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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한국의 집과 사생활

by 격암(강국진) 2019. 4. 10.





오늘은 한국의 집과 사생활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저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뇌과학을 했던 사람이지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이스라엘에서 2년, 미국에서 4년 그리고 일본에서 10년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집을 보게 되니까 한국식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당연해 보이지 않더군요.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그런 저에게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이 옳다 그르다는 식으로 듣기 보다는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8년 현재 한국의 전체가구의 약 59%는 아파트로 아파트는 현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집입니다. 물론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그런 집들은 너무 비싸거나 너무 외진 곳에 있거나 주변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아니면 그저 방한칸 수준의 원룸들입니다. 품질도 대개 좋지 못합니다. 


결국 한국에서 우리는 아파트에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0%라는 숫자 이상으로 한국인은 아파트에 사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은 예를 들어 일본처럼 단독주택이 훨씬 더 많은 주거 문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종종 아파트가 아닌 집을 시골에 있는 넓은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게 가능한지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겁니다. 상상력을 억압당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억압을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2007년에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써서 한국의 주거문화가 당연한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프랑스사람에게 한국의 아파트는 비싼 고급집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살기에는 아파트가 편하고 좋지라는 말을 단정적으로 말하고는 합니다. 물론 그 분들이 아파트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분들이 말하는 편하고 좋다는 것이 뭘 말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집에 사는 것이 자연스럽지 모두가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걸 뒤집어 말하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파트는 모두를 위한 주거가 아니라 특수한 사람들을 위한 주거이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 과외로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실 아파트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거의 집이 아닙니다. 콘프레이크가 제대로된 식사가 아닌거나 마찬가지죠. 우리가 우리의 주거를 이런 식으로 단순화해 가면 미래에는 한국의 보통사람들은 관처럼 생긴 캡슐이나 자동차를 집으로 부르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주 비싼 값을 내고 말입니다. 이미 홍콩에서는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요. 


원칙적으로 말하면 아파트도 여러가지 형태가 가능합니다. 복층아파트도 있고 한옥형 아파트도 요즘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에 어울리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

혼자 살거나 가족들 사이에서는 프라이버시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왜 제가 아파트가 거의 집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사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이 집이 왜 필요할까요? 이건 집이 필요없는 사람을 위한 집인 겁니다. 이건 그냥 개인적인 물건이나 보관하고 밤에 들어와서 잠만 잘 사람을 위한 공간입니다. 집이란 본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어느새 집을 그냥 잠만 자는 곳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한국 사람들은 장시간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젠 전보다는 여가시간이 훨씬 많죠. 이제는 한국도 주5일 근무제가 자리를 잡아서 토요일은 완전히 휴일이 되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야근도 덜합니다. 우리의 여가시간은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점점 늘고 있는 은퇴한 사람들의 경우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요즘은 외식도 많이 하지만 집에서 취미로 요리를 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유명관광지에 가는게 아니라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호캉스라는 것도 유행입니다. 하지만 집이 카페나 호텔같다면 더 좋겠죠. 이제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집이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장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만한 이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멈춰서서 물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시대에 아파트가 나에게 적합한 집인지 말입니다. 저는 종종 사람들에게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자세히 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한가지를 뚜렷하게 느끼게 됩니다.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는 이미 아파트는 거의 실종상태입니다. 요즘은 드라마에서 부자는 단독주택이나 고급 저층 빌라에 살고 가난한 사람은 옥탑방같은 곳에 사는 것으로 나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미디어에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한국인들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한마디로 아파트에 사는 삶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컨텐츠 안에서는 그런 변화가 미리 일어난 것입니다. 비록 영상속이기는 하지만 아파트에서의 삶이란 보기도 싫을 만큼 아름답지 않은데 우리는 정말 계속 이렇게 아파트만 쳐다보면 살아야 하는 걸까요? 


