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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우리는 왜 쉬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어야 하는가.

by 격암(강국진) 2019. 1. 22.











안녕하세요. 오늘의 질문. 강국진 입니다. 오늘은 쉬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쉬뢰딩거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3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입니다. 하지만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를 하던중 유태인 박해 문제로 여기저기 방랑을 하다가 1940년에야 아일랜드의 더블린 고등연구소에 정착합니다. 


쉬뢰딩거는 양자역학 분야에서 쉬뢰딩거의 방정식으로 유명해서 사실 조금만 물리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학자죠. 쉬뢰딩거 방정식보다는 약간 유명하지만 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굉장히 유명합니다. 쉬뢰딩거는 1943년에 더블린의 티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연을 하게 되는데요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1953년에 DNA 입체구조모형을 발표해서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왓슨과 클릭은 바로 책이 그들에게 연구의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쉬뢰딩거는 현대 물리학과 생물학 모두에 기여를 학자인 셈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짧은 책입니다. 그리고 책이 가지는 결론도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줄로 수도 있죠. 그것은


생명은 유전자라고 불리는 분자가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라는 것입니다. 


굉장히 간단하죠. 요즘 세상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1991년에 책에 서문을 로저 펜로즈는 여전히 우리는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도 책은 추천받고 있는 고전입니다. 그럴까요?


책을 아직도 읽어야 하는 한가지 이유는 과학이 발전한 것과는 별개로 일반 사람들의 선입견은 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양자역학이란 원자나 분자같은 작은 것에만 관련된 것이며 그것은 생명현상이나 사회를 이해하는데에는 가르쳐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쉬뢰딩거가 책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생명이란 사실은 양자효과가 만들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데 그게 양자역학적 효과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양자역학을 이렇게 늦게 발견하게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그것없이는 사람은 사람이 되기는 커녕 존재할 수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쉬뢰딩거가 말하는 양자효과란 바로 분자구조의 안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자구조를 설명할 때는 종종 둥그런 구슬 같은 것을 막대기로 연결한 그림을 그리고는 합니다. 여기서 구슬은 원자를 상징하고 막대기는 원자간의 연결을 의미하는 것이죠. 하지만 진짜 분자와 이런 구슬-막대기 모형사이에는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구슬 막대기 모형은 쉽게 연속적으로 모양이 바뀝니다. 예를 들어 구슬과 구슬 사이의 거리는 아무 값이나 맘대로 수가 있죠. 


그런데 진짜 분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자의 세계에는 양자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자들은 불연속적인 에너지 상태들만 가집니다. 다시 말해 서로 뚝뚝 떨어진 상태들만 존재하고 중간상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양자효과 불연속성은 대단한 일을 합니다. 분자나 원자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를 않는 겁니다. 여러분이 떡이나 케이크로 집을 지었다고 해봅시다. 시간이 지나면 떡으로 만든 집은 조금씩 기울어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전혀 다른 모양이 되겠죠. 분자나 원자는 그런게 아닙니다. 양자효과때문에 변하지를 않습니다. 에너지를 받아서 다른 모양으로 변해도 대개 조금 지나면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눈사람을 발로 찼는데 조금 지나면 눈사람이 정확히 같은 모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자나 분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물건들과는 다르죠. 


그런데 영속성이 중요할까요? 만약에 유전자가 떡으로 만든 집같은 거라면 하나의 세포를 수도 없이 복제하면서 유전자는 자꾸 변하게 겁니다. 다시 말해서 돌연변이가 마구 생겨난다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이 방사선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방사선은 에너지가 높아서 DNA 구조를 바꾸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사선에 오래 노출되면 사람이 죽죠. 그러니까 양자효과가 없어서 분자가 떡으로 만든 집처럼 행동한다면 생명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건 뒤집어 말하면 사실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고 생명현상을 본다면 생명체들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기적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사람의 몸안에는 세포가 30조개가 있다고 합니다. 세포는 하나의 세포에서 복사한 겁니다. 이렇게 많이 복사를 하는데도 유전자가 변하지 않고 기형아들이 대량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양자효과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자효과 때문에 살아 있는 인간이 양자론을 이렇게 늦게 알게 이유는 뭘까요? 날개를 가진 새가 수천년이나 걸려서 자기가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양자효과로 존재할 있는 인간은 양자효과라는것을 알게되는데까지 수천년에서 수십만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양자역학은 어떤 의미에서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이론이라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닌다던가 상자를 열기전에는 안에 있는 쉬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 있을 있다는 말을 이해한다는 말은 장님이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이해한다는 말이나 비슷한 것입니다. 체험적으로는 이해할 없죠. 


