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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나는 누구인가

나는 선비다.

by 격암(강국진) 2009. 6. 11.

2009.6.11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을 잘했다. 수학이라면 전교에서 2등을 하는 것을 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영어는 영 신통치가 않았다. 나는 수학에는 자부심이 있었고 영어는 열등감의 근원이었다. 수학점수는 나에게 꽤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수학에 재능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내 자긍심의 근원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른 누구보다 영어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것은 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학점수가 형편없이 나온다면 나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되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은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는 아가씨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자신을 아름다운 여자로 인식하고 있는 그녀들은 아름다움을 무엇보다 가치있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자신보다 수학점수가 높다는 것따위는 그녀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매우 아름다워서 자신과는 비할 수 없이 주목을 받는 다는 것은 그녀들에겐 매우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다. 

 

수학에 재능있는 사람, 아름 다운 여자 라는 것은 하나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이런 정체성때문에 고통받고 희망을 가지고 자긍심을 가진다. 정체성 변화를 나타낸 동화에는 미운 오리새끼가 있다. 스스로를 오리로 인식하고 있던 백조새끼는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인식때문에 괴로워 한다. 자신은 무가치하고 열등한 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스스로를 백조로 인식하는 순간 자긍심과 희망이 생기고 자신이 살아갈 바를 뚜렷히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여러가지로 정의하고 인식한다. 가족의 가장이라던가 누구의 아들이라던가 어떤 지방에 소속된 사람으로 인식하며 여러가지를 동시에 인식하지만 대개는 특별히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있고 거의 인식하지 않는 것이나 부정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올바로 가질 때 우리의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우리의 희노애락이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가 익숙한 단어중에 선비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스스로를 선비라 불렀다. 그렇다면 선비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조선시대 지식인의 정체성일까. 백과사전을 찾아보자. 선비란 '전근대사회에서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 특히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킨다. 상인은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선비란 뭘하는 사람일까. 선비는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수양에 힘쓰는 인간을 말한다. 유교가 주종을 이루는 세상에서 선비들은 나를 유교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자기 수양에 힘쓰는 인간으로 인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비에 대해서는 이런 말이 백과사전에 나온다. 

 

 2세기 말엽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는 재상으로 부름을 받자,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나와서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떳떳한 일이다"라 하여 선비의 나가고 물러서는 도리를 제시하고 있다. 

 

공무원이란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선비란 나라에서 직위가 있던 있지 않던 선비다. 선비란 돈이 있던 없던 선비다. 선비란 심지어 무식해도 선비다. 다시 말해 오랜간 공부해서 학위를 딴 박사같은 호칭이 아니라 자기를 수양하고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하는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선비라는 것이다. 무식한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지만 박식해도 자기 수양의 개념이 사라진 사람은 선비가 아니다. 

 

21세기에 유학만을 강조하고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거를 부정하기만 할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이 살아온 것의 속안을 보고 배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누구로 인식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선비로 생각하는 사람은 성공과 실패에 무관심하지는 않다고 해도 크게 상심하고 기뻐서 자신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선비는 자기수양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어떤 재산의 관리인이나 돈버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돈을 잃으면 좌절하고 돈을 많이 벌면 너무 기뻐서 실수를 하게 되기 쉽다. 무엇보다 자기수양의 개념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그저 그림을 그려서 파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팔아 돈을 버는 것을 생각할 것이나 선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림으로서 자신과 나아가 다른 사람의 자기 수양, 지적 진보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어떻게 기여할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정약용은 마흔의 나이부터 수십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나중에 관직에 나갈 희망도 없었고 집안은 풍지박살이 나서 매우 곤궁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저술활동에 힘쓰고 공부를 하였으며 항시 집안 주변을 잘 가꾸고 다음었다. 사실 요즘같으면 책을 써서 그것으로 유명세를 떨칠 생각도 할수 있을 것이나 조선시대에 유배가서 책을 쓴다는 것은 그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없으면 있을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걸 누가 언제 읽을지 아는가. 정약용은 그저 선비였던 것이다. 

 

우리는 유학의 폐쇄성 그리고 그로인한 조선의 멸망따위로 부터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부정하고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편짜리 인데 왜냐면 서양은 과학적 합리주의와 자본주의 이외에도 기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은 물론 그들의 역사에 기반한 것이다. 오랜 기독교 전통이 없는 우리가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같은 것을 느낄 리가 없다. 따라서 남는 것은 배금주의에 가까운 부서진 정체성밖에는 없다. 

 

이것은 불행과 좌절을 준다. 정체성은 자긍심과 희망과 행복의 근원이다. 도덕을 만들어 내며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자기 수양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다라는 정체성은 어떤가. 훌룡하지 않은가. 우리는 모쪼록 우리를 선비로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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