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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글쓰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19. 2. 12.

나는 독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시되어지고 있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글쓰기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글쓰기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글쓰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두가지 원칙에 대해서 말해 보고 싶다. 


미리 말해 둘 것은 글쓰기에 대해 15분정도 듣는다고 해서 글쓰기를 잘하게 될거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데 있어서 글을 많이 써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가 글을 계속해서 쓰게 된다면 언젠가는 글솜씨가 좋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원칙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한 왕도이기도 하다.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한다.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글을 쓴다. 그리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이라면 이왕이면 남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아가 베스트셀러가 될 소설이나 에세이를 쓸 수 있다면 기분이 더욱 좋을 것이며 그걸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누가 내 블로그의 글이나 내가 쓴 책을 읽고 좋은 소감을 남겨준다거나하면 기분이 좋고 글쓰기의 보람을 한층 더 느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는 덤으로 여겨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내 글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그 글을 쓰고 있는 나라는 독자다.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쓰는 일에서 진정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자칫 잊혀 지나갈 뻔한 생각들을 글로 남겼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자기가 쓴 글이지만 꽤 괜찮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글쓰기에 빠지게 된다. 설사 나혼자만 그 글을 읽는다고 해도 이걸 안 적어놓았으면 어쩔뻔 했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 생각을 버리지 않고 적어 두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가는 글들이 팔이나 다리처럼 자기 자신의 일부로 느껴지게 된다. 글쓰기가 즐겁고 보람있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기록한 생각들이란 우리가 들어가 살 정신의 집이고 우리 정신의 일부다. 


이 사실들은 아주 자명한 것이지만 사실은 종종 망각된다. 어디가서 글쓰기를 배우면 선생님들은 대개 일반적으로 어떤 글이 좋은가에 대해서 설명해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쓰기 위한 기술의 설명이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주로 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라는 암시가 많을 것이다. 또 글쓰기를 노동으로 생각하면 글쓰기에 대해서 댓가를 받고 싶어지기 쉽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 자신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남부터 만족시키려고 하게 된다. 요즘에는 이런 글이 팔리더라, 요즘은 사람들이 이런 글을 칭찬하더라같은 부분부터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 좋은 글쓰기 수업이라면 그 수업의 핵심은 자신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세상에는 스스로의 글을 싫어하는데도 그 글이 세상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계속하기란 지극히 어려우며 글이란 자신의 표현이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쓰지 않으면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나는 이따금 소설을 쓸 때도 있고 에세이를 쓸 때도 있지만 그것이 어떤 형식이건 내 글은 대개 질문에서 시작해서 답을 찾는 과정이 되고 만다. 즉 내 글은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좋아하는 나의 특성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러니까 나는 우선 이건 왜 이럴까라던가 뭔가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다. 질문이 나쁘면 내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는다. 질문이 좋으면 나는 진심으로 그 답을 알고 싶어진다. 질문이 좋으면 답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일단 질문에 대해서 간단한 답이 떠오르면 그걸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은 곤란하지만 생각이 지나치게 길고 자세하면 오히려 곤란하다는 것이다.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뭘 쓸지를 다 알면 글을 쓰는 일은 재미가 없다.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써야 한다. 고치거나 평가하는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글을 시작할 때 나는 때로는 아주 작은 힌트밖에는 가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답을 쓰기 시작했으면서도 나도 답을 모른다. 약간의 방향만 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동시에 그 글을 읽는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음 과연 이렇군, 이런 답이 그럴듯한 걸. 하는 식이다. 그래서 생각은 내 잠재의식이나 내 손가락이 하고 있는 것같고 나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데도 그저 글이 써지는 과정을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것을 즐기며 글을 쓰는 가운데에 그 답들이 만들어 져가는 것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즐기기 때문에 나는 거듭 거듭해서 글을 쓴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다른 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은 우선 나라는 독자를 내 글로 만족 시키고 유혹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오 내가 써서가 아니라 이건 재미있는걸 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작가님 다음 편은 언제 쓰실 겁니까. 궁금합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그쯤 된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객관적으로는 다시 말해서 타인들에게는 그저 그런 작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글을 계속 쓰게는 된다. 그리고 멈추지만 않는다면 분명히 글은 조금씩 좋아진다. 반대로 재능이 있지만 자기 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글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받기 힘들다. 

