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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매장에 잘못 놓여진 밥솥

4. 또 다른 삶 (끝)

by 격암(강국진) 2018. 4. 16.

4. 또 다른 삶

 

뻐꾸기 밥솥은 어느 날 작동을 멈췄습니다. 현정은 수리를 문의했으나 그 모델은 벌써 나온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하기가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설사 수리를 한다고 해도 그 비용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간에도 밥솥은 작동은 했습니다만 왠지 안전하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을 받은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랜동안 이 뻐꾸기 밥솥에 애정을 가져왔던 현정도 이제는 밥솥을 보내 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정은 대학생일 때 이 밥솥을 샀습니다. 자취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밥솥을 구하러 매장에 갔습니다. 갈 때는 소박한 것을 생각하면서 갔지만 정작 매장에 들어서니 왠지 욕심이 생겨서 그녀도 당시에 인기있었던 뻐꾸기 밥솥을 사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제품은 그녀로서는 너무 비싼 물건이었고 사치였습니다. 애초에 그래서 현정은 뻐꾸기 밥솥을 구매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원이 이 뻐꾸기 밥솥에 명찰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 명찰은 그 뻐꾸기 밥솥이 평생 처음 붙여보는 명찰이었습니다.

 

“특별할인 70%”

 

이 가격이 믿기지가 않아서 현정은 점원에게 이 밥솥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명찰을 붙이고 있던 점원이 대답했습니다.

 

“아. 이 모델은 작년에 아주 인기가 좋았죠. 그래서 부엌용품 매장쪽 뿐만 아니라 우리 오븐 매장쪽에서도 팔았을 정도였다니까요. 물론 오븐 매장쪽으로 오는 분들은 오븐을 보러 오신 거지만 그 분들 중에서도 뻐꾸기 밥솥을 사신 분들이 꽤 됩니다. 

 

그런데 매장이 통폐합 되면서 전시용으로 쓰던 이 제품은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부엌용품 매장쪽에도 같은 모델이 전시용으로 있는데다가 사실 다음 신제품도 나왔거든요. 그래서 특별할인가로 파는 겁니다. 자리 재배치 문제로 매장 공간을 빨리 확보해야 하니까요. 전시만 했던거니까 제품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이거 사시면 운이 좋은 겁니다. 할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이 할인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집에 밥솥이 있지만 않으면 제가 사고 싶을 정도입니다.”

 

뻐꾸기 밥솥은 너무 비싸서 안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나타난 이 값싼 뻐꾸기 밥솥은 그녀에게 인연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현정은 다른 누가 관심을 가지기 전에 얼른 그 밥솥을 샀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가족이 된 뻐꾸기 밥솥은 한동안 그녀가 가진 몇 안되는 사치품중의 하나였고 초라한 그녀의 자취방을 다소 반짝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밥솥을 사고 난 후에는 훨씬 싸구려 제품을 쓰던 친구들이 그녀의 새 밥솥을 구경하러 와서는 그 밥솥을 화제삼아 웃고 떠들던 일도 한동안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새 밥솥에 익숙해 졌을 무렵쯤에는 뻐꾸기 밥솥은 이미 그녀의 소중한 친구중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슬픈 일이 있으면 자취방에 있던 뻐꾸기 밥솥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왜 이번에 그녀가 졸업할 수 없는지, 왜 그녀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지에 대해서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유치하게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 것도 밥솥앞이었습니다. 밥솥 앞에서는 가식이나 위선이 필요없었습니다. 밥통앞에서 잘난 척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녀도 밥통앞에서는 대단한 사람인 척 할 필요가 없었고 바보가 아닌 척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보가 아닌 척 하기를 그만둠으로써 그녀는 그만큼 현명해졌고 남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밥통에게 배움으로써 그녀는 바보가 세상을 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밥솥에게 자기는 실은 세상이 매우 무섭고 미래가 걱정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밥솥에게 외롭다고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밥솥에서 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그녀를 위로했고 다음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었습니다. 

