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25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라는 말을 만들었다. 그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때문인지 우리는 종종 동물도 도구를 쓸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논쟁을 하고는 하는데 그 경우에도 그 도구 사용이란 매우 원시적인 것임은 물론이다. 우리는 운전을 하고 웹서핑을 하는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도구를 사용해서 우리가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달에 우주선을 타고 착륙한 것도 따지고 보면 맨몸으로 하는게 아니라 도구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역사에서 아니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순간에 도달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몇년전 알파고가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겼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이래로 인공지능은 아케이드 게임이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인간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 왔다.
그런데 왜 게임일까? 그리고 왜 게임에서는 이게 쉬울 까? 인공지능은 데이터에서 학습을 하는데 게임에서는 그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법칙이 있다. 따라서 이 법칙을 이용해서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 수 있고 그 데이터를 이용하면 게임을 하는 법을 숙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기보같은 데이터 없이 혼자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은 풍요로운 데이터가 있을 때 게임을 하는 법을 잘 익히고 그런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칙이 존재하는 게임에서는 더욱 더 그런 학습이 쉬워 진다. 하지만 물론 쉽다고는 하지만 복잡한 게임의 경우에는 강력한 컴퓨터와 좋은 프로그램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랬기에 경우의 수가 큰 바둑의 경우에는 겨우 몇년전에야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법칙이 존재하는 시스템 즉 게임이 너무 많다. 가장 큰 게임은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자체다. 그것도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복잡한 것이다. 반면에 비교적 쉬운 게임이 바로 도구다. 도구가 게임이라고 말하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생각해 보면 도구는 망치에서 자동차 그리고 구글 검색 프로그램에 이르기 까지 어떤 입력이 주어지면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장치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도구를 쓴다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도구의 사용이란 인공지능이 비교적 잘 배워낼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결론에 이르른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그 인공지능은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도구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바둑을 두듯이 말이다. 가장 유명한 예는 운전이다. 이미 우리는 자율운전 프로그램이 들어간 자동차를 많이 본다. 하지만 자동차의 운전실력은 인간보다 못하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것은 현실세계의 운전이라는 게임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다른 운전자도 없고 움직이는 물체도 없이 자동차 혼자 움직인다면 인공지능은 이미 운전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인간들의 행동을 포함한 주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운전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비하면 세상에는 그보다 쉬운 게임 혹은 도구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 예들은 아래에 조금 들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인공지능이 그 모든 도구들의 사용법을 모두 익혀서 모든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인공지능의 능력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이건 우리가 하늘을 나는 로봇을 만들지 않았는데 어떤 로봇이 충분히 똑똑해서 비행기조종술을 스스로 그리고 순식간에 익혀서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나는 상황이다. 그게 되는 순간 우리는 하늘을 나는 로봇을 가지게 된다.
언제 그런 때가 올까? 그건 아마도 2023년의 언젠가 일 수 있다. 사람들에게 크게 화제가 되었던 거대 언어 모델 쳇GPT는 최근 외부 프로그램을 앱처럼 쳇GPT안에서 프러그 인으로 쓰는 기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호텔 컴바인 같은 프로그램은 사람이 쓰는 도구다. 그러니까 사람이 알고 싶은게 있으면 구글 검색을 하고, 호텔 예약을 하고 싶으면 호텔 컴바인 프로그램을 쓸 것이다. 이미 상당한 능력을 보였던 쳇gpt는 인간을 위해 만들었던 이런 프로그램을 자신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사람이 특정 도구를 사용해서 일하라고 주문하면 그 도구를 써서 정보를 얻고 일처리를 했던 것이다. 이건 트렉터로 밭을 갈라고 하니까 이제까지 밭을 갈던 소가 벌떡 일어나서 트랙터를 운전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호텔컴바인을 이용해서 제주도 호텔을 찾아주고 예약해줘라고 쳇GPT에게 명령을 하면 쳇GPT는 본래 그런 정보도 기능도 없었는데 인간이 쓰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그런 정보를 찾거나 호텔 예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쳇GPT가 그 앱사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쳇GPT는 2021년까지의 데이터를 사용해서 훈련했기 때문에 현재의 정보 그러니까 오늘의 날씨같은 것을 대답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치 인간처럼 쳇GPT가 구글 검색을 해서 나온 정보를 읽고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다면 그런 한계는 즉각 극복된다. 쳇GPT는 미적분이 약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울프람의 프로그램같은 것을 사용해서 적분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던 쳇GPT는 이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때문에 몇달이나 몇년이 아니라 불과 몇일만에 그 잠재력이 말도 안되게 성장해 버렸다. 아무 도구도 쓰지 못하던 쳇GPT를 빈 스마트폰이라고 말한다면 지금의 쳇GPT는 이제까지 인간을 위해 만들었던 엄청난 수의 도구들을 모두 쓸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쳇GPT의 일만이 아니다. 테슬라에서도 로봇을 만들고 있는데 그 로봇은 자신이 움직이는 법을 인공지능이 스스로 배운다고 한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서 인간이 로봇의 움직임을 개선하는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발전을 이미 이뤘다. 이는 로봇의 하드웨어를 일종의 도구로 보고 그 도구를 움직이는 방법을 인공지능이 학습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인공지능이 하고 있는 게임의 법칙은 물리법칙이다.
여기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인간이 인간인 것에 도구의 힘을 제외한 어떤 본질적인 부분이 있을까? 쳇GPT가 대단한 것은 애초에 그것이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고 그걸 쓸 수 있게 되자 쳇GPT는 인간이 쓰는 다른 도구들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던 베르그송은 인간의 도구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 쓸 수 있는 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인간과 그 인공지능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뒤돌아보면 인간이 쓰는 도구란 말하자면 간단한 게임내지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자연법칙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같은 고등동물을 만들어 낸 과정을 인공지능이 시물레이션 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컴퓨터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도구는 대개 그보다 훨씬 더 쓰기 쉽고 인공지능은 그걸 배울 수 있다.
지금 세상은 이 소식으로 아주 뜨겁다. 무엇이든 한계가 있으므로 이 파문도 분명 어딘가에 도달하여 벽에 부딪힐 것이다. 컴퓨터의 한계가 한가지 예다. 지금도 쳇GPT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되는 이유는 컴퓨터의 계산 부하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류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가능성도 보인다는 주장도 그리 과장만은 아니다. 지루하게 오지 않던 미래는 지금 정말 대단한 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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