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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대중적 소개서란 무엇일까?

by 격암(강국진) 2023. 6. 21.

23.6.21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나 글을 쓰다보면 우리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 여기서 일반인이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장기간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데 책을 쓰는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 이것는 산에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산에 다녀온 사람이 그 산이 어떠냐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산에 다녀온 사람이 설명하기를 산에 가보면 안다라고 한다면 그건 만족스럽지 못한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다보면 말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것은 옳지 않으며 핵심적인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전공분야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하는 책이란 단순히 쓰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거짓말이 되는 느낌을 주기 쉽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처럼 그 기초적인 부분을 수련하지 않고 일상어로 물리학을 설명 하게 되면 왜곡이 발생하고 설사 말하는 사람이 큰 잘못이 없는 설명을 했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멋대로 해석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경우에 설명을 듣는 사람쪽이 '이봐.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물리학이 뭐라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한가지를 전제한다.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짧은 설명을 듣고 물리학이 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을 쓸 때 우리는 어떤 설명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원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아령도 떨어지고, 상자도 떨어지고, 깃털도 떨어진다. 이런 예를 나열하는 것과 이게 뉴튼의 중력법칙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은 일반화를 통한 이해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이다. 이런 차이가 있기에 뉴튼의 업적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일반화를 어떻게 했는가가 뉴튼 역학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걸 건너 뛰게 되면 사람들은 과학이란게 그저 몇개의 예를 보고 짜맞춘 퍼즐이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도 사실은 수년의 공부끝에 그렇게 된 것이니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설명이란 것을 해도 실은 그것은 나는 수년간 공부한 것을 10분만에 알아들으라는 것과 같다.

 

그래서 대중과학서적과 전공서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과학을 전공하면서 느끼는 것은 세상에는 대중과학 서적이란게 아주 많고 그 서적은 종종 대단한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썼으며 그런 책들을 많이 읽고 거의 외우다시피하는 과학 오타쿠같은 사람들도 세상에 많다는 것이다. 과학 오타쿠라는 말이 그들을 비하하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모두가 과학전공자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라디오 방송같은 곳에서 재미있는 과학소개같은 걸 하려고 하면 진짜 과학전공자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 과학전공자와 과학오타쿠가 꼭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오타쿠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들은 말하자면 산에 안가보고 산에 대한 설명들을 엄청 많이 읽고 외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도 오타쿠라고 나는 전에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른 의미다. 과학자는 과학을 진짜로 하지만 과학 오타쿠는 과학을 하는게 아니라 과학에 대한 이런 저런 사실들을 흥미위주로 수집한다. 세상에는 뒷산이라도 직접 오르고, 한라산이라도 직접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에는 전혀 가지도 않으면서 세계의 명산들에 대한 소개들을 달달 외워서 무슨 산 이야기하면 아 그 산은 뭐가 좋고, 뭐를 주의해야 하고 라는 말을 줄줄이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중소개서 같은 것을 10년 20년동안 엄청나게 읽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진짜 전공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전공분야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철학도 철학자가 있고 철학 오타쿠가 있다. 철학 분야는 오타쿠와 아닌 사람의 구분이 더 힘들다. 철학은 애초에 말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남의 말을 외우고,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걸 정말 깊숙히 생각해 보고 하는 말인지는 구분하기 힘들고 심지어 본인도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을 위한 전공분야의 소개책이란 어렵다. 세계적 대가가 썼다고 해서 꼭 좋은 책이 아니다. 전공분야는 워낙 세분화되고 대가들은 타고난 재능이 다른 경우도 있으며 그들은 다른 일로도 바쁘기 때문에 꼭 그들이 개론서를 잘쓰리란 보장은 없다. 더 흔한 것은 오타쿠들이 쓰는 책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전문가다. 바로 자극적이고 흥미를 끄는 체계적인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데 전문가인 것이다. 왜냐면 오타쿠는 그런 것들만 두루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뇌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천가지같은 책을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재미있고 잘 팔리는 책을 쓰면 추천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주로 어떤 흥미이든 흥미를 끌게 되면 결국 그 분야의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때문이다.

