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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한국의 담장문화

by 격암(강국진) 2019. 6. 1.

한국에는 담장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고 특히 녹색 주차 운동이라고 해서 담장을 허물고 그 공간을 주차장으로 바꾸는 운동도 하고 있어서 여기저기 그나마 남아 있는 담장이 있는 골목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 담장에 대해서 애착을 느끼거나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있어도 딱히 별 쓸모는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개는 담장문화는 한국인의 폐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여 녹색 주차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저없이 그런 폐쇄성을 없애자고 말하는 일이 많은 것을 보았다. 요즘은 집을 지을 때 담장을 짓는 사람을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는 이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현실에서 담장을 없애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일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담장이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다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할지 모른다. 담장이 쓸모 없는 것이라거나 한국인의 폐쇄성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땅에서 담장과 함께 발달해 온 주거문화를 무시하는 일이다. 담장이 필요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왜 담장문화가 있었을까? 그것을 한국인의 폐쇄성 운운하면서 우리의 심성이 비뚤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바보같은 사고 방식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게는 지금의 한국을 채운 서구식 집들이야 말로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폐쇄성을 보여주는 집으로 보인다. 흔한 인식이 현실과 반대니 안타깝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과 유럽은 기후가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의 여름은 한국에 비하면 훨씬 쾌적하다. 유럽은 지금도 에어콘이 없는 집이 많을 정도로 여름이면 한국처럼 덥지 않다. 습도도 낮다. 덕분에 가끔 이상기후로 유럽에 더위가 몰아닥치면 고온으로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여름철에 유럽에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열대야로 괴로워하는 한국의 여름과는 달리 유럽의 여름은 쾌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행하기가 참 좋다. 사실 한국처럼 한여름과 한겨울 온도차가 큰 곳은 지구상에 얼마 없다. 한국은 여름이면 너무 덥다가 겨울이면 또 엄청 춥다. 그래서 한국전쟁때 미군들이 굉장히 고생했다고 한다. 



이런 차이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한국을 거의 채우고 있는 서구식 주택을 보자. 서구식 주택은 한옥과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우리는 두가지 차이를 즉각적으로 느끼는데 하나는 대개 담장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처마가 없다는 것이다. 서구의 집은 요즘의 한국집들이 그런 것처럼 한옥과는 달리 긴 처마를 가진 지붕이 없다. 때로 눈비가 흘러내리도록 지붕이 경사를 가지고 있지만 처마가 없어서 집안에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 그나마도 소위 모더니즘 건축이 유행한 이후에는 아예 그 시옷자 지붕도 없어져서 이제는 그냥 네모난 박스에 창문을 낸 모양밖에는 안남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늘은 엄청 중요하다. 나는 수없이 많은 전원주택이 멋진 서구식 정원을 꾸며 놓고는 그 정원을 거의 버려두다 시피 하는 것을 보았다. 왜냐면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바깥에 못나가고 여름에는 내리 쬐는 햇볕이 너무 강해서 그늘이 없거나 작은 파라솔의 그늘정도를 가진 정원은 사람이 나갈 곳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겨울은 그렇다고 쳐도 여름에도 그 멋진 정원은 그냥 낭비다. 억지로 파라솔이 달려 있는 의자에 앉아서 커피라도 마시며 전원주택을 가진 낭만을 즐기려고 해 보지만 있어보면 날씨가 지극히 좋은 봄 가을이 아니면 있을만한 장소가 못된다. 



있을만한 공간은 그럼 어떤 곳인가? 그건 원두막이나 정자다. 정자는 일단 평지보다 높게 존재한다. 그리고 긴 치마를 가지고 파라솔 따위보다는 훨씬 큰 지붕을 가졌다. 한옥의 지붕은 클 뿐만 아니라 단열도 우수하다. 덕분에 바람이 잘들고 그늘이 깊으며 서늘하다. 여름철에 정자나 한옥의 대청마루에 누워본 사람은 그곳이 아주 시원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지에 있는 작은 파라솔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위에서 말한 처마가 없는 서구식 집을 보면 나는 안타깝고 때로 우리가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그늘이 중요하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인데도 네모난 박스에 창문만 뚫어놓은 서구식 집을 지어놓고 야 참 멋있다고 감탄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집은 엄청 더울 수 밖에 없다. 무슨 대단한 건축가가 아니라도 왜 그런가는 뻔하다. 멋있기는 뭐가 멋있다는 말인가. 서구식이면 무조건 멋있나?  이건 내가 한국인이라서 한옥이 멋이 있니 없니 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기능이 있는 것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한탄이다. 한옥은 여름의 더위와 강한 햇볕에 대한 전통적 해결방법이다. 이걸 서구식으로 대체하면 당연히 문제가 되고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에어콘 밖에 없다. 이게 현명한 것일까?



