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전주 생활

소박한 가게의 미덕

by 격암(강국진) 2018. 2. 3.

어제는 아내와 김제에 있는 떡복기 집에 다녀왔습니다. 작고 허름한 가게에 할머니 혼자서 하고 계시는 그 가게는 여러모로 30년쯤 전의 떡복기집을 연상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그렇습니다. 즉석떡복기만 하는 그 집의 떡복기는 1인분에 3천원입니다. 아내와 저 둘이서 밥까지 비벼먹었는데도 8천원정도밖에 안하더군요. 가게를 나설 때는 기분좋게 배가 불러서 한끼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가게를 대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비싼 임대료 때문입니다. 임대료가 비싸지면 더 많이 투자해서 더 많이 버는 좀 더 규모가 큰 사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쟁이 심해지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좀 더 홍보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인점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이때문이며 커피숍에서 온갖 토핑을 넣어서 만든 상품들을 파는 이유가 이때문입니다. 그냥 핫도그나 커피를 팔면 안되고 뭔가 비싸지만 화려한 상품을 개발해 냅니다. 그것이 비록 서툰 카피일지라도 전세계나 전국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것을 복제한 것을 사람들은 먹어 보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횟수는 제한되어 있고 그런 가게들이 많이 생기면 사람들이 한번 두번 그런 가게들을 방문하는 동안에 소박하고 싸고 맛있는 가게는 망하기 쉽습니다. 싸고 맛있는 가게가 생존할 조건은 박리다매이니 손님이 어느 정도 이상 계속 들지 않으면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높은 임대료와 무한 경쟁이 원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소박한 가게가 있기 힘든 이유에는 약간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그것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결코 그 장사를 천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게를 열어서 그 가게를 유지해서 평생 살 것이며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라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입니다. 다들 내 자식에게는 이런 가게를 시키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장사가 잘되면 가게를 키우려고 하거나 돈을 충분히 모았으니 가게를 접겠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가게 하나를 온전히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없는 것같습니다. 가게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무처럼 그 지역에 뿌리 박아 살아가는 존재인데 말입니다. 단골을 모으기 보다는 뜨내기 손님만 보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3-4년 바짝해서 투자금뽑고 가게를 접어 치우겠다는 식의 생각으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아주 쉽게 장사를 시작해서는 아주 쉽게 장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장사가 안된다고 해도 불과 3개월도 안되서 가게를 접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장사가 안되면 서둘러 출혈 세일같은 것을 합니다. 그러다가 놀랍도록 빨리 망하는 것이죠. 물론 성공도 합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아주 빠르고 대부분은 실패하는 것같습니다. 


저는 싸고 맛있고 소박한 가게가 좋습니다. 지역에서 몇십년간 유지되어온 냉면집이며 막걸리집이 좋습니다. 제 입에는 그런 가게의 맛이야 말로 지역의 자랑이고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맛입니다. 화려하기만 한 프랜차이즈의 음식들은 자극만 강할 뿐 먹고 나면 뒷맛이 좋지 않고 왠지 건강에도 나쁠 것같은 느낌을 줍니다. 짜고 달고 과식을 유도하며 먹고나면 내가 이런 음식을 그렇게 비싸게 돈을 주고 먹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까요. 저역시 그냥 보통 사람인지라 새 가게가 눈에 띄고 새로운 음식이 광고에 나오면 한번 먹어볼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따금씩 역시 소박한 가게에는 미덕이 있다고 다시 느끼고 다시 기억할 뿐입니다. 


이런 소박한 가게의 미덕은 한국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우리의 의식주에도 비싸고 화려하기만한 가게들의 음식처럼 거품이 많은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도 중심을 잃고 그저 전국 제일, 세계 제일의 이름만 추구하는 일이 많은 것은 아닐까요? 남들이 보기에 체면이 서는 직함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삶들이 한국을 가득 채우는 이유는 바로 도시에서 소박한 가게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와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느새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쓰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비를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반대로 소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쓰는 것에 멈출 수 없고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더 많이 지출하는 사람만이 경쟁에 이길 수있는 세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옷에서도 집에서도 교육에서도 우리는 점점 도박처럼 삽니다. 더 많이 투자해서 더 많이 결과를 얻겠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가게대출이 엄청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투자를 넘어서 투기의 단계에 있는 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교육비가 엄청나지면 그것은 교육 투기가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어느새 누적시키면 억대로 들어간다는 사교육비를 말하며 이것을 과연 뽑아낼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뉴욕식 브런치를 먹고 프랑스 명품백을 들고 독일제나 일본제 차를 몰며 화려한 옷을 입고 클럽에 다니는 부유한 삶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너무 많은 한국 사람들이 행복과 돈은 일단 기본적 의식주를 만족시킬 정도만 되면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경험담을 믿지 않는 것같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사람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라면 더 부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리하게 희생하여 그렇게 되려고 할 필요가 없고 꼭 전국 제일이나 전세계 최고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태도가 좀 더 합리적이 되는 쪽입니다. 


