 너무나 큰 피해를 남겼고 핵무기가 등장했기 때문에 세상에는 한동안 큰 전쟁이 없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는 거의 다 늙어서 사망했고 보편화가 사람들을 더 많은 지식으로 바보로 만드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반세기 이전에 공산주의니 뭐니 하면서 이데올로기문제로 형제 부모와 싸운 세대를 어리석게 생각하지만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여건은 충분히 무르익은 것이다. 나라마다 존재하는 것같다는 민주주의의 퇴조는 훗날 또 다른 파시즘의 번성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보편화의 힘은 지금도 무서운 속력으로 커지고 있다. 보편화에 패배하는 길에는 두가지가 있다. 공장이 확장되던 영국의 19세기에는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란게 있었다. 그리고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누가 공장화의 패배자일까? 둘 다다. 시대를 거부하고 기계를 파과하는 것은 공장화에 패배하는 한가지 방식이다. 변화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공장화에 휩쓸리면 공장의 부속품이 되어 역시 보편화에 패배하고 만다. 그들은 공장의 질서에 휘둘리고 결국 공장의 사정에 따라 살고 죽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공장화의 생존자인가? 노동자의 시와 소설을 쓰고, 노동자의 영화를 포함한 노동예술을 만들고 감상하며, 동료노동자를 돕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한 사람들이다.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메세지를 세상에 던지고 인간답게 살았던 노동자들이다. 공장화라는 보편화의 물결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정의하고 그걸 추구한 사람만이 시대의 생존자가 된 것이다. 단순히 당대의 보편화 물결을 거부하거나 찬성하는 것으로는 생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인쇄혁명, 과학혁명따위와 르네상스같은 것이 서구의 역사에서 비교적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것을 주목해야 한다. 더 많은 지식이 더 빨리 퍼지고, 더 보편적인 과학적 지식이 만들어 질 수록 세상은 풍요로워지는 동시에 불안정해진다. 그런 세상을 안정화시키고 거대한 현대국가를 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개인 혹은 인간이라는 것을 재정의하고 더 많이 주목해서 오히려 개인의 경계를 잘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의 출현이 없었더라면 현대사회는 인간의 지옥이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전의 낡은 신화적이고 종교적 세계관을 계속 유지하던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으므로 근대화도 뒤쳐지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근대화라는 보편화는 사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인본주의같은 새로운 믿음없이 성황당나무의 믿음을 포기할 때 보편화는 그 사회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보화로 불리는 보편화는 과거의 그것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거부하며 바보같은 소리를 하겠지만 그들은 변화를 막을 수 없고 결국 패배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하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그들도 보편화의 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싸워이겼다고 자화자찬이었지만 여러 시장주의 사회들은 빠르게 퇴조할 것이다. 말 그대로 죽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전쟁이나 질병이나 재해같은 것으로 말이다. 보편화의 독때문에 그들을 지켜줄 시스템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이 분명해 질 때 쯤이면 그들은 난민처럼 불쌍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보편성과 치뤄야 할 종말전쟁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성을 재정의 하기 위한 종말전쟁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새로운 보편성의 물결속에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합리적이지 못한 반응을 할 것이고 퇴보할 것이다.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가진 사회는 필연적으로 그 사회를 지탱해낼 기초가 필요하게 된다. 마치 근대국가가 개인에 기초하듯이 말이다. 노동 문학을 추구한 노동자만이 살아남듯이 새로운 시대는 인간을 재정의하고 부각시켜서 새로운 시대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더욱 더 인간적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새로운 르네상스가 새로운 낭만주의가 새로운 신성한 존재가 필요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거대한 집단지성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다. 종말전쟁에서 누군가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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