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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AI와 시대정신

by 격암(강국진) 2023. 10. 2.

23.10.2

안녕하세요. 오늘의 질문 강국진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는 AI 기계가 아닌가라는 주제로 녹음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AI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AI 시대라는 말이 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AI 시대에 대해서 혼란된 생각을 합니다. 우선 AI 발달된 시대의 AI 인간을 모든 면에서 대체하거나 능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이런 두려워 하는 거죠. 말은 AI 시대는 악몽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AI 사용한다는 것을 새로운 자동차같은 새로운 하나의 기계를 가지는 것과 같은 거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런게 아닙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AI 기계가 아닌가에 대해서 설명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AI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가 AI 시대의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것입니다. 지난 녹음을 듣지 않아도 됩니다만 녹음을 들으시고 유익하다고 생각하셨다면 녹음도 들으시는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AI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말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과학기술의 시대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복잡한 기계가 대량생산되어 사용되어진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산업혁명 이후로부터 지금까지의 시대라고 말할 있습니다. 

 

그럼 과학기술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이에 대해서 우리가 첫번째로 지적해야 하는 것은 과학기술 시대란 결코 단순히 복잡한 기계를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시대는 분명히 다양하고 복잡한 기계들이 널리 쓰이게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를 그냥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의 시대란 제가 과학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 과학 시대의 시대정신이 시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시대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과학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과학 패러다임이란 기계를 만드는 논리이고 과학의 논리이며 과학 시대를 지배하는 문제 해결의 접근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계를 만들듯이 공장을 만들고, 학교를 만들고, 사회를 만듭니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과학기술의 시대는 세상 전체를 하나의 시계같은 기계로 보는 시대입니다. 

 

먼저 공장을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 공장은 자동차라는 기계를 만들어 내지만 자체가 하나의 기계입니다. 우리는 기계의 논리, 과학의 논리로 공장을 설계하고 운영합니다. 그래서 자동차가 대량생산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사람이 바로 컨베이어 벨트식 생산과정을 도입한 헨리 포드였죠. 사람이 공장에서 일하지만 사람도 공장이라는 기계의 부속품이라는 것이 명확해 졌던 공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 자동차의 가격은 크게 싸져서 자동차가 대중화되게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장이 기계화되었기 때문에 기계도 대중화될 있었던 것이고, 과학패러다임이라고 제가 불렀던 방식은 공장 자체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절대 공장에서 멈추는 아닙니다. 학교를 생각해 봅시다. 학교는 여러가지 과목을 그것을 전담한 선생님이 가르칩니다. 그리고 학교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학교가 공장과 다른 점도 얼마든지 지적할 있겠지만 학교가 노동자나 시민을 제조하는 공장이라는 주장도 분명히 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과학 패러다임 과학 시대의 시대정신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정신이란 결국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모든 일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이 성공하는 것을 이미 많이 봤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과학기술 시대는 단순히 사람들이 복잡한 기계를 쓰는 시대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의 내면적 변화와 사회 전체의 변화가 기계를 쓴다는 사실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과학 기술 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그것이 그이전의 시대였던 전근대의 시대를 극복이었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전근대 시대에는 세상에 무수히 많은 관행과 믿음이 존재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살고 일하는 방식이 당연하고 원래 그런 거라고 이야기 했었지만 그런 방식에 대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사람들의 믿음은 달랐고 심지어 같은 사람도 일관성있게 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복잡한 기계를 만들 없게 대충 살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과학 기술 시대에서 사람들은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보편성은 과학 패러다임의 과학기술 시대의 시대정신의 특징입니다. 보편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 시대가 도달하자 전근대의 미신과 낡은 관행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시대는 흔히 해방과 평등의 시대로 말해집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계몽이라고 말했습니다. 낡은 억압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있다는 겁니다. 현대인들은 지금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를 아주 신성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과학기술 시대의 꿈은 사실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과학적 문제 해결의 방법을 모든 분야에서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도 하나의 기계로 생각해서 우리가 그것을 설계하면 이상적으로 작동할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이런 생각의 대표는 공산주의이며 공산주의라는 사회적 실험은 역사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실패했죠. 열린 사회와 적들을 철학자 포퍼는 공산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유사과학으로 예언할 없는 것을 예언할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비판은 단순히 공산주의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 공산주의는 이러저러한 점에서 설계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어떤 다른 사회적 설계를 하면 사회가 이상적으로 돌아갈 있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막스처럼 국가를 하나의 기계로 보는 겁니다. 문제는 어떤 설계도 사실은 합리화할 없다는 겁니다. 계산이 틀려서 국가가 잘못 만들어 지는게 아니라 계산을 쓰는 과학적 접근방식으로 국가 운영의 문제를 해결할 없다는 겁니다. 어떤 사회적 설계도 진정한 과학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산주의가 뭐가 틀렸는지 알고 있다는 사람도 사실은 똑같은 잘못을 하고 있을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실패는 과학의 한계를 보여준 실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세기는 괴델의 불확정성 -ㅁ리에서, 혼돈이론 그리고 쿤의 과학 혁명의 논리같은 책에 의해 과학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우리의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AI 시대란 어떤 시대일까요? 저는 앞에서 말한 것을 반복해서 가지를 지적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AI 시대란 단순히 사람들이 AI 쓰는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새로운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과 AI 쓰는 것은 이래서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동차는 기계니까 이미 과학패러다임에 익숙한 우리의 사고를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AI 진정한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고쳐야 합니다. AI 시대의 시대정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AI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계가 아니고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란 단순히 AI 쓰는 시대가 아니라 AI 패러다임이 세상을 주도 하는 시대입니다.여기서 과학의 시대에 자동차만 기계가 아니고 그것을 만드는 공장도 기계이며 학교도 기계라는 지적을 다시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전근대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과학 시대에서 자동차같은 기계를 주면 사람이 과학 시대의 사람이 되는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는 과학 시대의 진정한 문제해결 능력 혹은 과학 시대의 진정한 지능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과학의 시대에는 사람들은 과학 패러다임에 따라 교육받고 기계를 때건 쓰지 않을 때건 과학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진정한 과학 지능이 발휘되는 사회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전근대적인 사회의 지능을 훨씬 능가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AI 시대는 여전히 과학 패러다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AI 쓰기만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래서는 진정한 AI 시대가 오지 못합니다. AI 시대에는 다른 공장, 다른 교육, 다른 사회가 필요합니다. 

