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22
최근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3형제중의 막내이며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를 받고 연구직에서 일했었다. 위의 두 형님은 대기업에 입사해서 일했었고 그 중 둘째 형님은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램 개발일을 하셨다. 그런데 어쩌다 내 큰 딸과 다른 조카들의 진로를 살피다 보니 아이들의 진로에는 부모의 그것과 놀라운 유사성이 있었다. 우리 딸은 아직 진로를 확정짓지 않았으나 슬금슬금 연구직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같다. 둘째 형님네 아이는 마찬가지로 컴퓨터 공학과에 들어가서 개발일을 하려고 한다. 앱같은 걸 개발하거나 오락을 만드는 일을 이미 하고 있다. 큰 집 아이들은 애초에 대학원 생각은 없었고 일찍 취직해서 회사원이 되었다.
자식은 부모를 따라 산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물론 자기 의견이 있고 자기 인생을 어느 정도 자기 뜻에 따라 펼쳐나간다. 때로는 부모에 대한 반발심을 가질 때도 있으며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기 뜻대로 살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아직 경험이 없는 아이는 부모의 의견과 부모가 보여주는 시야에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딱히 부모를 일부러 따라 살려고 한다기 보다는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암담함에 마주했을 때 아무래도 한치라도 익숙한 것, 안전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이 부모의 삶이고 반항을 한다고 해도 자기는 경험이 전혀 없는데 미리 살아 본 부모가 싫다거나 좋다는 반응을 보이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부모들의 시야에는 특히 내가 익숙한 한국 부모들의 시야에는 문제가 좀 있다. 그들은 너무 특정한 직업이나 삶의 방식만 정답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변호사나 의사를 좋아하고 공장에서 일하거나 농부가 되거나 장사를 하기 보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대기업 사원이 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선입견은 특히 요즘 청년을 살기 힘들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박집이라고 할만한 인기있는 가게를 하는 사람도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내 자식은 이런 장사를 안시키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다. 그뿐인가 나는 최근에 지방 사는 노인들에 대해 불평하는 젊은이의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은 지방에 살지만 자기 자식들은 모두 서울로 보냈다. 그러면서 고령화되어가는 지방의 현실을 불평하고 수도권의 젊은이들은 지방에 와서는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불평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자식은 서울가야 하지만 그것을 빼고 나면 지방에도 젊은이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니 이건 모순이 아니냐는 것이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중에는 대기업 사무실 노동자라던가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삶에 불만은 크게 없으며 자기는 이렇게 사는게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자기 자식은 자기와 다르게 앞에서 말한 정답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로 와서 평생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자기는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고향에 남아있던 자기 친구는 땅부자가 되어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고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지방사는 사람도 서울 사는 사람도 답은 서울에만 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딱히 세상 사람들이 선호 하는 직업이나 지역이 답이 아니라고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확률이라는 것을 매길 수 있는지 애매하지만 무리하게 라도 확률을 매겨 본다면 공부 잘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 행복하게 살 확률이 좀 더 높은 것이 아마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정답이라는 것이 있다고 너무 강하게 믿는 것에 있다. 확률 차이라는 것이 있다고 해도 있으면 얼마나 있냐는 것에 있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요즘은 특히 세상이 빨리 변해서 20년 뒤쯤이면 세상이 어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게다가 의사나 변호사나 대기업 사원이라고 해도 모두가 입장이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메시나 손흥민처럼 성공한 축구선수도 있지만 생계가 어려운 프로축구선수도 있으니 어떤 식이건 프로축구선수만 되면 다 똑같은 것이 아니듯이 사람의 삶이나 입장이란 그런 간판 하나로 판단할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돈만을 기준으로 봐도 그런데 행복이나 만족감같은 주관적 기준을 등장시키면 아무래도 훨씬 더 그럴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나 대기업총수가 된다고 해도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바뀐다. 요즘 가장 인기있고 성공한 사람으로 꼽힐만한 백종원을 생각해 보자. 그는 사업을 실패한 적도 있고 크게 장사가 성공하기 전에는 부모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고깃집 사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백종원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고나자 이제는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는가? 덕분에 요즘은 커피숍 알바나 고깃집 알바라고 해도 미래가 없는 암담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사에 대해 배우고 사업가가 될 첫번째 길을 것는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런 판단이 옳고 그른게 중요한게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시야와 전망은 10년 20년이면 확확 바뀐다는 것이다. 백종원의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너는 정신차리고 9급공무원시험이나 준비하라고 했다면 얼마나 아까웠겠는가? 하지만 과거의 시선으로 보면 당대의 기성세대는 그렇게 사는 청년을 착실하고 미래가 있다고 할 법도 했다. 그런 좁은 시야에 따라 백종원이 살았다면 그게 얼마나 낭비였겠는가.
