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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될만한 것은 모두 포화된 한국, 죽어가는 한국

by 격암(강국진) 2012. 1. 17.

2012.1.17

어제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경제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될만한 것은 모두 포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SSM이나 빵집체인점, 커피 체인점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서 공포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포스러운 풍경이란 이런 것이죠. 빵집, 식육점, 까페, 부동산, 미장원 치킨집 같은게 너무 너무 많은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 많은 동종업의 가게들이 어느새 상당수 체인점으로 교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이거나 이미 교체되어 같은 체인점이 서로 보일정도로 가까이에 붙어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OECD국가중 자영업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 같은 업종에서 박리로 싸우는 상황인데다가 체인점이 되면 이젠 더더욱 대기업에게 이윤을 빨리는 상황으로 변하니 공포스런 풍경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두 개의 생각

 

두 가지 생각이 납니다. 하나는 당연한 것 하나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건 대기업이 한국국민 먹여살릴 수 없다는 겁니다. 모두가 삼성이나 엘지에서 일할 수는 없죠, 대기업이 돈을 벌면 그 돈을 한국에서 쓰니까 한국 사람들이 다 잘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왜 틀린지는 바로 위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런 풍경이 보여줍니다. 

 

재벌관련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독점적인 힘을 이용해서 자기들이 소비하는 돈을 자기들이 다시 거둬가니까요. 자기들이 마트하고 편의점하고 빵집도 하고 음식점도하고 커피점도 하니까요. 결국 재벌관련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박봉에 시달리는 고용인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재벌가문의 사람들을 계속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두번째는 뭉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돈으로 굴러가는 법인이나 재벌등의 집단의 속성은 자신들은 강하게 뭉치고 한국사회에서 달리 뭉치는 다른 공동체는 파괴합니다. 결국 경쟁관계에 빠지게 되기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가족도, 지역공동체도, 국가적 공동체도 모두 돈의 논리에 따라 파괴되고 돈에 지배되는 미디어는 열심히 돈에 기반한 공동체를 옹호하는 이야기만 할뿐 기타 다른 공동체에는 관심이 없거나 위험한 조직으로 설명합니다.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중의 하나는 비폭력적이고 질서있는 촛불집회입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그들은 흔히 불온 집단일 뿐입니다.

 

획일화와 일자리 파괴

 

공동체의 파괴는 다양화를 파괴하고 사회를 획일화 합니다. 그리고 사회가 획일화될수록 인력은 적게 필요합니다. 상식적으로 국민이 모두 똑같은 옷만을 입는다면 그 한개의 옷을 만드는 회사는 큰 부자가 되겠지만 디자이너도 필요없고 선전도 필요없으며 능숙하게 기계가 한개의 옷을 대량으로 생산할테니 일자리가 있을리가 없습니다.  

 

될만한 것은 모두 포화된 한국이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문화적으로 획일화 되고 공동체들이 파괴된 사회라는 말입니다. 전주 비빔밥이 있는가 하면 부산 파전이 있지요. 그것들은 다 맛도 좋지만 맛이상으로 사람들은 문화를 소비하는 것입니다. 낡은 정자라도 역사가 있으면 사람들은 거기에 앉아서 시간쓰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둡니다. 

 

그런데 거대 자본은 작은 다양성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것을 쓰기 바랍니다. 그래야 큰돈을 한번에 벌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한지공예품에 관심을 가진다고 한들 그 시장이 대기업이 뛰어들 정도가 안되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밀어버리고 모두가 똑같은 것을 소비하고 모두가 똑같이 사고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국에서 1등을 하는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울수가 있습니다. 

 

4대강공사처럼 역사와 사연을 가진것들을 전부 밀어버리고 무슨 고속도로처럼 여기저기가 다 똑같이 변하는 것을 거대자본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흔히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거대자본의 입장에서는 그게 발전이고 수익나는 상황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민이 다똑같은 자기 회사의 옷을 입은 상황을 보면 황홀경에 젖을지 모릅니다. 내가 이만큼 성공했구나 하면서. 

 

그런데 그게 국민에게는 지옥입니다. 일자리를 모두 증발시키고 모든 국민들을 거대 시스템의 말단에서 가난에 시달리게 하는 일인데 그걸 발전으로 착각합니다. 

 

획일화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믿음

 

획일화의 끝은 결국 죽음일 뿐입니다. 심지어 그 1등하는 대기업도 죽을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유지가능한 경제가 아니라 착취와 약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결혼을 못하는데 언제까지 대기업에서 일 잘해줄 좋은 인력이 존재하겠습니까. 외국에서 데려오면된다고 쉽게 말합니다만 그런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문화적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적 비용을 물게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애초에 그게 그런 거라면 다른 가난한 외국들은 왜 한국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까요. 