 

AI 시대의 두번째 특징은 시대에서는 보편성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의 창조, 제약된 환경의 창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근대 시대의 한계와 모순이 근대시대 혹은 과학 시대를 열었듯이 과학 시대의 한계와 모순이 AI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AI 기본적으로 최적화와 데이터로 만들어 집니다.  생명의 진화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AI 패러다임은 최적화과정과 데이터가 없으면 AI 만들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데이터라는 것은 주어진 문제를 둘러싼 환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환경이 구체적이고 제한적일 수록 문제해결은 다시 말해서 AI 만드는 일은 쉽습니다. 

 

예를 들어 바둑같은 게임은 자율주행 보다 쉽습니다. 왜냐면 바둑은 명확한 게임의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은 도로위에서 어떻게 행동할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을 고려해야 뿐만 아니라 예측할 없는 돌발 상황에 대해서도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아주 많은 데이터가 있어도 알파고 같은 AI 프로그램이 간단히 인간을 능가하는 것같은 능력을 보이지는 못합니다. 

 

환경, 게임의 법칙, 제약, 질문의 내용. 이런 말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AI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질문이 뭔지, 게임의 법칙이 뭔지, 문제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걸 못할때마다 AI 성능은 크게 떨어집니다.  말은 AI 시대는 과학기술시대와는 달리 억압이 넘치고 평등이 깨질거라는 것이 아닙니다. AI 시대의 핵심은 게임을 설계하고 게임의 경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야구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각의 게임이 가지는 경계를 이해하고 각각의 경계 안에서는 각자의 게임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축구장에서 와서 공을 들고 뛰면서 인간에게는 공을 들고 있는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물론 지나치게 세세한 규칙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게임을 재미도 없고 유용하지도 않게 만들 겁니다. 하지만 좋은 규칙과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교통법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운전을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자유니까 빨간불에 길을 건너겠다고 하면 자유는 결국 모두를 부자유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사실은 AI 발달한 사회에서는 훨씬 그럴 겁니다. 왜냐면 AI 규칙에 의존해서 인간대신 많은 것을 해줄 있을테니까요. 

 

정리하자면이렇습니다. 

 

AI 시대는 다른 무엇보다 모든 분야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과 세상을 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AI 패러다임을 따르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시대가 오는 이유는 과학기술 시대의 한계와 모순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명의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AI 패러다임의 핵심에는 게임의 규칙과 경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AI 시대는 게임의 규칙과 경계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앙에서 규칙을 정해서 모두를 억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수의 게임을 동시에 진행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게임을 수도 있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게임이 대중적 인기를 얻어서 세상을 주도하게 것인가 하는 것은 게임을 얼마나 만들고 홍보했는가의 문화적 문제입니다. 그래서 AI 시대는 문화의 시대이며 대중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많은 음악을 만들지만 어느 음악이 히트칠지는 어떤 철학자나 법률가나 정치가나 과학자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AI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AI 잠재력을 살리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고 그것이 사회의 지능을 올릴 것입니다. 과학기술시대의 지능을 우리가 과학지능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AI 지능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AI 시대는 결코 한대의 기계가 혼자서 지능을 가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모두가 연결되고 서로가 서로의 지능을 올려주는 사회가 AI 시대입니다. 우리 뇌안의 뇌세포들이 연결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오늘의 질문 강국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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