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은 취업학교가 된지 오래라고 합니다. 물론 정도의 문제이기는 하겠으며 40년전이라고 해서 대학진학에 있어서 취업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점차로 심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먼저 대학의 이름보다는 과가 중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과에 상관없이 서울대고 그 다음이 고대 연대라는 식으로 서열이 있어서 고등학생들은 정말 전혀 관심없는 과인데도 서울대라는 이유로 진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취업율이 좋으면 대학이름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대표적인 것이 의대입니다.
이같은 변화는 사회적 변화가 빨라진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비지니스 환경이 워낙 빨리 변하니까 예전처럼 회사가 인재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전공과 상관없이 뽑아 놓고 천천히 일을 가르치면 된다는 발상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말하자면 과에 상관없이 대학입시때 공부 열심히 했다는 증거인 명문대 간판을 가지면 취업이 잘되고 일은 정말 회사에 들어가서 배우는 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당장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는 실무능력을 직원이 가졌는가를 본다고 합니다. 즉 어떤 일을 해낼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 사람을 뽑는다는 겁니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것같지만 이런 태도는 거의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고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잠깐 계약하고 일을 한 후에는 계약이 해지되는 거지요. 회사가 그걸 원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직원이 그걸 원하지 않아서 인지 실제로 평생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근속연수는 짧아져만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실제로도 회사들이 정규직은 거의 고용하지 않고 프리랜서들과의 계약으로 일을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런 세상이 온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대학이 취업학교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과 기업이 원하는 사원에 대한 조건이 이렇게 되었다는 두 가지가 합쳐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업은 특정업무를 잘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 C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같이 구체적인 능력을 원하는 거죠. 그런데 대학은 졸업생이 앞으로 졸업후에 뭘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없이 전반적인 지식을 가르칩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독일에서 19세기에 전문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대학이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문화로 지금처럼 분과가 생겨난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취업학교가 되버린 덕분에 더더욱 극한의 전문화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대학은 더이상의 전문화가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방법과 대학이라는 기관의 구조가 가정하는 환경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한편으로는 매우 넓은 시야를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계획과 보편적인 문제의식이 아니라 지금 당장 눈앞의 문제를 풀면서 성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점점 더 프리랜서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을 요구하는데 대학을 포함한 지금의 초중고 교육은 천천히 모든 것에 대해 다 아는 전인교육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런 차이를 저는 종종 건축과 자전거 타기로 설명하곤 합니다. 건축은 먼저 건물에 대한 전체적인 설계를 합니다. 고층건물을 세우려면 기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초가 그렇지 않았다면 고층으로 건물을 만들면 건물이 무너질테니까요. 설계도가 나오면 건물을 짓습니다. 이 과정은 오래걸리지만 대개 그 과정에서 설계가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이미 해놓은게 있으니까요. 자전거 타기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자전거를 타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전거 타기와 건축의 차이는 자전거 타기의 경우 우리는 매 순간은 즉흥적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끊임없이 판단을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발앞은 보지 않고 멀리 있는 목적지만 생각하고 있으면 자전거는 넘어질 것입니다. 일단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목적지와 반대방향으로 달리더라도 자전거를 계속 쓰러지지 않게 유지해야 합니다.
대학이 가정하는 세상은 사람이 오랜간 공부를 하면서 진리를 탐구하고 자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대학에서의 공부방식이란 보편적이고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지식을 배우는 방식입니다. 반면에 앞에서 말한 기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다 배운 후에 자 이제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 일을 배워보자가 아니라 어떤 일이건 실무를 담당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능력을 키운 후에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공부도 하고 성장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실무경험이 아주 중요합니다.
