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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과 역사의 시계추

by 격암(강국진) 2022. 3. 25.

 

22.3.25

우리는 언제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반성을 하고 미래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우리는 뭘 반성해야 할까? 문재인 정권의 반대자도 문재인 정권의 지지자도 모두 지난 대선 이후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대개 한가지를 가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으며 '이러저러하게 했으면' 성공했을거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는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지지자이자 이재명의 지지자로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은 분명 문재인 정권의 실패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당연한 것일까? 문재인 정권은 실패이니까 그와 달라지는 것은 답일까? 정치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면 왜 노무현 정권을 실패로 단정하고 그와 다르게 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다라는 식의 말은 통하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바보라서?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는 가장 흔하고 설득력있는 지적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권은 과감한 개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개혁을 하자면 너무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 정치인은 정치가 직업이지만 국민들이 언제나 지난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처럼 길거리에 나서고 많은 관심을 가지며 개혁을 감내하고 관심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다들 자신의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이 문재인 정권을 만들어줬을 때, 그게 아니더라도 여대야소 국면까지 만들어줬을 때 과감한 개혁을 진행하고 그리고 나서는 되도록 규칙을 바꾸지 말고 그 규칙안에서 일을 해내야 했다. 노무현 정권이후 이명박이 당선된 것도 그렇고 이번 대선의 흐름을 봐도 국민들은 빠르고 과감한 개혁이후에는 안정적인 국정을 원한다. 그게 정치신인인 윤석렬이 당선된 이유고 비록 떨어졌지만 이재명의 인기가 상당했던 이유다. 이리저리 눈치보느라 법하나 통과시키는데 정권의 전부를 다 바치는 식의 지지부진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관심은 떨어지고 개혁은 흐지부지된다. 사람들은 여대야소의 국회까지 만들어줬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많이 답답해 했다. 이 실망감이 결국 정권재창출 실패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또하나는 문재인 정권은 사법개혁과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몰두했지만 이 두가지가 모두 이뤄진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후퇴한 것같다. 한때 세계를 들썩이게 했지만 북한 개방은 결국 실패했다. 이것도 하려면 더 과감하게 중국은 물론 미국눈치도 보지 말고 북한과의 협력을 진행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결과도 좀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공수처법에 몰두했지만 그 법이 만들어져서 무슨 정의가 이뤄졌는가? 오히려 작금의 현실을 보면 검사들의 집단적 반항으로 정권을 내어주게 된 것같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잊은 것이 아닌가? 오히려 사법적 판단은 더 엉망이 되고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더 바닥을 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검찰공화국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사법개혁이 된게 아니라 오히려 사법개악이 된 것같다. 윤석렬 정권하에서 개혁의 반동이 어디까지 갈지 상상하기가 두렵다.

 

이러한 지적과 반성의 끝에서 나올 수 있는 자명해 보이는 답이 있다. 그것은 핵심적 개혁과제에 집중해서 다소 부작용이 남더라도 과감하게 개혁을 진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뭐가 핵심적과제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대선전에 문재인 정권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한 대학교수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대학등록금 무료화와 대학평준화를 주장했는데 특히 전자의 경우에는 10조만 있으면 되고 대통령의 결단만 있으면 바로 할 수 있는데 이 정권이 생각이 없고 무능해서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앞에서 내가 말한 것과 그의 생각을 결합해서 이 정권은 정권 재창출을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그러니까 과감하게 대학등록금 무료화같은 것을 실시해서 나라를 구했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을까? 사법개혁이나 북한문제뿐만 아니라 부동산 정책, 인공지능 정책, 노동 정책등 여러 방면에 대해서 이런 형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젠더문제의 해결은 여가부 폐지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이런 간단한 교훈을 노무현 정권 2기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재인 정권은 왜 몰랐을까? 그들이 바보라서? 여기저기서 특효약이 있다고 떠드는 위의 교수같은 사람들처럼 똑똑하지가 못해서? 나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진정한 반성의 포인트는 거기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박근혜탄핵을 이룩할 정도로 우리 나라 국민들의 개혁의지는 뜨거웠지만 개혁은 애초에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뭘 하든 노무현 정권은 실패할 운명이었고 문재인 정권에서 뭘하든 그들은 실패할 운명이었다. 실패할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난리법석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에 이 점은 미리 예고되기 어려웠지만 노무현도 문재인도 결국 새시대를 여는 사람이기 보다는 낡은 시대가 새시대로 가는 벽을 향해 치는 또 한번의 쇠망치질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겠지만 그 형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위에서 내가 말한 저 교수의 예로 돌아가보자. 나는 사실 그 교수의 결론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나도 10년 이상 전부터 한국 교육의 근본적 개혁은 결국 대학평준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 옛날 있었던 경기고등학교 같은 명문고를 없애고 고교교육을 평준화했듯이 대학을 평준화해서 기본적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대학에 가게 하는 것이다. 등록금은 자연히 무료가 되거나 싸질 것이다. 이렇게 결론이 같으면서도 내가 그 교수에게 동의할 수 없는 점은 그런 미래가 오지 않는 것이 소수의 권력자의 결단이 없어서, 그들이 어리석어서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은 이유는 그런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자들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권이 탄핵직전까지 간 이유중의 하나는 노무현 정권이 사학법을 통과시켜서 사학재단의 운영을 투명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경원, 장제원같은 보수 정치인들은 다 사학재단 자식들이다. 보수의 뿌리에 교육 재단들이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틀을 뒤집어 엎는 정도도 아니고 사학재단 운영의 투명화정도로도 정권의 존망이 나올 정도로 당시의 개혁정권은 약했다. 다른 무엇보다 인재가 없었고 경험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이 뭘 이룩했든 그 성과는 상당부분 노무현 정권에 의지한다. 그시절이 있어서 인물이 쌓인 것이다. 문재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노무현이 만들어 낸 것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동안 국정운영에 대한 경험이 생겼기에 민주정권에서도 끌어다 쓸 인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보다는 그래도 문재인 정권에서 안정된 국정이 실현된 이유다.

