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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타이니 하우스와 우리의 빈곤

by 격암(강국진) 2019. 6. 6.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걷거나 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좋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의 집들이 자동차로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골이 아니라면 부자들의 구역일 수록 산책하기 좋고 녹지가 많아서 자동차 이전의 시대를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을 가진다. 


그렇다고 할 때 비록 좋은 집이 무엇인가는 상당부분 주관적이고 취향의 문제이지만 지금의 한국의 집에서 나는 뭔가가 잘못되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하나이지만 두가지로 표현이 가능하다. 그 중 하나는 이것이다. 


더 좋은 방이란 더 큰 방을 말하고 더 좋은 집이란 더 큰 집을 말한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이렇게도 된다. 


우리가 용도를 말할 수 없는 공간은 쓸모없는 공간이며 낭비된 자원이다. 


왜냐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더 좋은 공간이란 뜻이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공간을 남김없이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이 있어서 거실 크기가 두배가 될 수 있고 각자의 방이 두배가 되거나 방의 숫자가 두배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보짓이다. 누구나 더 좋은 집을 꿈꾸지 않는가? 무슨 용도로 쓰는 건지도 모를 무지의 공간은 종종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는 대개 왜 이런 낭비를 했냐고, 부자인가 보다고 말하게 된다. 


슬프게도 이러한 관점은 도시화되지 않고 인공적으로 상품화되지 않은 자연 공간을 모두 자원의 낭비로 인식하는 관점과 같다. 즉 환경파괴의 관점인 것이다. 능력만 된다면 전국의 모든 공간을 다 아파트로 채워야 하는 것이 이런 관점이다. 그게 다 돈이니까 말이다. 안 그렇게 하면 낭비다. 


하지만 오늘의 요점은 그게 아니다. 다시 자동차의 예를 기억해 보자. 자동차가 있다고 우리는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편안한 차만 타는 게 아니라 불편하지만 걷는 것이 삶의 질을 올린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가 집에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그것은 불편한 집이 더 좋은 집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아닐까? 공간에 대한 탐욕과 그저 끝없이 편안해 지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안 좋은 집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날 어떤 집이 우리에게 상식적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아래의 아파트 평면도를 생각해 보자.  



이 아파트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집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집은 당연한 구조를 가진 것같으며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것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평면도에서 두 개의 특징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전체 공간이 거의 같은 스케일로 분할되어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전체 공간이 뚜렷한 목적을 가진 작은 공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더 좋은 방이란 더 큰 방이라는 철학의 결과다. 가용공간들은 모두 목적을 가진 조각들로 채워져야 하고 각각의 조각들은 크면 클 수록 더 만족스럽다. 모든 방의 욕망이 부풀기만 할 때 결과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런 집이다. 만약 작은 방이 있다면 그런 방은 매력이 없는 방, 아무도 쓰기를 원하지 않을 방으로 거의 버려진 공간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공간은 목적을 가지고 채워져야 한다. 남기는 것은 당연히 큰 낭비다. 이 아파트가 한국이나 지구를 의미한다면 지구가 사람들의 거주지와 공원 그리고 동물원으로 가득 채워진다는 의미다. 그게 이상적인 세계다. 


또다른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요즘은 좀 완화된 것같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이 집의 가치를 말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기본적으로는 어디에 몇평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강남의 30평 아파트는 얼마라는 식이다. 단독주택도 그렇다. 대지 몇평에 건평얼마 정도로 집의 기본적 가치를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다시 말해 집의 가치를 기본적으로 양으로 평가한다. 이게 10년된 아파트인지, 어떤 자재를 썼는지, 그 구조는 어떤 지 하는 것은 종종 2차적인 문제로 집을 마치 논밭같이 기본적으로 평수로만 따진다. 


그래서 어느 쪽이 결과인지 어느 쪽이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전국의 아파트는 그 내부 구조도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같다. 애초에 집의 가치를 기본적으로 양을 기준으로 따지는데 구조가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만약 우리가 자동차를 집처럼 소비한다면 고급차 싸구려차 따지지 않고 그냥 크기만 보고 가격을 비슷하게 매길테니 모든 자동차 회사는 크기만 적당히 맞춘 저질의 차를 만들 것이고 자동차의 품질은 하향평준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집의 상태가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오늘의 질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 좋은 방이란 더 큰 방을 말하고 더 좋은 집이란 더 큰 집을 말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적이라면 그럼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