물론 일하기도 힘든데 그러면서 어떻게 공부를 하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실무중심으로 성장하지 않고 하는 공부가 나중에는 쓸모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몇년이면 세상이 또 바뀌는 세상이니까요. 특히 대학은 대학교수가 강의하는 곳입니다. 대학교수는 10년 20년전에 뭔가를 깊이 공부한 사람입니다. 대학교수들은 어떤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어떤 한 분야에서 아주 오래 오래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들이니까요. 깊고 넓게 아는 석학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공부 하다보면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분야에서는 오히려 세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이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러니까 백년 천년전의 자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현재를 해석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인문학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해석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부적인 업무능력을 강조하는 현재의 취업시장에서 보면 잡다하고 크게 알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겁니다.
어떤 식의 교육방식이건 그걸로 우리가 뭐든지 알고 깊게 알 수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요. 그러나 말했듯이 넓고 깊게 안다는 것은 지식이 폭발하는 오늘날 적어도 압도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넓게만 알면 너무 너무 지식이 하찮아서 아무 일도 못할 것이고 깊게 알고자 하면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입니다. 일단 자전거를 탈때처럼 자기 주변 환경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환경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식도 쌓고 실무경험도 쌓으면서 조금 성장하고, 환경도 바꿔가는 겁니다. 모두의 환경과 재능은 다르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같은 교과서를 공부하고 모든 걸 공부하는 방식은 대개 시간 낭비입니다. 물론 모든 공부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쓰고 읽기는 배워야겠지요. 또 아주 기초적인 상식은 배워야 할 겁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각자는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찌감치 프리랜서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 말은 작은 거라도 뭐라도 하나 일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론만 잔뜩 아는게 아니라 말입니다.
이런 것은 지금의 교육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요구합니다. 지금의 교육 과정은 유치원부터 대학졸업때까지 죽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세상에 뛰어들 준비를 하도록 하니까요. 그런 것이 전혀 필요없지는 않겠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너무 오래 있게 됨으로 해서 점점 더 세상에서 멀어지게 되는 효과도 만들어 냅니다. 이런 모순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바깥 세상에서는 수학과 과학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데 논어 맹자를 공부하는 서당에 다니는 것과 비슷합니다. 교권은 무너지고 학생들은 이것 저것 다 하느라고 너무 바뻐서 어느 것도 잘하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저는 지금의 대학 교육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1세기에도 종교시설은 있습니다. 절에도 가고 성당에도 갑니다. 전혀 취업에 도움이 안되는 철학공부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종교인도 아니고 종교교육만으로 21세기를 살 수는 없습니다. 대학교육은 필요하지만 그게 모두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것만으로 세상을 살 준비를 전부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대학입시를 위해 청소년기를 전부 전전긍긍하다가 대학에 가서는 취업준비하느라고 바쁘게 사는 요즘 청년들을 저는 어느 정도 시대적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치 근대화가 시작되던 시기에 여전히 서당다니고 서원에 다니는 식의 낡은 교육을 받는 것같은 상황에 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근면하게 살았지만 그들이 큰 돈을 교육비로 써가며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면 사회로부터 네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냐는 말을 듣습니다. 태어나서 20대 초중반이 될 때까지 공부밖에 한게 없는데 할 줄 아는게 없다는 말을 듣는다는 건 황당한 일입니다.
회사가 프리랜서를 원하는 시대라면 교육도 그걸 반영해야 합니다. 초중고를 나오고 대학을 졸업하는 걸 당연시 여기지 말고 프리랜서들도 실무경험에 근거해서 평가해야 합니다. 물론 기존의 졸업장들도 나름 평가해야하겠죠. 길게 길게 공부할 사람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복잡한 평가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름의 시스템 개발이 필요할 것이지만 AI가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국내의 크몽이나 외국의 upwork처럼 프리랜서들을 홍보하고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AI가 적용되면 이런 시스템은 훨씬 더 효율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개혁이 없으면 개인들도 기업들도 국가적으로도 더 많은 낭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낡은 시스템의 희생자는 이 모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조차도 낡은 시대의 희생자입니다. 애초에 대학은 취업학교가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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