 

이것이 현실인데 대통령의 결단하나면 이 나라의 교육이 일순에 바뀔 수 있다고? 머릿속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언제나 개혁에는 경제적이든 개혁피로든 지불해야할 댓가가 있고 반대자가 있다. 게임하듯 이리저리 한번 바꿔볼까 하는 식으로 나라를 확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참사만 만들 뿐이다. 이건 공산주의자들도 범했던 근본적 철학의 오류다. 자기가 세상의 시스템을 다 알고 있다는 오류. 본질을 안다는 오류. 우리는 그보다는 훨씬 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실 약간의 비전과 그때 그때 해야 할 일을 하는 용기로 일을 해나가야 한다. 미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미래로 가는 길을 막은 벽을 두드릴 뿐이다. 이번에 무너지지 않으면 다음에 무너질 것을 믿을 뿐이다.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서 두드린 것이 잘못이 아니다.

 

나도 이번 대선이 이재명이 이겼으면 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쉽고 미래가 두렵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실은 이재명이 이겼어도 시간낭비일거라는 생각이 있다. 이미 개혁의 동력은 끊겼다. 문재인 정권은 적어도 초기에는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의 힘을 받았다. 하지만 이재명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재명이 몇십만표차로 이겼어도 언론은 문재인 정권때보다 더 혐오스럽게 이재명정권을 물어뜯었을 것이고 사법부와 공무원 조직은 이재명정권을 무력화했을 것이다. 왜 안그렇겠는가. 보수도 거의 절반의 표를 가졌는데. 그래서는 5년의 무참한 세월이 지나고 나서 정권을 다시 빼앗기게 되는 미래가 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이재명 탄핵이라는 사건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겪고도 이명박을 뽑고, 이명박 정권을 겪고도 박근혜를 뽑았듯이 개혁의 반동으로서의 역사만 길어졌을 수 있다.

 

문제는 논리나 지식이나 정책이나 정의가 아니다. 그게 안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건 소수의 사람들이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개혁 공동체가 지닌 인적 물적 준비다. 사법개혁이 왜 안되었겠는가? 사람이 없어서다. 대법원장을 바꾸고 검찰총장을 바꿔서 이 나라의 사법이 바뀌었는가? 어이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이재명이 검찰총장할 수는 없었을까? 윤석렬을 검찰총장 시켜놓고 검찰개혁을 바란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금도 법이 문제라고만 생각하나?

 

개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느긋하지도 않았고 다만 자기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하면서 싸웠을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 답답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자들의 자원에 비해 개혁세력의 힘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죽하면 삼성 비판하는 보도하다가 삼성에 가서 근무하는 언론인도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언론인들과 법조인들이 돈과 인맥으로 지배당하고 있을 것인가?

 

역사의 시계추는 이미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반동이 극에 다달아 내각제 같은 걸 어찌 통과시키고 영원히 다음번 기회가 없어지는 암흑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시계추가 다시 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윤당선자가 청와대 안간다고 난리를 피우고 청와대와 신경전을 피우는 것 정도에는 짜증도 안난다. 나의 절망은 그보다 더 깊다. 어둠은 더 깊어질 것이다. 부끄럽고 위험하고 분노가 치미는 일은 이제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래야 다음도 있다. 오히려 그런 허술함이 클 수록 미래는 빨리 올 것이다.

 

다음 번이 그리 쉽게 오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기회도 사실 적어도 한명의 생명때문에 생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나는 노회찬과 박원순도 그립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우리에게 준 교훈은 개혁은 위에서 안되고 결국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즉 개혁 공동체의 크기나 조직이 충분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세상을 바꿀 힘이 있어야 세상은 바뀐다. 아쉽지만 노무현정권에서는 물론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게 충분치가 않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언제나 한명의 리더가 아니라 대중이다. 한국인은 위대한 대중이라고 나는 믿지만 한국인에게도 한계는 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렬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만큼의 한계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나라가 망해도 삶은 계속된다. 간 사람이 그립지만 남은 사람이 더 중요하다. 문재인 정권은 누구를 남겼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들이 미래를 만들 것이다. 지나간 판단에 대해서 이것만 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것은 제대로된 반성이 아니기 쉽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한번의 선택으로 확확 바뀌는 것같지만 결국 그런 것으로는 안된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충분하질 않은데 우연한 행운으로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결국 손에 들어온 당첨 로또를 스스로 찢어버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왜 한국 사회에는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그리도 많고, 왜 서로를 미워하고 반사회적이 되려고 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가에 대한 더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어딘가 높은 곳에서 법하나 바꾸고 정책하나 바꾸면 세상이 확 바뀔거라는 생각으로는 진짜 좋은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반성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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