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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천변의 자전거도로

by 격암(강국진) 2015. 5. 26.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리고 물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물길 주변을 완만한 경사로 바꾸어 다듬는다. 그래서 물이 흘러가는 것을 따라가면 우리는 더 큰 물을 만나는 여행을 느긋하게 할 수 있다.

 

삼천변과 전주천변에는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나는 최근에 자전거를 구한 후에 이 길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모악산 자락의 구이저수지에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주에 살았던 어느 이름모를 사람이 나의 눈을 반대로 돌리게 했다. 그가 트위터로 나에게 알려주기를 그 반대로 물을 따라 내려가 만경강가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다는 것이며 자신은 그 길을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만경강가까지 아니 거기를 넘어서도 한동안 천변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이어져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4시무렵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전북도청부근에서부터 삼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삼천의 동쪽지구가 전주의 구시가지다. 삼천의 동쪽 천변은 아파트 단지며 상가가 촘촘히 들어서 있고 가게가 많은 반면에 서쪽은 훨씬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동쪽천변으로는 만경강가까지 자전거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지만 서쪽에는 끊어진 곳이 한군데 있다. 삼천변을 따라 얼마가지 않으면 삼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곳이 나오는데 그 부근이 그렇다.

 

나는 만경강에 까지 가는 동안 서쪽 천변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 곳은 차도와 인도를 써서 천천히 진행했다. 그 길이가 그렇게 긴 것은 아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서쪽천변은 동쪽천변보다 사람이 적고 사람이 다녔던 흔적이 적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같다. 적어도 부분적으로 자전거 도로가 한군데에서 끊어져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천변을 따라 이름모를 보라색꽃이 가득 피어있던 것과 어른의 어깨정도까지 자라난 갈대밭이 한정없이 펼쳐져 있던 것이 아름다웠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가을 무렵에는 너무 아름다울 것같다.

 

작은 도시에 산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 집근처에 이런 자전거도로가 있는 사람은 대도시에서는 설사 있다고 해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는 천변도 가깝고 그렇다고 시외로 빠지는 것이 어렵지도 않다. 차를 타고 시외로 빠져나가도 전혀 길이 막힐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모악산 국립공원까지 가는데 15분이면 되고 익산역까지 가도 반시간이면 된다. 교통체증이란 정말 싫은 것이란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더운 계절이 아닌데도 햇살이 좀 뜨거웠다. 그러고 보면 드문 드문 지나는 사람들은 많은 수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복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태우지 않기 위해서라는 그 복면은 아직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기괴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전주천변을 따라 죽 내려가면 몇번의 다리를 만나고 몇번의 물막이를 만난다. 다리 밑에 생긴 그늘에서는 사람들이 쉬고 있었고 물막이 위에서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낚시대를 들어올린다. 생각보다 꽤 큰 물고기다. 그러고 보면 전주천에 물고기가 많이 사는가 보다.

 

전주천변의 바로 옆에는 차도같지 않은 차도가 있는 곳이 있다. 차도같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벗나무가 터널을 이뤄서 멋진 광경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꽃은 지고 없지만 꽃이 있었을 때는 너무 멋진 곳이었다. 다만 길이 그다지 넓지 않아서 그 길을 차가 빠르게 달리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통행하기는 위험하다. 그리고 가끔 다니는 차들은 필요이상으로 빨리 다니는 것 같았다. 차가 좀 더 한적할 때 특히 꽃이 피었을때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전주천을 따라 흘러내려갈수록 인가는 줄어들고 밭이 늘어난다. 물막이 위의 낚시꾼의 숫자도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왜가리같은 새만 앉아 있게 된다. 주변의 풍경은 점점 농촌스러워 진다. 천변길은 이게  아름답다, 저게 아름답다라고도 말 할 수 있지만 그중 제일은 그저 텅빈 것 같은 느낌인 것같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같지만 주변에 사람 하나 안보이고 들판의 푸른 풀위에 햇볕이 빛나고 바람이 산들거릴때 강하게 느껴지는 뭔가가 가장 훌룡하다. 뭔가가 매우 달콤하고 그리운 것을 만났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어쩌면 언제나 소음속에서 고통받으면서도 그 소음에 익숙해져서 소음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이 조용한 곳에 가는 느낌과 비슷하다. 뭔가가 더 있는게 아니라 있다는 것조차 잊었던 뭔가가 없다. 뭔가가 없으니까 좋다. 

 

새삼 다시 느끼게 된 것은 역시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이 세상을 흉하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면 아무래도 주변이 더 깨끗해 지고 그곳을 내가 독점하는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과 환경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한 나같은 사람들은 한적한 곳에 꽃이나 갈대가 가득한 것을 발견하면 왠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정도다. 사람이 없으니 좋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달린 자전거길이 자연이 아니고 햇살이 가득한 밭의 풍경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길따라 심어놓은 벗나무도 사람이 심어놓은 곳이다. 그러니 사람의 손길을 흉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20년전이라고 내가 전국여행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한국은 20년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주관적인 기억이지만 전에는 심지어 농촌에 가도 그 풍경이 그리 아름답지가 않았다. 밭이며 논이며 숲이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고 초록이 풍성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딜가나 참 아름답다. 어느새 나무들이 많이 풍성해 졌고 길이며 마을이 깨끗해졌다.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이렇게 된 것은 지방자치가 그 한가지 이유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신경쓰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30년전에는 그저 길을 걷는 것이 좋다고 하는 말을 하는 사람, 어떤 소박한 아름다움에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암절벽이나 다도해같은 어떤 대단해 보이는 것에만 사람들이 신경썼다. 진짜 좋은 것은 주변에 있는데 말이다.  

 

만경강에 도달해 보니 다리밑의 그늘에서 한무리의 나이지긋하신 남자들이 솥을 걸고 모여서 술을 드시고 계신다. 나보고도 한잔하라면서 부른다. 인사를 하며 보니 보신탕을 드시고 있단다. 술은 사양했다.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지만 나는 비위가 약해서 보신탕을 먹지 못하니까 그것도 먹어보라고 하면 더 곤란하다.

 

돌아올 때는 다리를 건너 전주천의 동쪽천변을 따라 달렸다. 전주천의 동쪽천변도 아름다웠지만 아무래도 서쪽천변을 처음봤을 때의 감동같지는 않다. 우리는 전주천변을 따라 올라오다가 섶다리라고 하는 전통다리를 건너고 다시 낮은 돌다리를 건너서 삼천의 서쪽으로 돌아왔다. 다리가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왕복에 2시간정도 걸린 것같다. 

 

기대하지 않고 떠난 자전거 산책길은 눈물날만큼 좋았다.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한번 가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말이다.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지도의 스트리트뷰를 써서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았다. 다 좋지만 사진으로는 너무 평범해 보인다. 차를 타고 간다면 그냥 지나쳐 버릴 것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있을 때는 놓치는 것이 있다는 것에 관한 또 한가지의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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