그늘의 중요성은 그렇다면 통풍의 중요성은 어떤가. 그늘과 통풍의 관점에서 한옥을 다시 보면 우리는 한옥이 조그마한 온돌 부분에 그 부분만큼이나 커다란 마루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게다가 방문이 거의 거대한 수준이라 문을 열면 거의 벽이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때로는 문자 그대로 문을 접어 올려서 집 전체가 거대한 정자처럼 되게 하기도 한다. 마당보다 기단을 가지고 높이 올려져 있는 한옥의 마루와 방바닥도 통풍을 더 잘되게 하는 구조다. 


이것이 한국의 혹독한 더위를 버티는 방법으로 우리가 개발한 방법이다. 이걸 서구식의 집 즉 벽에 창문 몇개 뚫어놓은 집으로 대체한 결과 여름이면 한국인들은 더위에 쪄 죽을만큼 괴롭게 살고 있다. 그걸 해결하겠다고 에어콘을 틀고 그렇게 하면 냉방비를 내야 하지만 도시에서는 열섬현상까지 생긴다. 에어콘은 크게 보면 난방기구처럼 열을 생산한다. 집안의 열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면서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시 전체를 보면 더운 여름에 집집마다 모닥불을 훨훨 태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더운 여름은 더 더운 여름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한옥을 더위와 싸우기 위해 벽을 제거한 건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사방으로 바람을 통하게 해서 더위와 싸우는 것은 좋다. 그런데 벽이 없으니 사생활이 다 노출된다. 마루에 눕거나 나가서 앉아 있는데 집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전부 우리의 모습을 다 본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어디 한적한 숲속에 홀로 있는 건물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것의 해결책이 바로 담장이다. 그것도 한국의 담장은 종종 그 높이가 높지 않다. 현대의 성인이 서면 가슴높이정도밖에는 안되는데 옛날 사람은 요즘 사람보다 키가 작았을테지만 그래도 들여다 보려고 하면 보지 못할 높이는 아니고 방범의 의미는 정말 없다. 누구나 한옥의 담장을 보고 이거 다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뭐하러 이렇게 낮은 담장을 만들었나 할 것이다. 결국 그 주된 용도는 사생활일 수 밖에 없다. 담장에 가까이 붙어서 억지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집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를 생각해 보자. 담과 벽 즉 담장과 건물의 벽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물론 둘 사이에는 여러가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지붕이 있고 없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우리가 담이라고 생각하는 구조물 위에 커다란 지붕을 덮을 수가 있다면 담은 그냥 집의 벽이 되고 만다. 물론 높이나 내구성이나 재료 측면에서 담은 벽과 다르다. 특히 한국처럼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온돌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은 경우 건물의 벽의 안쪽과 담장의 안쪽은 확연히 다르니까 담과 벽의 기본적 차이는 지붕이라고 말하는 것에 어리둥절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리고 그런 차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집안에서도 신발신고 사는 서구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라. 그리고 하중을 견딘다던가 하는 점이나 높이 따위를 무시하고 생각해 보라. 담과 벽의 가장 큰 차이는 지붕이다. 지붕은 담을 벽으로 만든다. 


그렇게 하고 서구식 집과 한옥을 보면 서구식의 집에서 벽을 낮추거나 없애고 혹은 그 위치를 옮긴 것이 바로 우리가 가졌던 담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담장이 있다고 하지만 실은 더 개방적인 것이 한옥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그걸 알 수 있다. 담장을 가진 한옥과 서구식 집중에서 바깥쪽에서 침입하기 쉽고 안쪽을 들여다 보기 쉬운 것은 어느 쪽인가? 어느 쪽이 이웃간에 남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가를 알아차리기 쉬운 가. 답은 당연히 개방적인 한옥이다. 그런데 한국의 담장문화는 한국인의 폐쇄성을 나타낸다는 소리는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슬프게도 우리의 담장문화는 모순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대에 지어진 서양식 집에 담장을 친 것이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담장은 폐쇄적 문화의 상징으로 버려지고 있으며 결국 서양식 집만 남았다. 나는 최근에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나가야를 소개한 적이 있다. 중정을 가진 그 작은 집을 다시 들여다 보면 벽과 담의 차이가 지붕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느끼게 된다. 즉 지붕이 없는 중정부분의 벽을 우리는 담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아주 작은 두 채의 작은 건물을 담으로 이어붙인 것이 된다. 


남이 담장을 만들어 중정을 확보한 건물을 볼 때는 그것을 대단한 건물이라고 칭찬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그 담장을 보면서는 이것은 한국인의 폐쇄성의 상징이며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옥이 지금의 집으로 변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변화는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 담장이 쓸모 없어진 것은 우리가 서양식 집으로 우리의 집을 바꿨기 때문이다. 더 폐쇄적이고 더 통풍이 안되는 집으로 말이다. 우리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나머지 에스키모가 열대지방 사람처럼 살면서 스스로의 전통문화를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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