양자역학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울까요. 이유는 원자가 인간보다 훨씬 작기 때문입니다. 너무 작아서 양자효과를 인간이 보고 느끼지를 못하는 거죠. 말도 들으면 당연한 것같은데 쉬뢰딩거는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시뢰딩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확률적이고 불확실성으로 가득 곳이라고 말합니다. 세계의 본질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입니다. 그래서 정돈을 해둔 집이 시간이 지나면 엉망이 되는 것처럼 본래는 모든 것들이 원자나 분자의 열운동에 의해서 무질서해 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우리는 무질서를 만들어 내는 힘에 둘러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뭔가를 생각한다던가 뭔가를 느낀다는 것은 무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규칙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귀를 찢어버릴 것같은 잡음들 속에서 음악감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우리가 문명을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킬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세계에 가득찬 무질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둔감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질서있는 생각을 하고 보고 느낄 있는 존재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양자효과를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존재여서는 안되는가 인간이 원자보다 훨씬 큰가에 대한 쉬뢰딩거의 설명입니다. 


쉬뢰딩거는 이것을 가르켜 물리학 법칙의 통계적 성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름을 붙이고 연구를 하는 대상들은 대개 하나의 원자같은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원자들로 이뤄진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원자 하나 하나가 어떻게 되는가는 쫒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통계적인 평균을 보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소리는 공기 원자들이 움직이는 것이지만 우리는 원자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쫒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막에 공기원자들이 가하는 평균적인 압력을 느끼는 것이죠. 


세상은 기본적으로 무질서합니다. 무질서가 없어지는 경우는 절대0도에서 밖에 없으며 그러니까 진짜로 무질서가 없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질서에 비해 무질서가 작으면 우리는 무질서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아주 좋은 근사가 됩니다.


지구 주변을 도는 달은 마찰이 없이 같은 궤도를 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수간만으로 인한 마찰때문에 달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추는 공기의 마찰때문에 결국은 제자리에 서지만 우리는 그걸 마찰 없는 운동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시뢰딩거가 말하는 생명이란 무질서와 질서의 경계에 있는 어떤 것입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대로 무질서로 끌려간다면 그것은 죽은 시체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질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생명이 정말로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진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유전자는 그저 분자 조각이나 소금 결정같은 모양으로 남아있었겠죠. 변화가 너무 빨라서 자기를 지킬 수가 없으면 돌연변이는 종을 멸종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서서히 변하는 유전자는 진화를 통해서 인간처럼 고도의 질서를 가진 생명체를 만들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존재할 있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이 주는 분자의 안전성은 물론 적절한 수준의 질서와 무질서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설명으로 충분히 느끼셨을지 모릅니다만 쉬뢰딩거는 창의적이고 권위에 기대지 않는 사고를 하는 사람입니다. 책에서 설명할 없는 것에 대해 거듭 사과를 하지만 사실 그는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고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누구도 가본 적이 없을 것같은 깊이와 폭으로 전개 됩니다. 출간된지가 80년이 되었는데도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했다는 강연은 지금 이대로 강연을 해도 굉장히 훌룡한 것으로 여길 있는 강연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아직도 인식과 사고에 대해서 쉬뢰딩거가 말한 것을 인류는 파헤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으면서 줄을 읽게 됩니다. 


한가지 이야기만 하면서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생명에 있어서 유전자가 가지는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들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거의 똑같은 논리를 인간 문명에 적용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있을 것입니다. 


유전자가 물렁물렁한 것이었다면 수없이 많은 충격들이 생명이 계속 없게 했을 것입니다. 인간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법을 글자로 기록했다는 것은 사회의 유전자를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법이 글자로 써있으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규칙의 원본을 가지게 됩니다. 법은 물론 우리가 바꿀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일단 정해지면 쉽게 맘대로 바꿀 수있는 것은 아니라서 누군가가 애매하게 법칙을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됩니다. 


결국 인간이 오늘날의 복잡하고 거대한 문명을 이룰 있었던 것은 문자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많이 존재할 있었던 법이나 정보의 돌연변이들을 억제해서 안정적인 문명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죠. 쉬뢰딩거의 양자역학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같이 생각해 보는 것은 유익하고 재미있게 책을 즐기는 한가지 방법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윈 쉬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했습니다. 여기까지 강국진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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