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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적 복지는 구걸에 가깝다.

by 격암(강국진) 2011. 1. 15.

11.1.15

마음주의적 복지국가라는 글을 쓰고 몇몇 사람의 반응을 보았습니다만 그 글을 오해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글의 핵심적 주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한두마디 첨언을 써보기로 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자유주의의 세상입니다. 그 자유주의의 대표가 미국이며 그래서 미국 사회는 입만 열면 자유를 수호하자고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난 글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자유주의가 경제활동에 적용된 결과인 자유시장이나 자본주의의 실패를 말하는 이야기는 폴라니를 포함한 여러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지제도, 노동 시장, 화폐시장에 대한 인위적 간섭이란 무한 경쟁을 완화한다는 차원에서 분명 자유주의의 문제를 해소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서 중대한 잊혀진 고리가 있습니다. 그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진보적 노력이란 자기모순으로 쉽사리 빠져듭니다.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하면서 신자유주의를 공격하지만 자유로운 경쟁이 가장 빠른 발전을 가져온다는 자유주의의 기본적 믿음은 이시대에 매우 굳건 하며 뿌리깊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언론의 자유같은 것도 실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똑같은 논리기반위에 서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히 여러가지 사람들이 있으며 어떤 기준으로건 지적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엘리트주의를 따르면 안되는 걸까요? 뭐가 평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수호자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그것도 자유주의입니다. 즉 다수의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의견을 개진할 때 가장 합리적인 의견이 도출될 것이란 믿음위에서 주장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최고의 지성들 몇명이모여서 독재하는 쪽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통할것이며 모든 언론은 그에 따라 입을 다물어야 하고 무식한 시민들은 강압적으로 입다물게하는것이 정당화 될것입니다. 

 

이런 자유주의의 기본적 주장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제멋대로 자기주장을 혼합합니다. 우리나라에는 FTA는 절대로 안되지만 언론의 자유, 평등은 최대로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진보가 있고 사람들은 내버려 두면 반드시 타락하고 만다는 주장을 하면서 시장의 규칙은 신성한 것이니 자유시장의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도 많습니다. 나는 종종 그들이 과연 자기주장을 일관적으로 말할수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우며 심하게 말해 결국 떼쓰고 자기 좋아하는 것이면 뭐든지 자기맘대로 하게 해달라는 어린애를 볼때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아 자유주의라는 것을 망가뜨리면 평등과 인권이라는 가치도 같이 망가지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기본시각을 유지하면 복지정책이라는 것은 심하게 말해 구걸에 가깝습니다. 경쟁에 이긴자들은 복지로 지출되는 돈을 강탈당하는 돈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는 이 난관을 가르켜 저는 종이위에 그어진 선을 넘지 못하는 개미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선은 종이위라는 관점을 유지하는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장벽입니다. 그러나 시각을 3차원적으로 가지면 즉 종이위에서보면 장벽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정한 진전이란 자유주의를 마음주의라는 것으로 바꾸면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이 마음주의적 복지국가라는 글의 핵심입니다. 즉 자유로운 경쟁상태를 통해 가장 빠른 진보가 일어난다는 관점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빠른 진보가 일어난다는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주의가 자유주의보다 윤리적으로나 발전에 대한 효율성에서 앞선다는 것이 앞의 글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광적신자들은 여전히 핵심을 보지 못하고 마음주의를 무슨 온정을 베푸는 사회쯤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게 아닙니다. 

 

여기서 서둘러 우리가 남의 돈을 강탈하고 싶거나 대량학살을 일으키고 싶거나 하면 어떻하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해둡시다. 그러나 자유주의를 따르는 나라에서도 모두가 무제한의 자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단지 서로가 서로의 자유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고 따를 뿐입니다. 마음주의적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하는 이상적 상태는 달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성자가 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렇겠죠. 다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가 되도록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그게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범죄적 행위의 욕망을 들어주는 사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이죠. 자유에서 자신의 마음이 요구하고 명령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가치판단의 중심을 옮긴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왜 자유주의가 마음주의와 같은 것이 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지난 글에 논한바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복지지출을 구걸이나 강도행위로 쉽게 말합니다. 일안하고 날로 먹겠다는 것으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지지출을 투쟁의 결과로 말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더 많이 얻어내야할 트로피처럼 생각합니다. 구걸이던 강도던 투쟁이던 이런 식의 사고방식들하에서는 정말 세상일은 힘겨루기로 빼앗는 것이라는 결론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런 결론의 최악의 측면은 사람들을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선을 나누고 서로 투쟁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상황이 나빠집니다. 한발만 물러서면 백발물러서게 된다는 논의, 내가 봐주면 저 사람은 나를 죽일 것이라는 식의 논리가 세상에 가득해 집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종이위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이미 내면에서 이 선은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선이고 선을 밀어부치거나 선을 밟아뭉개야만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래서는 결코 좋은 세상이 오지 못합니다. 자유주의적 복지란 술깨는 약같은 것입니다. 애초에 술이란게 좋은거라고 믿는 한 술의 해악은 결코 술깨는 약정도로 어떻게 되지 않으며 술이 좋다는 것을 믿으면 술깨는 약이 있건 없건 결국 알콜중독이 됩니다. 술울 깨는 약을 더 잘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주장하는 것이전에 술의 해악을 알고 술 안마시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세상은 좋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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