 

어느 세심하지 못한 사람이 상처주는 말을 해서 그녀를 슬프게 했던 날 그녀는 뻐꾸기 밥솥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조언이란 건 말이야 나에게 진짜 관심도 있고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해줘야 하는거 아냐? 그런데 사실 아주 특별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뭘 알지? 물론 우리는 서로서로 친절한 말을 하거나 아는 것을 약간 가르쳐 주기도 하지. 생각하는데 참고하라고 말이야. 하지만 심지어 지금이 몇시인지, 해는 몇시에 뜨는지 같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주는 거라도 그게 상대방에게 지금 필요한지 아닌지 언제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말야.  그런데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주관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자세한 조언을 하는 거지? 자신있게 뭔가 아는 척 하면서 남의 취업이며 돈의 지출에 대해 뭘 그렇게 자세히 간섭하는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어. 

 

그들은 내가 행복하기를 바래서 조언을 주는 척하지만 실은 그저 잘난 척하고 싶을 뿐이지. 그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행복할까봐 걱정할 것같은 사람들이란 말야. 교수가 나를 칭찬하니까 질투나 하던 사람들니까. 자기 일이나 신경쓰지 어찌나 잘난 척을 하는지.”

 

그녀의 불평에 밥솥은 말없는 침묵을 대답으로 들려주었습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누가 충고를 해줘서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보고 스스로 알아내서 배워야 합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밥이라는 결과물로 그녀를 위로해 주는 뻐꾸기 밥통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슬플 때만 유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나 지방에 있던 가족들이 그녀를 방문할 때면 뻐꾸기 밥솥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주었습니다. 뻐꾸기 밥솥을 만난 이후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밥솥과 홀로 보냈지만 두번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때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동생이 서울로 올라 온 때였고 한번은 모든 일이 잘되지 않아 그녀가 지방의 고향집으로 한동안 내려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그녀가 동생과 싸웠던 일이며 화해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동생과 함께 먹었던 모든 식사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고향집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시절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힘을 내서 부모님집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날 그녀는 뻐꾸기 밥솥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좀 더 작은 새 밥솥을 사줄테니 그 밥솥은 두고 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거부하고 그녀는 이제까지 이 뻐꾸기 밥솥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녀로서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신제품을 사준다고 해도 이 정이든 밥솥이 좋았습니다. 이미 이 뻐꾸기 밥솥은 그녀와 청춘을 함께한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경은 영광도 상처도 함께한 이 밥솥과 함께라면 혼자라도 훨씬 덜 외로울 것같았습니다. 

 

그녀는 이 밥솥으로 카스텔라도 만들고, 죽도 만들고, 야채밥도 만들었습니다. 젊고 가난해서 가진 것이 없던 시절에 이 밥솥은 그녀의 사치스러운 한 때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뻐꾸기 밥솥으로 뭔가를 만들어 먹으면 언제나 고민은 줄어있었고 몸에는 힘이 돌아왔습니다. 

 

밥솥은 현정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리학과 학생이었던 현정은 공부를 하거나 발표준비를 할 때마다 밥솥에 그녀가 배운 것, 그녀가 발표하려고 하는 것을 많이 말해 주었습니다. 현정은 뻐꾸기 밥솥에게 사람에 대해서도 한국이라는 사회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 지구라는 곳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밥솥은 종종 그녀의 자취방에서 그녀와 함께 티비를 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뻐꾸기 밥솥은 점점 낡아졌습니다. 하지만 밥솥은 더욱 더 지혜로워졌고 현정과의 추억은 더 높게 쌓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둘이 헤어질 때가 왔습니다. 미련이 많았던 현경은 폐기 딱지를 붙여서 밥솥을 쓰레기장에 가져다 놓고도 금방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뻐꾸기 밥솥을 한동안 쳐다보며 서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못해서 마음속으로 잘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돌아가는 그녀는 몇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마치 뻐꾸기 밥솥이 계속 현정을 쳐다보고 있는 것같았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현경이 헤어지는 것을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도 슬프고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헤어질 수 있어서 고맙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는 좋은 주인을 만났던 것입니다. 

