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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해방과 주인정신

by 격암(강국진) 2019. 10. 24.

19.10.24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흔한 질문에 대한 답이 뭐라고 믿건간에 우리는 과연 이 질문이 뭘 묻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말해 여기서 말하는 이 나라라는게 어느 나라인지, 그 주인이란게 뭔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우리는 사실 우리가 찾을 답에 대한 선입견을 질문안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질 때 그 답은 무의미해 진다. 

 

 

 

 

 

일상생활에서 주인이란 통상 대개 물건이나 어떤 대상을 소유한 사람을 가르키거나 어떤 집단을 주도하는 사람을 말하는 말이다. 우리는 집의 주인이고 차의 주인이며 애완동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인이란 주로 소유와 소유물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상에 물든 우리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다는 문장을 제법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애초에 이런 소유의 개념이 무한정 자연스러운게 아니다. 

 

우리가 우리는 우리 몸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약간 석연치 않음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우리 정신의 주인이라고 말하면 그 석연치 않음은 더욱 더 증폭된다.  우리가 우리 몸의 주인이라는 말은 우리라는 존재가 우리 몸과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물질적인 영혼같은게 있어서 그것이 육체를 조종하고 소유한다는 식의 가정이 들어가야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설혹 이 비과학적인 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우리 정신의 주인이라는 문장이 되고 보면 이젠 갈 곳도 없다. 누가 누구를 소유한다는 말인가? 정신을 소유하는 것은 정신이 아닌가?

 

주인이라는 말은 유기체나 생태계처럼 서로가 상호 의존하며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무의미하거나 애매모호한 말이 된다. 주인이라는 말은 소유하는 자와 소유되는 자로 대상을 가르고 그 관계를 일방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쪽이 저쪽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 반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의 뇌는 우리 몸의 주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 문장은 우리의 팔다리와 내장기관은 모두 뇌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이며 말하자면 우리가 신고 벗는 신발같은 존재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런데 유기체란 그런게 아니다. 어떤 의미로 우리의 뇌는 우리의 내장의 지시를 받고 있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조종한다는 말인가? 

 

몸에서 벗어나서 가정이나 회사로 나간다고 해보자. 이 가정의 주인이나 이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사람이 내가 가장이니 내가 주인이다라고 하거나 내가 사장이니 내가 주인이다라고 했다고 하자. 이런 대답은 공식적으로 선언되는 순간 반발을 가져올 것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그런 선언과 구분은 그 사람을 제외한 조직의 다른 사람들을 무가치하고 교체가능하며 일방적으로 명령을 듣는 존재로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방향을 돌려서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나라라는 부분을 돌아 보자. 여기서 말하는 나라란 어느 나라인가?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니, 언제 누가 세운 나라를 말하는가? 한국은 일제에서 진정으로 해방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려면 이 나라는 우리가 세웠다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일제의 진정한 청산이란 그것이다. 진정한 주인찾기다. 이 나라는 일본 없었으면 발전못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미국이 해방시켜준 것이지 우리가 해방한 게 아니라는 타력에 의한 해방론에 대해 자신있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해방된게 아니다. 진정으로 해방된게 아니면 진정으로 나라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나라가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정체성의 혼동은 건국절 논란같은 게 아직도 존재한다는 말이 나오게 만들고 있다.  

 

나라 만들기는 끝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나라만들기 즉 해방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경제를 부흥시키면서 그리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이 나라에 질서를 쌓아올리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추진하면서 나라를 여전히 만들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 온 나라가 이제는 기본적으로 진짜 우리가 만든 나라라는 확신이 모두에게 있을 때, 이 나라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에 대한 의견이 굳건해 졌을 때 그때가 바로 우리가 진짜로 해방이 되는 날이다. 

 

사실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는 때로 그들이 정말 주인으로서의 자각의식이 있는가를 의심할 때가 있다. 주인이라는 말을 혹시 그 사람은 쓰고 버릴 권한이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이 나라를 쓰고 버리고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지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라고 질문 할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인가?

 

유럽의 상류층은 전쟁이 나면 가장 앞장서 나가 싸웠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왕과 귀족은 애초에 나가서 싸우는게 일이었다. 그들이 그들의 존재의미를 찾는 가장 바닥에는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들의 나라는 그렇게 정복전쟁으로 만들어 지고 지켜진 나라다. 그 연장선상에 서있는 것이 유럽국가이므로 비록 공화국에서는 누구나 그 나라의 주인이지만 귀족이나 상류층은 더 큰 주인의식을 느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면서 나가 싸운 것이다. 

