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초록을 봐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한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산에 가는 일이 없었다. 해서 마음이 팍팍해지고 몸이 게을러졌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갑사에 가자. 그래서 우리는 갑사로 갔다.
차를 달려 맑은 하늘밑에서 반짝이는 초록빛 가로수들을 보니 벌써 마음이 기쁘다. 전주같은 지방도시 사는 즐거움은 길이 잘 되어 있고 교통량이 많지 않아 한두시간의 운전으로 갈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서울이라면 서울을 빠져나가는데에만 한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서울이라면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까지 가는데에만 한시간이 넘게 걸리기 쉽다. 그런데 전주에서 한시간 차를 달린다면 서쪽으로는 서해안에 도착하고 남쪽으로는 담양까지 갈 수가 있으며 무주도 한시간 정도 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오늘 가는 갑사도 집에서 나서서 갑사 주차장에 도달하는데 까지 한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를 타는 것도 아니다. 거리도 거리지만 워낙 국도가 잘 되어 있다.
산자락에 서니 오늘따라 넓게 보이는 하늘이 벌써 숨을 길고 크게 쉬게 만들어 준다. 막힌 가슴이 터지는 것같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도시에 살고 초록이 드문 도시에 사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약해지고 시들어간다.
절에 가면서 종교적 의미를 무시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 절이란 종교를 따지기 전의 의미도 아주 크다. 사실 한국에서 절 말고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물론 궁궐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것이고 지방도시에 경복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옥마을도 매우 드물게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 향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많은 곳이 대부분이다.
역사란 정체성이고 개성이다. 적어도 그것들의 대부분을 이룬다. 우리가 일본의 도시나 유럽의 도시를 떠올리면 쉽게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집과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어떤 도시나 마을에서 개성을 느끼고 그곳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 역사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마치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그릇같은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이래서는 애정이고 뭐고 생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어쩌면 그렇게 초록이 부족하고 역사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곳이 많은지 모른다. 다들 마치 몇십년전에 허허벌판에 만들어낸 도시인것 같다. 나무도 건물도 역사를 보여주지 못한다. 역사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일까. 그러면서 자기는 아파트 촌으로 관광을 떠나지 않는다. 일본,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곳에 가서 남의 나라의 역사에 감탄한다. 자기 나라에서는 자기 역사의 흔적은 밀어버리고 예쁘게 아파트 숲을 만드는데에만 몰두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깨끗하게 다듬어진 갑사의 길도 약간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갑사에는 자연이 있다. 초록이 있다. 만약 초록이 없었다면 그 건물들이 가진 힘이 대부분 사라졌겠지만 초록속에 서있으니 지나치게 손을 대었다 싶은 것도 다 포용이 된다. 워낙 자연이 포용력이 있다.
주차장에서 갑사로 가는 길은 먼저 유흥주점을 포함한 여러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나면 자연관찰로라고 이름붙인 흙길을 걸어 갑사로 가거나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갑사로 걸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날은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우리는 포장길을 걸어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자연관찰로로 내려왔다.
갑사에 들어서기 직전에 길옆으로 물을 막아 놓은 곳이 기가막히게 아름다워 보였다. 사실은 장소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니다. 다만 초록이 좋고 햇볕이 좋아서 어떤 각도에서 보면 천하절경처럼 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초록이 물에 반사되어 보이는 모습에 나는 발길을 멈췄다. 오후가 되어 햇살의 방향만 달라져도 내가 본 풍경이 없을 것이다. 언제나 우연히 만나서 내게만 보이는 것이 한층 더 사랑스럽다.
갑사 자체는 그리 큰 절이 아니다. 갑사는 계룡산에 있는 작은 절인데 문학의 힘으로 유명해졌다. 뭔가에 의미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큼 세상에 의미를 주게 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보는 것이 없으면 그걸 하찮게 생각하고 어디 먼데로 가서 남의것을 부러워하게 된다.
절이란 아무래도 많은 것을 과거로 부터 물려받았지만 또 21세기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광지처럼 절을 꾸미는 일도 있고 템플스테이 같은 것으로 절의 역할을 바꿔야 하는 일도 있다. 갑사도 템플스테이를 한다고 크게 써붙여 놓았다. 일본의 절은 묘지를 관리하는 일이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 한국의 절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언제까지 관리될지 모른다. 한국의 절도 당연히 생존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유학과 불교는 종교이기전에 역사다. 우리의 뿌리를 부정해서는 우리는 역사를 가질 수가 없다. 과거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발전적 계승이라는 개념을 포기해 버리면 뿌리 없이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한국에 기독교인이 많은 시대를 살고 서양 학문을 배우며 산다고 해도 과거를 너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한국은 위태로워 보인다. 한국에는 진짜 보수가 없다. 적어도 거의 없다. 이 말은 어떤 의미로 한국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와서 나무 의자에 앉아 쉬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거북이 샘물이 있다. 차소리가 멀다. 숲에 오면 좋은 것은 어쩌면 인간들의 기계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한층 가라앉고 갑사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사를 지나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용문폭포가 나온다. 무슨 엄청난 규모의 폭포는 아니지만 바람이 시원해서 세상의 근심이 사라지는 좋은 곳이다. 거기까지 올라가는 길도 시냇물을 따라 나있는데 여기저기가 참 앉아서 쉬고 싶은 곳이 많이 보였다.
용문폭포앞에서 발견한 놀라움은 약간은 도시적이다. 여기에서도 인터넷은 잘되더라는 것이다. 통화권 이탈지역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작 인터넷이 잘되는 것을 보니 그것도 놀랍다. 아내는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가족들에게 보낸다. 우리는 한동안 폭포앞 전망대에 앉아서 그 공간을 즐기다가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자연관찰로로 내려왔다. 당간지주라고 불리는 것이 눈에 띤다. 하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그 역사적 의미이상으로 맑은 하늘과 대비되는 그 모습이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다.
자연관찰로라고 하지만 뭐 대단한 관찰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 그것이 그길이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그냥 오솔길이나 흙길이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것을 뭐하러 자연관찰이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 길이 갑사로 가는 본래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흙길이 구불구불이어지는 것이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주차장 앞에서는 할머니가 군밤을 팔고 있었다. 안그래도 계절이 밤의 계절인지 사방에 밤을 깐 흔적이 보였다. 손님도 거의 없고 우리도 배가 출출해서 밤을 한접시 사서는 차로 향했다.
초록이 좋다. 초록이 중요하다. 내가 나로 남아 있고 싶다면 아름다운 것을 계속 봐줘야 한다. 그중에서 초록이 가장 중요한 것같다. 다른 일정도 있어서 갑사 방문은 짧게 끝났지만 짧아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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