 

내가 글 쓰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두번째는 이것이다. 


글은 디테일 즉 세부사항이 중요하다.


디테일에는 객관적 세부사항이 있고 주관적 세부사항이 있다. 객관적 세부사항이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들이다. 이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차가 많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애매하고 글에 매력이 없다. 그보다는 2018년 현재 한국에는 2천2백만대의 차가 등록되어 있다라고 하면 훨씬 더 구체적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주방일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주방일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믿었다라고 말하면 좀 더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어서 지식을 늘릴 필요가 있고 검색을 통해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찾아 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성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찾으면서 글을 진행시키다보면 우리가 가진 생각이 바뀔 때도 있다. 즉 객관적 세부사항은 우리가 글을 쓰는데 있어서 단단한 발디딤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진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주관적 세부사항이다. 사실 객관적 세부사항은 내가 검색을 말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날로 그 가치가 떨어져 가고 있다.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 많고 그걸 구할 방법은 날로 쉬워져 가고 있어서 객관적 세부사항의 가치와 매력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 세부사항이란 글의 주제에 대해서 당신이라는 단 하나 뿐인 사람이 가지는 느낌을 말한다. 객관적 정보도 중요하고 효과적이지만 사실 어떤 글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대개 이 주관적 세부사항에 있다. 왜냐면 주관적 세부사항은 남들의 글을 거짓된 중립을 표방하면서 요약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당당하게 자신을 들어내면서 당신의 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내가 내 글을 좋아하는 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는 그럴듯한 멋진 글을 쓸 수 있다. 심지어 그걸로 칭찬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당히 자신을 감추고 타인의 통계나 의견에 스스로를 숨긴 글은 객관적으로 보여서 좋아 보일 때도 있고 나름의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재미없고 매력없는 글이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그걸 느끼게 된다. 그건 마치 서울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에 가본 적도 서울의 매력에 푹 빠져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다. 말은 많이 하지만 핵심이 없다. 우리가 때로 멋지게 쓴 영화평론가의 평론보다 기사에 달린 일반 사람들의 짧은 댓글들에 더 관심을 두는 이유도 이래서 그렇다. 


요즘 세상에서 주관적 세부사항이란 점점 더 중요한 글의 핵심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멋진 스테이크 정식을 먹고서 그 맛을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는 물론 그 강렬한 맛을 기억하지만 그걸 문자로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사실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스테이크의 맛만 그런게 아니다. 우리가 마음에 가지는 어떤 분노와 애정 즉 나는 왜 이쪽 답이 아니라 저쪽 답이어야 한다고 느꼈는가 하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의 결론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고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많은 객관적 정보를 나열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글의 매력은 궁극적으로는 대부분 문자의 뒤에서 빛나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이미지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걸 사실에 대비하여 가치라고 부를 수도 있고 타인과 대비하여 작가의 자아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 부분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글의 핵심이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대나무도 대나무고 동양화라고는 전혀 모르는 내가 그린 대나무도 대나무다. 대나무는 다 대나무일 뿐이다라는 식이라면 내 그림이나 추사의 그림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이다. 그래서는 그림이 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글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심상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계속 해서 글을 쓰면 우리는 조금씩 자기를 더 섬세하게 표현하게 된다. 우리가 쓰고 싶은 것은 항상 미묘한 회색지대에 있고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어서 세상의 선입견이나 흔한 표현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계속 쓰면 조금씩 좋아진다. 그러면 어느새 누군가가 여러분의 글을 보고 독창적이니 새로운 관점이니 하고 말할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과 관점중에서 남과 다른 부분이 전보다는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 때면 여러분은 진정으로 자기의 글을 좋아하게 된다. 세상에 멋진 금강산 그림이 넘치도록 있다고 해도 누가 봐도 내 그림인 것같은 조약돌의 그림은 사랑스럽다. 그건 다른 곳에는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글도 그렇다. 그리고 아마 모든 예술도 그리고 유튜브 컨텐츠도 같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팬이 되어야 하고 우리가 만드는 것 안에 우리를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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