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이유로 아주 세계에 드문 기이한 나라다. 국민들의 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데 엘리트의 수준은 떨어지는 나라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러분이 내가 자주 하는 이 말에 동의할지 안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건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볼 까한다.
이걸 생각해 보라. 우리가 아는 선진국이란 서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 정도였다. 한국이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된게 사실이라면 한국은 제국주의를 거치지 않고, 식민지였던 곳이 선진국이 된 경우다.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제국주의없이 식민지 시대를 겪고 불과 반세기 정도만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에 도달했다는 것의 특이함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하는 선진국들은 근대화에 앞선 나라들이었고 그걸 몇백년에 걸쳐 발달 시킨 나라들이다. 선진국은 중단없이 오랜동안 근대화를 하면서 교육을 개선해 왔고 그러는 가운데 엘리트를 키워냈다. 교육은 서양에서도 있는 사람에게 한정된 것이어서 결국 엘리트층이란 기득권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양의 기득권층은 더 현대적인 사회에 어울리는 인력을 키워내고 개혁의 성과를 누적시켜왔다는 것이다. 조선 말엽에 서양에서 뭘 하고 있었나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차이는 엄청나다.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이 1905년이다. 막스웰이 지금도 대학의 전자기학 시간에 배우는 막스웰 방정식을 발표한 것은 1864년이었다. 이런 시대에 조선에서는 음양오행같은 거나 따지고 있었다. 아인쉬타인의 세미나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과 근대화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교과서도 별로 없는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이 같을 수가 없다.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가 다르다. 교육적 성과란 결국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영국의 교육제도를 들여오면 금방 아이작 뉴턴같은 과학자가 나올 수는 없다.
한국의 특이한 점은 한글을 쓰기 때문에 문맹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문화적으로 교육을 아주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국민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 지금의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짧은 발전의 역사가 가지는 흔적은 뚜렷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많은 학술용어들은 애초에 일본이 한자로 만든 것이 많다. 그래서 추상적이고 복잡한 쪽으로 가면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입되어진 말들이 쓰인다. 단지 용어 뿐만 아니라 철학적 과학적 정치적 지식들도 계속 수입되기만 했다. 우리는 우리의 성공에 놀라워하지만 사실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철학자나 과학자를 한국은 배출한 적이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칸트나 듀이나 하이데거가 없고 우리의 뉴턴도 아인쉬타인도 없다. 나는 단 한사람의 천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그 사회가 제대로 된 환경을 가질 때 그런 천재들이 그 안에서 배출된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리그가 있으니까 위대한 야구선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사람들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아마 16세기에 태어난 몽테뉴나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의 글을 이황이나 이이의 글보다 더 많이 읽을 것이다. 이런 현실의 의미는 여러가지이겠지만 글을 읽고 쓰는 것의 중대함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이란 곧 정신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나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우리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조선은 학문하는 나라였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빠르게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내용적으로는 조선은 현대 한국인에게 거의 준 것이 없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글을 읽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이것들은 우리의 내부를 그 방식대로 정리하게 한다. 이걸 생각하면 조선말엽의 정약용의 글을 읽고 배우는 것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이나 몽테뉴 수상록같은 것 안에 있는 것이 더 현대 한국인의 마음에 가까이 있다.
한국은 아직도 자기 눈으로 역사를 보고 새로운 관점을 시도해 보기 보다는 남이 만들어 낸 개념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름이라던가 고시를 패스했다던가 교수라던가 하는 직함에 약하다. 하버드나 서울대를 졸업하면 똑똑하고, 사법고시를 합격한 사람이나 어느 대학의 교수라면 똑똑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게 다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특히나 주의가 필요하다. 앞에서 말한 이유로 한국은 사상적으로 철학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이다. 자기 문제를 자기 눈으로 보지 않고 남이 짜놓은 틀을 수입해서 쓰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빈약한 사람은 뭘 해도 똑똑하다고 말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들은 시야가 아주 좁다. 수능이라는 시험 제도 안에서 죽자 사자 빨리 문제를 푸는 법을 연습해서 놀라운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반드시 똑똑한게 아니다. 오히려 가치 판단적으로는 더 바보같을 수도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더 넓은 시각을 전해줘야 할 기성세대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증상은 대학에 가서 시간이 지나도 완화되기 어렵다. 실은 대학교수의 시야도 별로 넓지 않다. 이렇게 해서 바보같은 명문대 학생이나 바보같은 판검사가 수도 없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결국 지식과 사고의 첨단에 이르면 한국에는 여전히 큰 공백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한국은 엘리트가 이끄는 나라가 아니라 대중이 이끄는 나라다. 희망은 대중에게 있다. 그 결과가 한류다. 한국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이데거도 아인쉬타인도 없지만 대중이 키운 영화나 음악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중의 참여도와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화적 상품들이 올바르게 평가받고 발전한 것이다. 한국 대중이 없었더라면 봉준호도 BTS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이 학문적 사상적 정리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그런 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결국 언어로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제대로 보게 만드는 틀이 필요하다. 그런 틀을 만들고 보급했을 때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는 더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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