그 대답을 하기 전에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타이니 하우스나 협소주택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타이니하우스 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걸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그 프로그램은 두 진행자가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출연자들의 타이니 하우스들을 완성해 주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게 있어서 흥미진진했던 것은 매번 더욱 더 큰 난관이 나타나고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컨테이너 박스하나정도의 타이니 하우스에 사는 부부가 자신은 자식들과 함께 자고 싶기때문에 5명분의 침대가 필요하다고 주문하는 식이다. 어떤 부부는 두 아이와 큰 개 두마리까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고 어떤 부부는 디제잉을 하기 때문에 레코드를 많이 수납하고 싶다고 말한다. 완성된 타이니하우스를 보기 전에는 도무지 이건 말도 안되는 주문같다. 그러나 타이니 하우스 네이션의 진행자들은 그런 주문을 만족시키는 타이니하우스를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에서 말했듯이 타이니 하우스 만들기는 보통의 집짓기와는 상당히 다른 제약조건을 가지고 있다.  타이니 하우스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컨테이너 정도의 크기로 3평짜리도 있지만 커도 10평이 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니까 30평짜리 집과 비교한다면 평균적인 타이니 하우스는 전체 면적이 그것의 5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집인데도 생활에 필요한 필수 기능을 집어넣어야 하므로 사람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도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쓸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고민을 하다보면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답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종종 매우 만족스럽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기가 직접 타이니 하우스에 살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어떻게 해서든 아이디어를 내서 멋진 타이니 하우스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아주 중요한 깨달음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 작은 타이니 하우스보다 몇배나 큰 우리들의 집을 보면서 우리는 사실 훨씬 더 작은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을 그렇게 하려고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공간이 있으니까 그걸 다 써야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해보자. 더 좋은 집이란 더 큰 집을 말한다고 믿는 사람이 자신의 집에 대해서 뭔가 불만이 있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그건 바로 집이 너무 좁다는 결론이다. 뒤집어 말하면 집이 더 넓어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일본에는 한국의 모델하우스처럼 주택전시장이라는 곳이 있다. 한국의 보편적 주거는 아파트이므로 한국의 모델하우스는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전시하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의 보편적 주거는 단독주택이므로 일본의 주택전시장은 건설사들이 전시용 단독주택들을 지어놓고 내부를 보여주는 공간을 말한다. 나는 일본에 살 때 이 주택전시장에 가서 집구경을 했는데 거기서 내가 감탄하고는 했던 것은 일본의 집에는 공간활용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이다. 수납공간도 그렇고 공간을 분할하는 것도 그렇다. 물론 그 집들은 타이니 하우스가 아니고 아파트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넘쳐나는 공간을 낭비하는 집들을 생각하면 차이가 크다. 


한국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아파트밖에 없지 않냐고. 모든 사람이 단독주택에 살 수 있는 땅이 어디에 있냐고 말이다. 일본은 보편적 주거가 단독주택이다. 그리고 바로 그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협소주택을 짓는 것을 고민해 왔다. 즉 작은 공간을 최대한 크게 쓰는 고민이다. 미국사람들이 타이니하우스를 통해 고민하고 있는 것을 일본사람들은 일찌기 협소주택을 통해 고민해 온 셈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쉽사리 아파트밖에는 답이 없지 않냐고 말하면서 자꾸 더 큰 평수의 아파트만 찾는다. 더 좋은 집은 더 큰 집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 고층아파트를 지어서 더 많은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전망이 없어지고 하늘따위 보이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이게 꼭 옳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에서는 워낙 집의 가치를 양적으로 따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 한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자. 


여기 대지 50평에 지어진 건물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은 이 땅을 가득 채운 집을 지었고 또 한 사람은 이 대지 한구석에 20평정도를 써서 협소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30평은 특별한 목적없는 공간으로 남겼다. 어느 쪽이 좋은 집일까? 여기서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해 협소주택에게 불리하지만 양쪽의 건축비가 같다고 하자. 


같은 질문은 아파트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위에서 보여준 아파트 평면도를 생각해 보자. 그 아파트를 30평아파트라고 치고 또 다른 아파트 평면도를 그린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아파트는 20평내지 15평에 마치 타이니 하우스를 짓듯 모든 기능을 다 구겨 넣는 것이다. 18평이면 타이니 하우스 3채다. 고민하고 투자하면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이 못나올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을 다시 특별한 목적없는 빈공간으로 남기는 것이다. 어느 쪽이 좋은 집일까? 마찬가지로 건축비가 같다고 하자. 


개인적인 선택이 어느 쪽이든 한국 시장의 선택은 분명하다. 한국 시장은 양이 큰 쪽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중에 집을 팔 생각을 하면 협소주택을 선택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협소주택이나 타이니 하우스를 돈이 없는 사람의 선택이라고만 이해한다. 이것은 분명 상상력의 제약이다. 


사실 이 사고 실험들에는 문제가 있다. 취향의 차이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집을 잘 짓는 정도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나는 우리가 자꾸 있는 공간을 가득 채우려고만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개 더 많은 것을 소유해서 그 공간을 물건으로 채우는 것이된다. 또 공간활용에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생활하는 것을 분석해 보면 쓰지 않는 공간이 많다. 


작은 집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있는 공간을 다 채워야 할까? 작은 공간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장점도 많다. 공간이라면 한국과는 비할 수 없이 많이 가진 미국에서 타이니 하우스 운동이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작은 집은 불편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꺼이 스스로 제약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우리는 목적이 없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집은 이제 목적이 없는 공간을 가진 집이 된다. 이전에 소개했던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안그래도 좁은 집에 중정을 넣어서 더욱 더 공간의 제약이 많아지게 했었다. 그리고 그 주택의 설계자인 안도 다다오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딱히 설계의도가 뭔지 알 수 없는 목적없는 공간을 남기는 것을 버릇으로 했다고 한다. 


작은 집은 불편하다. 하지만 목적이 없는 공간을 가진 집 그리고 제약된 공간안에서 삶의 질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한 집이 더 좋은 집이 될 수도 있는거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간의 거주지와 공원 그리고 동물원과 수족관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공간과 우리가 그 목적을 말할 수 없는 장소로 이뤄져 있다. 이건 양보가 아니다. 이게 건강한 세계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을 기계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것이 마을이나 집을 설계할 때 기억해야 할 점이라면 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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