조금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은 부동산 투기에 너무 맹목적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부동산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많으니 일반론적으로 말해 그들의 의견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꼭 그렇지도 않다. 부동산을 사도 뭘 사냐가 문제다. 한국 아파트 값이 다 올라도 내 아파트 값만 안 오르는 것같을 수 있다.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와 자금이 부족한 서민이 사는 아파트는 대개 투자 성공률이 다르다.
그런데도 돈도 얼마 없는 서민들이 부동산 투기에 중독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젊어서 큰 빚을 내어 허름한 아파트라도 산 청년을 보면 아 그 청년 참 착실하군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청년이 쪽방에 살면서 빚을 내서 주식을 샀다면 아마 어른들은 저게 제 정신이 아니라면서 난리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주식이나 코인투자를 한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을 보면 그 걱정은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는 뭘 얼마나 안다고 저렇게 선입견을 가지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실 기성세대가 이미 자리를 잡은 곳은 소위 말하는 레드오션이다.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성공공식은 대부분 이미 틀려먹은 비법이다. 그들은 경쟁지상주의에 빠져 있는데 모두가 아는 비법이 경쟁에 도움이 될까? 대학졸업장만 해도 그렇다. 공부라는 것이 반드시 당장 그걸 써서 취업하는데 써먹자는 것이 아니므로 대학교육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돈이나 취업으로만 생각해 보면 반에서 중간이하의 성적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까? 반에서 중간이하의 축구실력으로 프로축구선수 시장에 들어가면 어떨까? 잘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는 사람이 넘쳐나며 요즘에는 베트남 중국 인도같은 곳에서 엄청난 수의 대학졸업자가 양산되는데 그런 레드오션에 뛰어들어 공부로 경쟁해서 답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
요즘은 세상이 빨리 변하는데다가 다양해졌다. 다시 말해서 아이는 부모와 똑같이 살 수가 없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도 세상살기가 막막했지만 어떤 의미로 요즘 아이들은 더 막막하다. 부모가 참고가 안된다. 기성세대는 이걸 꼭 기억해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사람이란 아무래도 자기 삶에 구속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정보를 주는 동시에 제약을 하게 된다. 자기 기준으로 좋고 나쁜 것을 나누고 자기 경험과 선입견으로 이런게 좋은거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런게 청년들을 힘들게 한다. 그게 오죽 듣기가 싫으면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싫다고 청년들이 진저리를 치겠는가. 한국전쟁때 태어나서 굶어죽은 사람도 있던 시대에 성장한 노인세대는 사람이 배부르면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는 선입견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그런 시야는 이미 세계적인 부자나라에서 성장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된다.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기성세대의 다른 조언들도 대부분 이모양이다. 예를 들어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가, 왜 부자가 되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는가. 왜 그냥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면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지금의 한국은 치안이 불안하고 복지도 안되던 과거의 그 나라가 아니다. 생존경쟁이니 투쟁이니 하면서 극한의 선에서 살아야 할 나라도 아니다. 한국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나라가 되었으며 매일 같이 놀고 먹는 것같은 사람이 실은 가장 좋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나라다. 프로게이머같은 것은 극단적 예다. 그런게 아니라도 자동차에 미쳐서 자동차 튜닝숍을 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국영수 열심히 공부하고 야간자율학습 잘해서 성공하는게 아니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재능도 없는 학교공부로 승부해서 무슨 답이 나오겠는가. 진짜 경쟁력은 다른 곳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지도 않는 사람이 무슨 차별성이 있는가.
나는 과거의 기준으로 칭찬받는 삶을 산 편에 속한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들어가고 박사를 받았으니 학벌이 좋고 연구직에서 일했으니 화이트 컬러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과학자가 되는 것은 내 어릴 적 부터의 꿈이었다. 나는 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나의 이런 삶이 내 아이들에게 구속과 선입견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두렵다. 아빠가 공부벌레가 아니었고 서핑같은 걸 좋아해서 여름이면 해변가에서 지내는 그런 남자였으면 아이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면서 살지 않았을까. 적어도 아빠의 옛날 성적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난 스포츠는 엄청 못하는데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스포츠를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성적은 꽤 성적이 좋아도 불만이다. 아무래도 기준점에 아빠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부모라는 건 그리고 기성세대라는 건 이렇다. 원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준다. 그러니 좁쌀같은 시야까지 동원해서 잔소리를 하는건 그만둬야 한다. 그건 그저 아이들을 아프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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