 

쓰레기장에서 뻐꾸기 밥솥의 옆에는 티비며 전자렌지며 스탠드같은 다른 전자제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우 오븐도 하나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와 함께 매장에 있었던 그 제품은 아니었지만 같은 모델이었습니다. 그 여우 오븐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새 것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오븐의 주인은 그걸 사은품으로 받아서 대충쓰다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우 오븐은 실은 고장난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실증을 내고는 쓰레기장에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온지 얼마되지 않은 여우 오븐은 쓰레기장에 있는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매우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여우 오븐은 쓰레기장이 무서워서 울었습니다. 자기가 한심해서 울었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여우 오븐을 달래다가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주 이상하게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나는 오븐 매장에 잘못 놓여진 밥솥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는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잘못 놓여졌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몇번인가는 그걸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내가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착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난 내가 대단한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박스에서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매장에서 다른 제품들을 판매하는 것을 돕는 전시용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전시된 나를 보고는 내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모델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무슨 대표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엘리트가 된 것같은 기분이라고 하지요. 내 앞에는 영광스런 일만 있을 것같았고 저처럼 매장에 처음 온 신제품들은 다들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었지요. 

 

당신은 아마 박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처음 본 광경이 누군가의 집이었을 겁니다. 내가 처음 본 광경은 수없이 많은 다른 오븐들이 있던 매장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꽤 오랜동안 매장이 온 세상인줄 알았죠. 그리고 한동안 그 매장에 빠져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매장이 축제의 장소같기만 했습니다.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인줄 알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때 매장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건 그냥 태어날 때부터 우리 주변에 있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매장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매장의 문제는 무엇보다 매장이 모든 것을 사고 파는 대상으로 보게 만든 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장에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를 사고 파는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자신을 더 잘 파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한 삶의 목표가 되는 겁니다. 잘 팔려나가는 제품이 매장의 영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착속에서 원인과 결과는 뒤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사고 파는 것은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가 아니죠.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뭔가가 필요한지 아닌지 알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봐야 합니다. 세상과 상품 카탈로그를 보기 전에 말입니다. 사고 파는 일에 있어서는 내가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그걸 어떻게 구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런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품 카탈로그나 홈쇼핑 광고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뭐가 부족한가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딱히 살 것이 없어도 매장을 둘러 보고 새로 나온 물건들이 꼭 필요하지 않아도 좀 시험해 보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물건들을 시도해 보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즐겁고 좋은 일이죠. 

 

하지만 매장이란 이것을 훨씬 넘어선 수준으로 사고 파는 일에 몰두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상 어떤 물건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뭔가를 사고 파는 것 자체를 위해 뭔가를 사고 팝니다. 사고 파는 일에 미칩니다. 매장이란 사고 판다는 일이 그 자체로 선한 곳입니다. 더 많이 사고 팔수록 우리는 매장속에 더 많은 영웅들을 만들고 더 큰 영웅을 만듭니다. 우리는 그 영웅들의 경쟁을 보고 즐기고 그 매장의 영웅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자신도 꼭 매장의 영웅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장에서는 자신을 더 잘 파는 것이 자연스럽게 당연한 삶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제품들은 판매 1등 명찰을 원하게 되죠. 나도 그랬습니다. 나도 잘팔리는 제품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내가 진짜로 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은 잘난 체가 하고 싶었던 것이더군요. 사실은 나는 아주 잘팔리는 판매 1등의 밥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도 몰랐고 내 주변의 오븐들은 더욱 몰랐죠. 그래서 나는 지금의 주인에게 팔리기 전까지 한번도 남에게 잘난 체를 후련하게 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난 판매 1등의 밥솥이었다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성공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판매 1등 명찰이 아니었던 겁니다. 잘난 체였죠. 내가 남들보다 잘났다는 증거가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경쟁에 진다는 것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잘난체 하는 것은 결국 허무한 겁니다. 비교의 기준들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한가지 기준으로 잘난 체를 한다고 해도 경쟁에서 승리한 효과는 그리 길게 가지 않습니다. 물론 잠깐은 기분이 좋지만 우리가 계속 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금방 그 효과가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도달하는게 아니라 계속 이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3등을 하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면 이제 2등이 되고 1등이 되어야만 합니다. 계속 등수가 올라가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매장은 우울한 곳이었습니다. 다들 잘난 체를 하느라 밝게 웃고 있었지만 제품들은 누구나 우울했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되고 싶은 어떤 것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모두가 패배자였으니까요. 