아파트도 원리상으로는 여러가지 구조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한 사람을 위한 주거입니다. 설사 그 평수가 40평, 50평이되도 상황은 아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그 구조가 대개 중앙에 거실을 가지고 그 주변에 거의 같은 크기의 방들이 둘러싼 형태입니다. 한국 아파트에서는 구조로 보건 방음상태로 보건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뭘하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한국에 있는 흔한 아파트에서는 프라이버시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방문을 닫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방문 너머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아파트가 어떤 곳인지는 집에 수험생이 있거나 어린 아이가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집에 개구장이라도 한명 있으면 아파트에서는 아이와 떨어질 수 있는 시간이 한시도 없습니다. 수험생이 있으면 대개 그 집안의 사람들은 티비도 못보고 말도 크게 못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대개 수험생을 학원이나 독서실로 보내죠. 50평짜리 아파트라도 늙으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사는 것은 대개 피차간에 서로 매우 피곤한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집안에 같이 있으면 서로 눈치를 많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당연한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세가지 예들을 들어 드릴 테니까 그게 아파트와 같은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세가지 예들이란 첫째로 중앙에 정원이 있는 ㄷ자나 ㅁ자 형태의 한옥이고 둘째로는 평수는 크지 않지만 3층 4층으로 짓는 협소주택이며 마지막으로는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주었던 쌍문동 골목같은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골목입니다. 


이런 집들은 집이 바깥 공간과 이어지거나 여러층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원하면 자기의 공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집에 가면 계속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이 아닙니다. 40평짜리 아파트와 20평짜리 2층 주택은 서로 다릅니다. 아예 층이 다르면 훨씬 강하게 분리가 일어나죠.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파트는 대개 그곳에 오래 머무는 전업주부 한 사람을 빼고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바깥으로 돌아다니게 만듭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는 상황은 불편하니까요. 아마 결혼한 남자들은 대개 동의하실 겁니다. 결혼한 남자들의 로망중의 하나는 지하실이나 다락방을 가지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그곳에서 혼자 있을 수 있게 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여자들도 말할지 모릅니다. 나도 그렇다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설사 결혼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때로는 혼자 있고 싶습니다.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타인의 존재를 느끼면 그게 안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오락을 하는지 만화를 보는지 들킬 것같아서 조마조마하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집이 휴식의 공간이나 오락의 공간이 안됩니다. 가능하다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아파트는 많은 것을 파괴했습니다. 지역커뮤니티를 파괴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더 힘들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엔 요양원에 입원시킬 정도의 중증이 아닌 증세가 있는 노인들도 낮에는 어디 시설에 맡기더군요. 옛날이면 동네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이라 좀 더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파트촌에서 노인이 집을 나가면 안심이 안되죠. 이런 식으로 동네사람들이 다 잘 알고 지내는 시대와는 달리 사람들이 분리된 아파트 시대에는 비용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는 집다운 집이 아니라 집의 많은 기능을 뺀 주거, 집에 와서 잠만 자는 독신을 위한 주거입니다. 이것 자체로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프라이버시를 포함하는 여러가지 욕구가 증가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한국의 밤문화가 이렇게 화려한 것 그리고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이렇게 커진 것에 한국의 주거문화가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집에 가서도 쉴 수가 없으니까 집에 안들어 가는 겁니다. 학원에 안가면 오히려 아이들이 왕따가 된다면서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하루종일 집바깥을 돌아다닙니다. 그 옛날에 골목에 놓여진 평상에서 만나서 떠들던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이제 키즈카페로 갑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돈이죠. 


미국에는 몇평짜리 집인 타이니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의 대부분의 기능을 바깥으로 아웃소싱하고 집을 줄여서 집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굉장히 비싸고 평수도 30-40평이나 하면서도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바깥에서 여러가지 지출을 하는 집에 삽니다. 결국 굉장히 지루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거나 아니면 생활비가 증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집을 그저 잠만 잠깐 자는 곳으로 여긴 다음에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 모두 따로 돈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스럽고 가장 저렴한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활의 질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주거가 좀 다를 필요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거에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그 억압이 결국 우리에게 온갖 명목으로 돈을 내게 하는 거지요. 이래서 경제적이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두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파트의 함정에 빠졌다는 겁니다. 아파트가 이미 우리에게 꼭 적합한 집이 아닌데도 우리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수도권의 인구를 전국적으로 분산하는 것을 막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 옳겠죠. 또하나는 아파트에만 살다보니 아파트 이외의 주거를 잘 그리고 효율적으로 짓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한 것도 큰 것같습니다. 앞으로는 협소주택이라던가 주택으로 이뤄진 단지의 조성이나 마을 재생에 대해서 더 많은 투자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미 하고 있지만 그 고민이 지속되어야겠죠. 그런 고민의 끝에서 아파트 말고도 다른 방식의 주거가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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