 

이와 크게 대조를 이루는 것이 한국의 보수정권이다. 보수 정권이었던 이명박 정부를 보라. 국방부장관빼고는 대통령부터 전부 병역에 대해 의혹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한때 유력대선후보였던 이회창도 병역비리가 치명타가 되었다. 황교안도 그런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도 대한민국의 주인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대한민국을 쓰고 버릴 권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이런 것들은 노무현이 육군 병장출신이고 문재인이 해군특수부대 UDT출신인 것과는 다르다.

 

한국의 재벌들은 어떤가? 재벌을 지배하는 재벌가문의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그들은 한국의 주인이라고 느끼는가.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약 일제시대로부터 독립운동에 후원하던 가문이 있었고 그런 기업이나 가문이 시장경제의 승자로 지금 남아 있다면, 한국이 보다 주체적으로 개국했다면 그런 기업과 가문의 사람들이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좀 달랐을 것이다. 

 

이 나라에는 지금 두개의 건국신화가 부딪히고 있다. 하나는 이 나라는 이승만이 세운 것이며 박정희와 전두환이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나라란 고깃국에 쌀밥 못먹는 지지리 가난한 사람들이 밥은 먹고 살게 해준 나라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걸 제대로 된 건국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밥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나라의 전부라면 그럼 누가 고기를 던져주면 그런 나라는 당장에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가 어떻게 먹고 사는게 전부 일 수 있는가? 역사적 문화적 긍지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건국신화는 매국노를 양산하고 이기적 인간을 양산하며 독재를 찬양하는 건국신화가 아닌가? 이런 걸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게다가 한국의 경제발전이 보수의 공이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허풍이다. 삼성이나 현대를 보자. 정말 삼성이나 현대는 민주화운동의 혜택을 안받았나? 민주화없이 민간 시장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민중이 독재와 싸워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건 재벌이다. 그래서 지금이 재벌천하가 된 거 아닌가. 지금이 전두환이나 박정희 시절같다면 우리나라는 북한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삼성과 현대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독재정권이 자기재산처럼 일반 시민의 재산은 물론 재벌의 재산도 수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자유시장을 찬양하면서 한편으로는 독재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의 기본적 믿음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자유주의는 자유가 우리를 발전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독재가 아니라 말이다. 

 

언론은 그간의 민주화운동이 이뤄온 자유와 복지혜택의 증가를 무슨 부자들이 선심쓰는 것처럼 말할 때가 있지만 그건 그런게 아니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재벌들도 그렇게 큰 돈을 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재벌들을 부자 만들어 준 것도, 국민들을 일반적으로 밥먹고 살만하게 만들어 준 것도 민중의 민주화 운동때문이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게 된 것은 사람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불의한 억압과 독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수의 건국신화란 정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다. 허술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있는 밥먹고 살게 해줬다는 말도 허구다. 보수들이야 말로 종북이다. 북한 시스템과 같았던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종북말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에 가면 그때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자유주의를 외치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믿는 건국 신화는 이 나라는 긴 역사를 가졌으며 일제에 의해 잠시 중단되었지만 그때도 독립을 위해 싸웠던 조상들이 있던 나라라는 것이다. 그 나라는 2차세계대전 이후 계속 된 민중의 노력으로 여전히 세워지고 있다. 3.1운동에서 4.19로 6월 혁명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이 나라는 세워지고 있다. 이 역사가 있기에 우리는 점점 더 당당히 이것은 우리가 세운 나라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역사는 임시정부를 무시하지 않으며 2차세계대전의 끝이 한국의 건국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나라의 진짜 정통은 임시정부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부다. 그들이야 말로 인간답게 사는 나라를 추구하며 이 땅에 자주적인 주권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검찰 개혁문제에 있어서도, 재벌개혁이나 언론개혁, 종교인 과세, 사학재단 개혁에 있어서도 이 질문은 그 배후에서 어른 거린다. 슬프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는 이 질문이 자명한 뜻과 답을 가지는 날이 왔으면 싶다. 그 해방의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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