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7
아는 것은 믿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믿는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물론 알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그건 그냥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비슷한 착각도 있는데 그건 자신이 믿고 있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믿음을 지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광신도라고 부른다.
사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분리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아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것같은 착각들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정리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믿음, 신뢰를 지식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태도를 취한다. 누군가가 밥그릇에 똥을 담았다고 해보자. 하지만 우리는 그 그릇을 깨끗히 청소하고 씻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말했을 때 그 그릇은 너무나 깨끗하다. 그 그릇을 비위생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이것이 설사 과학적으로 옳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을 비난하고 용납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옳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는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 최근 삼성에서 GOS 사태라는 것이 터졌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피하겠지만 여기서도 보면 삼성의 담당자는 이것이 기업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는 것을 망각하고 '타협할 수 없다.'같은 표현을 써서 소비자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삼성이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해 오고 있었는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삼성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그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삼성의 예가 아니라면 맞벌이 부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배우자가 야근을 하면서 직장내의 이성이랑 밤늦게 있는 일이 많다고 해보자. 그 일에 대해 남편이나 아내가 불편해 하고 의심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은 것은 팩트인데 나를 믿지 못하는 배우자가 야속하다고 할지 모른다. 이 사람도 문제는 신뢰이고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이다.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되는게 아니라 피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그런 상황을 피하고 있다는 노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매도 오이를 훔치지 않았으면 무조건 떳떳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상대의 믿음의 한계를 시험하는가. 우리는 모두 유한한 인간일 뿐인데.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돈 자체가 신용 즉 믿음이다. 삼성의 주가는 왜 만원이 아니라 7만원인가. 이것에 대해 온갖 설명을 붙여도 사실 그 설명의 대부분은 그냥 믿음이다. 외국의 어떤 회사가 주가가 얼마이고 매출이 얼마니까 삼성도 이정도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이라고 믿고 싶다면 우리는 그럼 왜 그 회사의 주가는 얼마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아니라고 해도 현대 사회의 대부분은 믿음의 연쇄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종종 그것들이 딱딱한 실체같지만 사실 그것들은 믿음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해서 알고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고 세상은 너무 크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면이 더 두드러졌지만 사실 옛날 부터도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삶은 부조리(absurd)하다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는 사실 예를 들어 인간의 생명은 지렁이의 생명보다 소중하고 세상에는 한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도 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라 믿음에 불과하다.
이런 걸 나는 이렇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동서남북이란게 세상에 있는 것같지만 지구에서 발을 떼고 우주로 가면 그런 개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발을 떼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북쪽이라는 방향은 어떤 가정을 포함하고 있는 즉 어떤 믿음을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한의 세계만을 떠돌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양자역학이 나왔다고 포탄이 날아오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 다만 저기 무한한 무지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모든 것이 그냥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뤄진 환상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이 빨리 변하는 시대에는 그것이 진짜 환상으로 변하는 상황이 정말로 금방 닥쳐올 수도 있다.
얼마있으면 대선투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기반하여 후보를 선택할 테지만 사실 그 선택은 거의 대부분이 믿음에 근거한다. 그래서 종종 사실도 믿음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모두 믿지만 사실만으로 믿음이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거꾸로 믿음은 그 믿음을 지지하는 사실들을 끌어모으게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믿음은 받아들이고 저런 믿음은 거부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 답할 수 있을 뿐이므로 여기서는 그저 내 경우를 말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하자. 생각해 보면 내 경우에는 중요한 것이 몇가지 있다. 우선 일관성이다. 사람은 실수도 하고 착각도 하며 사람은 천사가 아니다. 그래서 말의 일관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일관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데이트 폭력을 행하는 사람, 부패는 조그마한 것도 참을 수 없다면서 자신은 뇌물을 받아서 사치하는데 쓰는 사람, 남의 자식 욕은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자기 자식은 싸고 도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래서 대개 관대한 사람을 좋아한다. 즉 남을 비판하기는 해도 자잘한 것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사람을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가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는 누구나 엄격히 말하면 비리가 있고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천억을 훔치고 혼외자식이 줄줄이 있고 마약을 먹으며 시민을 학살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런 일들은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쉽게 말하며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자신은 사실 아는 게 없거나 일관성도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고백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일관성이 없다. 믿을 가치가 없다.
내 믿음의 두번째는 돈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요인은 돈말고도 많지만 사회적으로 돈만큼 강력한 요인도 없다. 그래서 큰 돈이 움직이는 곳에 대해 정보를 숨겨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숨겨진 돈들은 그것이 크다면 반드시 부패의 대상이 된다. 왜냐면 큰 돈이니까 그렇다. 누구나 유혹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곳이 불투명한 벽뒤에 있다면 그걸 불공정하게 탈취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적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쪽에 선다. 돈이 권력이고 정보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괜히 프로세스 변명을 하고, 안정성운운하면서 이걸 막는다. 규칙을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사회를 공개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도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10만원을 잘 썼나 못썼나도 비리다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조단위 돈이 오고가는 삼성승계나 50억씩 받아 먹은 대장동 비리의 뒤는 천천히 파면서 누가 지금 사회적 정의 운운하는가. 그러니까 재벌가문이 회사돈을 자기돈처럼 쓰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가 계속 터져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중의 마지막은 미래 비전이다. 이것만은 그냥 내 취향이라고 해야 겠다. 나는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의 메세지의 중심에는 돈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걸 돈이면 해결된다는 철학을 가진 듯하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나 국민복지도 돈만 있으면 그냥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문화선진국으로서의 한국도 돈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그들은 그런 사회적 가치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배부른 소리라고 말하곤 한다. 즉 그런 건 더 부자되면 할 수 있는 사치라는 식이다.
그들이 말하는 돈 혹은 풍요로움은 지극히 퇴행적이고 시대에 뒤진 것이다. 이걸 잘 요약해 주는 것이 고깃국에 쌀밥먹는 꿈이다. 고기와 쌀밥은 좋은 것이지만 행복한 삶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훨씬 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보수는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 공산당도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부러워하고 한국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에는 한류가 있을 뿐 중국문화에 대한 존경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기생충의 봉준호감독도 오징어게임의 황동혁감독도 보수정권하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보수는 진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들은 현대사회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에 한국을 자꾸 1970년대로 돌리려고 한다. 1970년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이 있었다. 그런데 2022년의 윤석렬은 지금 노동시간 제한같은게 왜 필요하냐고 말하고 다닌다. 윤석렬이 행복에 대해 뭘 안다는 말인가? 나는 그걸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우리의 행복은 지극히 많은 부분이 우리의 정신, 우리의 철학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기본이 안되어 있다. 그중에는 열심히 암기해서 시험 잘보는 공부벌레 같은 사람은 있지만 그들은 대개 감수성도 없고 타인에 대한 예의도 없다. 그저 말을 비꼬는 능력이나 있을 뿐이다. 창의력도 없고 피해의식만 가득하다. 그래서 정말 쓰레기같은 말이 잔뜩 나오는 일베같은 사이트가 보수가 칭찬하는 사이트가 된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을 행복하게 만들 수가 있다고?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모른다. 대선의 결과는 지금으로서는 알수 없지만 나는 하나는 안다. 이재명은 패배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렬은 승리해도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행복이 뭔지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불행한 길을 간다. 박근혜가 잘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런 사람은 대통령을 해도 행복하지 않을 텐데 그들은 그걸 모른다. 박근혜가 괜히 측근뒤에 숨어서 장관도 안만나며 살았겠는가? 세월호사건이나 메르스 사태같은 것의 책임추구나 당하고 싶었겠는가? 바보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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