 

여기에 한국사회의 획일화를 별로 대단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던지는 심각한 질문이 하나있습니다. 그 질문의 대표주자는 아마도 박정희일겁니다. 혹은 이병철이나 정주영같은 대기업 회장들일수도 있지요. 그 질문이란 이렇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은 박정희나 이병철이나 정주영같은 정치가나 재벌총수 개인들의 역량이 뛰어난 탓일까 아니면 한국의 전통문화가 뛰어나고 한국인들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양쪽 끝은 이렇습니다. 

 

답 A : 몇몇 개인들만 있었다면 그들이 아프리카건 동남아국가건 어느 다른 나라라도 한국만큼 성공시킬수 있을 것이다. 

 

답 B : 한국의 성공은 한국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의 힘으로 실제로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한것은 역사를 크게 바꾼 것이 없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A와 B 중간에 자신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답A에 매우 근접한 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답이 왜 기득권이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가를 설명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A를 믿는 사람은 쉽게 외국인 노동자를 천만명쯤 들여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름없는 한국인 천만명처럼 별로 비본질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즉 한국인 천만명을 외국인천만명과 교체해도 박정희같은 인물만 있으면 한국은 그냥 잘 굴러간다는 믿음이 저 마음밑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기득권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왕조시대의 왕가와 소수 귀족의 심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극에 보면 왕과 귀족밖에 보이질 않죠. 그들이 결정하고 그들이 추진하면 역사가 굴러가는 것이죠. 그러니 국민이 받아야할 정당한 몫이란 이런 사고방식에서 노비의 그것일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국가는 곧 왕과 귀족이니 노비들의 문화따위가 사회적인 중요성을 띨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여러사람들이 과연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사장님이라고 해도 그 사장의 기본적 발상이 사원이란 머슴이며 아무 중요성이 없고 일은 결국 내가 다하고 있다는 것이라면 머슴이 받을 보수가 클수가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공동체로 돌아가는 길이 살길

 

그러나 다 남의 탓만 할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런 외적인 것도 있지만 다들 자기가 돈에 홀려서 자기 욕심에 홀려서 남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내부를 들여다 보지 않은 것도 큽니다. 말하자면 야망에 홀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정신차려보니 그간 벌어둔 돈은 파괴된 가정을 통해 줄줄 다 새서 하나도 없으며 건강은 엉망이 되고 집안에는 사랑도 없는 그런 상태인것입니다. 

 

공동체로 돌아가라라는 말은 단순하게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건 남의 지역축제가 잘되는것같으니까 그대로 흉내내서 지역축제를 열면 성공할수 있을거야라는 말과 같습니다. 무조건 한복만 많이 입으면 한국적 정체성이 살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축제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축제가 성공하려면 자기가 있어야겠지요. 즉 외부손님을 따지기 전에 지역주민들이 그 축제를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개성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나는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남들이 그게 더 장사가 잘된다고 하니까 돼지고기 바베큐 축제니 와인 축제니를 하면 차별성이 있을리 없지요. 개성이 들어나질 않으니까. 

 

대화다운 대화 해본적도 없는 가정이 어느날 우리 가정을 되살려보자면서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같이 외식을 한다는 '형식'만 지킨다고 그 가정이 화목해 질까요? 우리 지역의 슈퍼만 써주는 것을 규칙으로 한다고 좋은 지역공동체가 살아날까요? 

 

공동체로 돌아가려면 먼저 사람이 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 뭘 필요로하는지 한번은 더 생각해 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지키고 돌아보는 일이 필요할것입니다. 인문학은 원래 이런일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철학공부를 해도 시험공부하듯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별별 작은 사실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백과사전이 되어서 남의 답을 외거나 자랑하는데 씁니다. 

 

한국에 진짜로 살아있는 사람이 넘친다면 그런 사람들이 다양성을 만들어 낼것입니다. 그리고도 다 뭉쳐서 더욱 확실한 한국적 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겠죠. 하버드대학교수가 이랬다더라 빌보드차트 1위니까 좋은거겠지. 프랑스의 누가 이랬다더라하는 식으로 몰려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돈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아니 오히려 돈을 버리는 길로 가는 것같지만 결국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다양성이 돈과 직장을 만들어 냅니다. 될만한 것이 모두 포화된 세상이란 결국 사람들이 모두 그만큼 단순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생명으로 말하면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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