저기 바다 건너 어딘가에는 천국이 있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은 문제가 아주 많은 나라지만 세계에 문제가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저는 직업상 여기 저기 출장도 많이 다녀봤고 영국에서 반년 이스라엘에서 2년 미국에서 4년 일본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어느 사회나 나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외국의 스타일의 뭔가가 꼭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한국은 이미 그 수준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느낌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에서 비싼 임대료의 역할을 하는 것은 최저생계비입니다. 즉 우리는 그렇게 많이 벌지 않아도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본적 지출이 많은 나라에서는 이렇게 안되죠. 높은 교육비와 주거비 그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풍토가 만드는 지출따위는 우리가 소박하게 살 수 없게 만듭니다. 


교육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시대인 것은 맞지만 분명 대학교육만 필요한 것은 아닌데도 7-80%의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나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차피 그 대졸생을 모두 취직시킬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교육비는 비싸고 그걸 융자내서 나중에 갚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안벌고 나름대로 살자고 하는 꿈은 외면당하기 쉽지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기본 복지를 강화해서 식료품비, 주거비, 교육비등이 싸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복지 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일은 하지 않고 놀기만 할 거라고 말합니다. 모든 말은 흑과 백처럼 100% 맞거나 틀리지 않으니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문제는 적당한 수준이죠. 문제는 지금 우리가 한국을 보면서 이것이 건전한 사회라고 느끼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이 사람들이 너무 놀아서 문제입니까? 유치원생부터 입시경쟁에 끼어들어서 그다음에는 취업경쟁에 생존경쟁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너무 놀까봐 걱정한다는 것이 정상일까요? 게다가 우리는 과연 의미있는 일에 바쁘게 살고 있을까요? 그 공부가, 그 노동이 의미가 있습니까? 그건 그냥 높은 경쟁때문에 나타나는 겉만 화려한 음식들과 다르지 않은 거 아닐까요? 부질없는 거 외우고 부질없이 야근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소서 쓰기와 스펙쌓기가 과연 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또한 진짜 그 지역을 대표할 맛집은 소박한 가게의 장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냥 머리로 뚝딱뚝딱 하루 아침에 만들어 내는 메뉴는 스쳐지나가는 유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겉만 화려한 삶이 승리하는 사회에서는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유행에 떠밀려서는 교육의 기조도 자꾸 바뀌고 공부의 기조도 자꾸 바뀌며 삶의 목표도 자꾸 바뀝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한 곳으로 떠밀리죠. 자기식대로 살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소박한 가게는 죽습니다. 소박한 삶은 망합니다. 진짜는 죽고 독창적인 삶은 망하고 쭉정이만 유행따라 성공합니다. 


진짜 개혁적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아주 곤란한 시기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을 놀라게 할 개혁적인 것이란 남들이 모두 관심없는 것을 하고 있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불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니들은 내가 시키는 것이나 하라면서 근면을 강조하고 일만 많이 시키려고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진짜 개혁적 생각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정답은 이거라면서 모두를 밀어대는 세상에서 어떻게 개혁가가 살아남을 수가 있겠습니까? 일관성없이 그때그때 아무말이나 하는 기회주의자들이나 살아남지요.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치는 경쟁의 승리에서 나오며 따라서 눈앞의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도 한국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객관적으로 최고의 삶인가를 배워서 그렇게 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가 지키고 키워온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남이 뭐라고 평가하는가는 두번째 문제인 것이죠. 현실적으로 생존에는 타인의 관심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소박한 가게들이 살아남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보다 개인화된 SNS같은 미디어는 판에 박은 듯한 프랜차이즈말고도 곳곳에 남아있는 소박한 가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초라하고 어디에 선전같은 거 한 적이 없는 가게도 알려지는 일이 많습니다. 내가 김제에 있는 떡볶이집을 알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아내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런 가게도 있다면서 말해 준 것입니다. 


나는 소박한 가게가 좋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삶들이 한국을 채우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괴로운 삶이 아니라 속이 알찬 삶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추구할 때 한국은 지금도 꽤 좋은 나라지만 훨씬 훨씬 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만 살아남고 수도권만 붐비는 나라가 아니라 지역이 살고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