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우리 두 아이밖에는 안 가르치지만 나는 한때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선생이었고 학원선생도 한 때 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누가 우등생이 될 수 있을지 누구는 어려운지를 느끼게 되는 때가 있었다. 우등생이 될 조건은 신기한게 없다. 끈기가 있고 재능이 있으면 된다. 머리가 좋은데 무식하게 공부하는 사람은 금방 우등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머리는 나쁜데 지름길만 찾는 사람은 우등생이 될 가능성이 가장 작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머리가 좋으면 지름길을 잘 찾아내는 경우가 더 많다. 머리가 좋은 것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어떤 영재나 천재는 어떤 방면으로는 머리가 좋은데 남을 속이거나 과제를 쉽게 해내는 요령을 피우는데는 오히려 머리가 더 나쁘다. 이런 스타일은 머리가 좋은데 무식하게 공부를 한다. 다른 방면으로 머리가 좋은 아이는 쉽게 흉내내고 요령을 피워서 과제를 해내며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발표하는데 익숙하다. 이런 아이는 좋은 머리를 발달시키는데 힘을 쓰는게 아니라 그걸 되도록 안쓰는데 힘을 쓴다.
초등학교 같은 때는 후자의 스타일의 아이가 굉장히 똑똑한 것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아이들은 책에서 하라는 것보다 어른들이 뭘 원하는가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그러니까 뭘 하면 칭찬받고 어른들에게 좋게 평가받는가를 빠르게 알아차린다. 이해력이 뛰어나달까. 반면에 전자의 경우는 재능이 있어도 그걸 주변에서 못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성적이 엉망일 때도 있고 한과목이 대단히 뛰어난가 하면 다른 과목은 엉망인 경우도 많다. 흔히 내성적이라 사교성도 부족하고 뭔가 한가지를 열심히 파고들고 있는데 말을 안하니까 주변에서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 반드시 어느 스타일이 나중에 성공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내성적인 아이는 지나치게 어떤 벽앞에서 그걸 뚫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망할 수도 있다. 후자의 재능을 가진 아이가 보면 너무 요령이 없어서 답답하다. 그러나 요령없는 사람이 노력으로 벽을 뚫고 나오면 그 과정에서 기른 힘을 요령 피우던 사람이 이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요령과 행운으로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높게 평가될수록 그런 사람은 스스로를 추락할 일만 남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실력보다 평가가 훨씬 높으니까 그걸 유지하기 위해 반칙을 하고 죄를 짓게 되기 쉽다. 그래도 언젠가 그 것은 무너진다. 그건 비참하고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일찍 실패한 사람쪽이 운이 좋은 것이다.
요즘은 유치원도 입시경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입시에서 이기기 위한 학원이 있다는 말에 나는 놀랐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사교육시장이 커졌는데 사교육 선생님이 팔 수 있는 것은 대개 요령이다.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부모님들은 아이가 한두달 내에 성적을 올릴 수 있기를 바라고, 성적이 반드시 올라가길 바란다. 그걸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머리 좋은 어른들은 안간힘을 다해 요령을 개발한다. 아이앞에 있는 난관을 어른들이 치워준다. 예를 들어 중요한 것은 당면한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니까 시험이나 입시를 엄청나게 분석한다. 물론 그러는 가운데 교육의 본래 목적은 어느 정도 상실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은 영어를 잘하기 위함이지 영어시험을 잘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잘못된 관습의 이유도 있고 어떤 때는 영어시험을 출제하는 선생님이 불성실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영어시험이란 아무래도 여러가지 제약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한 궁극적 테스트가 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학입시 영어공부도 그렇고 토익점수도 그렇고 이런 시험점수가 반드시 영어실력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세상에는 영재학교가 꽤 많지만 사실 영재교육이 뭔지를 알만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영재교육이란 대개 선행학습이고 그 절정에 있는 것은 송유근 같은 사람이다. 송유근은 물론 재능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선행학습이라는 잣대로 봤을 때 그 재능은 과장되기 쉽다. 몇살에 미적분 문제를 처음 풀었는가가 재능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자살한 로봇영재도 기억한다. 그 로봇영재는 국내의 로봇경시대회에서 상을 엄청나게 받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카이스트에 입학했지만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살하고 말았다. 재능있는 학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면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경시대회라는 잣대로만 재능을 평가했기에 재능이 과대평가된 면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요령교육이 가득하다. 공부를 즐겁게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어떤 공부방법도 난관을 만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 난관을 되도록 적게 만나는 좋은 공부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어른들이고 선생님이긴 하다. 그런데 그런 좋은 공부방법은 양날의 검이다. 너무 쉽게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언젠가 결국 만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을 진짜로 만났을 때 더 쉽게 무너지고 좌절하게 된다.
그래서 중학교정도까지는 공부를 잘하다가 고등학교에서 무너지는 우등생이 생각보다 많다. 말하자면 온실의 화초로 좌절과 어려움을 모르고 중학교까지 주변의 도움으로 공부를 잘하다가 고등학교 공부를 하면서 벽을 만났는데 끈기를 기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벽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사교육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옆집 아이가 사교육으로 성적을 올리면 내 아이의 상대평가는 떨어진다. 그걸 두고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악순환은 결국 인재를 망치는 과정이다. 아이들을 일찌감치 요령에 중독되게 만든다. 요즘에는 대학생도 과외를 받고 심지어 취업준비생도 과외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악의 탄생이라고 불러야 하는 과정일수도 있다. 악이란 능력이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서 탄생한다. 능력이 없는데 권력을 가졌으니 그걸 잘 못쓸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없음을 숨기는데 쓴다. 능력없는 사람이 의사가되고 정치가가 되고 교수가 되고 판사가 되면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또 과외를 받고 싶어할 것이다. 누군가의 조정을 받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불행이다.
한국 사회는 30년전보다 부유해졌다. 그런데 부유해진 것보다 사교육비는 더 많이 올라서 아이를 키우기는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니 그나마 아이가 더 행복해지면 다행일텐데 진짜 재능있는 아이들의 재능을 죽이고 아이들을 악을 행할 만한 자리에 올리는 세상이 되었다. 언제나 지나친 욕심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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