 

정도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부터 재미있는 과학소개같은 것이 과학을 망친다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세속화시킨다. 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는 숭고한 목적의식을 훼손하고 과학을 오락거리나 돈을 버는 수단으로 고정시킨다. 그렇게 되면 더 재미있고 더 돈 잘버는 일이 있으면 과학은 필요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의학과 법학과 비교해 보라고 말한다. 의대와 법대는 최고의 인기학과다. 그런데 의학이나 법학전공자는 재미있는 의학이나 법학 운운하면서 자신들이 무슨 놀이동산에서 노는 사람인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참는 희생자들처럼 스스로를 말한다. 과학자나 수학자도 마찬가지다. 과학을 하는 것이 재미만 있고, 소득도 높다라는 것은 허구다. 이걸 생각하면 대중적 과학소개는 종종 핵심을 놓치고 있으며 길게 보면 과학분야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수학 오타쿠들이 재미있는 수학 운운하는 것이 꼭 수학발전을 가져 오지 않는다. 우리는 수학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수학을 자기 인생으로 여기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건 재미있는 수학따위의 접근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은 일찌기 아인쉬타인도 진짜 과학자에 대해 말하면서 지적한 문제다.

 

그렇다면 전공분야에 대한 대중적 소개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대중적 소개서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전공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그 전공분야를 대중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책이 아니다. 그런 책은 불가능하다. 대중적 소개서란 미술과 미술평론이 다른 분야인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분야다. 그것은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해 주는 새로운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새로운 학문이라고 까지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핵무기의 제조방법과 핵무기가 가지는 사회적 경제적 의미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과 문맥을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인공지능의 대가인 제프리 힌튼 같은 사람은 물론 아주 잘 알겠지만 이런 말은 문맥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전문가지만 특정한 문맥에 대해서 그런 것이다. 그걸 인공지능에 관련된 논의라면 뭐든지 이 전문가가 제일 잘 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에 대해 말하면서 그 기초도 이해하지 못하고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말이다.

 

오타쿠의 글이 제대로된 개론서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은 흥미위주의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복싱경기를 중계하는 구경꾼처럼만 떠들기 쉽기 때문이다. 재미란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재미위주로 사실들을 모아놓은 것이 어떤 깊은 문제의식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책들은 한해만 지나고 읽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 된다. 올 봄에 파리에서 유행한 패션에 대한 보고처럼 자잘한 사실들은 매년 변하기 때문이고 사회적 역사적 학문적 문맥에 있어서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어떤 문맥을 제시하지 못하는 글은 읽어봐야 도움이 되는 만큼 해도 된다. 어떤 정보든 도움은 되지만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글은 해도 되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야할 판인데 중간고사에 뭐가 출제될지를 계속 읽고 있는게 과연 도움이 될까?

 

어떤 전공분야 그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진짜로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걸 전공하는 사람들이 읽는 개론서를 봐야 한다. 물론 그건 어렵고 오래걸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장 빠른 것이다. 더 빠른 길은 없다. 그런게 있다면 누구보다 전공자들이 그런 책을 써서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읽게 할 것이다. 대중적 소개서란 전공책을 쉽고 짧게 요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다른 문맥위에서 새로운 주장과 그와 관련된 사실들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전공분야를 대중의 삶, 개인의 삶에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 소개서는 그 주제분야가 가지는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논해야 한다.

 

대중적 소개서는 교과서를 요약해서 설명한 참고서가 아니다. 그런 걸 약속하는 책들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 그렇게 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황금빛 전망이나 거대한 공포가 일어나게 되면 나중에는 그걸 막을 수가 없어진다. 뭐든지 정도 문제이기는 하다. 흥미라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싸구려 황색언론이 과학자가 하는 일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이 계속 되면 사회가 과학자를 조종하려고 든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그게 뭐든 그 학문은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지한 평론이 즉 진짜 대중적 소개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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