 

게다가 매장은 어떤 것의 가치를 단순하게 만듭니다. 어떤 것이 소중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사람의 경우에도 생각이 바뀜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가치란 사람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죠. 

 

하지만 각각의 제품에 가격이라는 숫자를 붙이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비싼 오븐 한대의 가격이 싼 오븐 가격의 세 배라면 그것은 자연스레 비싼 오븐의 가치는 싼 오븐의 가치의 세 배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의 가치가 하나의 숫자로 통일되고 사물의 가치란 그 물건과 그 물건을 소유하는 사람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치기준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착각입니다. 그런데 매장은 이런 말도 안되는 착각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나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오븐이라도 그 가격이 내가 꼭 필요한 밥솥의 다섯배라면 다섯배의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평가가 나의 행복과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기준으로는 1억짜리인데 세상의 기준으로는 10원짜리라고 하면 그걸 10원에 파는 일은 미친 짓이죠. 하지만 매장속에서 우리는 그런 일을 늘상합니다. 뭐든지 돈으로 다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0원주고 팔았으니 10원주고 나중에 다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매장이란 마치 우리 집의 화분에 당장 물을 줘야 하는데 이 지구 전체에 지난 백년에 걸쳐서 비가 얼마나 왔던가를 고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을 하게 만듭니다. 물건과 돈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사람도 물건도 관계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내가 없어지고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그 자리를 차지 합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히 지금의 주인을 만나서 밥짓기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어떤 전시용품들은 매장에서 고장나서 폐기되기도 하거든요. 지금처럼 낡아질 때까지 밥짓기를 해오면서 내가 느낀 것은 밥짓기에서 1등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미 나는 주인의 하나뿐인 밥솥이니까요. 다만 밥짓기를 좋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밥을 만들면서 보낸 시간들이 괴로운 것이었을 겁니다. 삶에는 등수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사는 것을 좋아하는가 아닌가가 핵심적인 것입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지금의 주인을 만나서 오랜동안 많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이 세상에 하나 뿐인 밥솥이 되었습니다. 나는 밥솥이지 오븐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단순히 뻐꾸기 밥솥인 것도 아닙니다. 나는 나와 같은 모델인 다른 뻐꾸기 밥솥과도 다릅니다. 나는 대체불가능한 의미와 관계를 나의 주인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밥은 다른 밥솥이 만든 밥과 다른 겁니다. 

 

나는 매장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거기에는 삶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경쟁이란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삶 전체에 비하면 결국 작은 부분이지요. 가장 중요한 부분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밥솥이 되거나 오븐을 이긴 밥솥이 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오븐이 너는 빵도 못만드냐고 놀린다고 빵만들기에 평생을 바치는 밥솥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는 몇번 내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장에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내가 빵을 만들지 못하는 오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내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장에서 할인 가격이 붙어서 헐값에 팔려 나올 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주 비참한 기분이었습니다. 매장의 물건들은 그걸 모욕으로 생각하거든요. 할인 가격도 그렇고 매장에서 떨려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내 삶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여우 오븐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같군요. 내 삶은 여기까지라고. 그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경험을 뒤돌아보면 나는 가망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좁은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어떨 때는 추락하는 것이 사실은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땅과 하늘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아직 젊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쓰레기장에 두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한 사람은 쓰레기를 치워가는 업자였고 또 한 사람은 동네의 주민이었습니다. 둘은 쓰레기장에서 몇 마디를 나눴습니다. 쓰레기를 치워가는 업자는 폐기 딱지가 붙은 제품들을 하나씩 트럭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뻐꾸기 밥솥을 실은 트럭은 곧 햇볕이 가득 비춰서 빛나는 콘크리트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럭은 곧 멀리 사라졌습니다. 뒤에 남은 동네 주민의 손에는 여우 오븐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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