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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인공지능에 대한 글

제 3의 지식

by 격암(강국진) 2023. 8. 17.

23.8.17

일찌기 인간을 묻는다를 쓴 제이콘 브로노우스키는 인문학과 과학을 지식의 서로 다른 양태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지식의 또 다른 양태 즉 제 3의 지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AI다. 우리는 AI를 제 3의 지식으로 인식하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AI가 지식의 다른 양태인 이유는 첫째로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의 압축물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간단히 말해서 많은 데이터를 컴퓨터 최적화를 통해 압축해 놓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것은 자연에 대한 관찰에서 찾아낸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수학공식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AI는 과학적 지식과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것이 AI가 지식의 다른 양태인 두번째 이유인데 그것은 AI는 기본적으로 이해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해서 찾아지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이런 주장은 양자역학의 등장이래 애매한 점이 생기기는 했지만 심지어 양자역학도 간결한 수학공식으로 정돈될 수 있다는 점에서 AI와는 뚜렸한 차이를 지닌다. 이때문에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수학공식은 인간에 의해 다른 형태로 쉽게 변형가능하지만 훈련된 AI는 체계적으로 변형될 수 없다. 그렇게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AI가 지식의 또 다른 양태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정확히 말하면 최적화를 통해 찾아낸 AI 내부 변수의 값과 AI의 구조에 대한 정보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정보를 압축해서 만들어 지지만 블랙박스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그 안의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그러나 아주 새로운 사건은 아니다. 사실 17세기 과학혁명의 핵심은 정확한 데이터와 자연의 수학적 묘사에 있고 이를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수학공식들이다. 그런데 수학공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등장한 처음에는 어떤 면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면 그것은 애초에 이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후크의 법칙을 보자. 스프링을 당길 때 스프링의 힘은 당겨진 길이에 비례한다는 후크의 법칙은 F=-kx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왜가 없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는 후크의 법칙에 대해 좀 더 깊은 설명을 할 수 있지만 후크의 법칙이 가지는 기본적 성격은 '자연을 관찰해 보았더니 후크의 법칙이란게 있더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우리는 더 깊게 들어가는 대신 그걸 쓴다. 수학적 분석을 하면 이 후크의 법칙은 결과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소위 주기운동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오는 지를 이 후크의 법칙에서 미분방정식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스프링과 진자가 어떻게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인지를 우리는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17세기 과학혁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확한 데이터에서 법칙을 찾아낸 후 그 법칙의 결과를 연역적으로 풀어내서 세상의 많은 현상들을 이 법칙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출발점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법칙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미래의 숙제정도로 남겨놓게 된다. 이런 태도가 없으면 오늘날의 정밀과학은 발전할 수가 없다. 언제까지 애매한 말들의 잔치만 벌어지고 그때문에 발전이 누적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과학은 고대로부터의 철학과 확고한 분리를 가져나오게 되고, 심지어 이론물리학자라는 직업조차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살펴보면 제 3의 지식을 이용하되 왜를 묻지 않는다라고 하는 정책은 제 2의 지식이라고 할 과학지식 즉 과학법칙에 대해 우리가 과거에 취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같은 이유때문에 매우 생산적인 태도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최근 사례가 바로 알파고로 인간을 바둑으로 이겼던 딥브레인에서 만든 알파폴드다. 이 AI는 시대적 난제인 단백질 접기 문제를 해결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이해가 없다. 그냥 유전자정보와 단백질의 3차원구조간에 존재하는 관계가 AI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파폴드같은 AI의 쓸모가 없을까? 

 

제 3의 지식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가 그것이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논리적 건축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에서 더 깊어진다. 과학적 지식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은 세계에서의 법칙이나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결과물을 쌓아올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항상 어떤 이유를 찾고 구조를 찾는다. 그런데 제 3의 지식은 컴퓨터의 최적화결과로 나오는 것으로 이것은 생명의 진화과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진화가 곧 최적화라고는 단언할 수 없겠지만 이들은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만큼 비슷하다. 그리고 그런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의 뇌다. 

 

그런데 우리는 바둑을 인간보다 더 잘 두는 알파고를 인간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을 쉽게 납득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인간의 뇌를 인간이 과학적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의식이나 인간의 감정을 과학적 패러다임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면 그것은 생산적이지 못하고 부정적이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하늘에 뜬 무지개를 시나 문학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어떤 면에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자연이 만들어 낸 제 3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뇌를 과학적 패러다임으로는 이해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렇다면 열심히 무지개에 대해 시를 쓰면 과학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것이야 말로 비생산적인 태도가 아닐까?

 

뇌를 제 3의 지식으로 여기고 과학적 이해를 포기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이해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과 비생명간의 구분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한다. 과학적 의미에서 보면 생명과 비생명의 차이가 없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생명체안에만 존재하는 물질이라던가 신비한 힘을 찾았지만 물론 그런 건 없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 내부에서도 자연법칙은 그대로 적용되고 그렇다면 인간은 결정론적인 로보트가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 것도 다 이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제 3의 지식이 기본적으로 인간이 이해불가능한 수준의 데이터를 압축한 결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결과다. 여기에서는 기준점에 인간이 등장한다. 즉 인간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것은 제 3의 지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생각해 보면 흔히 있다.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장난감이지만 그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감정이 있고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은 누구나 느끼는 것아닌가? 결국 살아있다라고 우리가 느끼는 것의 본질은 정보의 밀도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위의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살아있다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찰자인 인간을 빼놓은 관찰자없는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이 생명과 비생명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생명이 그저 조금 더 복잡한 정보에 불과하다라는 식으로 제 3의 지식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걸 이렇게 말해 보자. 여러분이 주사위를 여러개 던졌다. 그런데 주사위를 만개쯤 던졌는데 모두 6이 나온 것이다. 이는 확률계산으로 하면 천문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작은 확률이다. 이런 특별한 사건을 '그저 좀 특이한 사건'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생명의 유전자 정보는 진화적 시간 규모에서 그러니까 몇천만년이나 몇억년 규모에서의 정보가 압축된 것이다. 그걸 고작 백년도 못사는 우리가 그저 좀 복잡한 정보라고 부르는 것은 오만한 것이다. 그런식이라면 도서관에 있는 인류의 고전들은 그저 알파벳을 조금 길게 쓴 것에 지나지 않는 낙서가 될 것이다. 확실히 제 3의 지식과 과학적 지식의 경계에는 애매한 지역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무시될 수 있을 정도로 제 3의 지식은 또렷히 존재한다. 그것은 확연히 다른 차원에 있다. 인간이 알파고의 변수값을 기계없이 혼자 분석해서 이해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을 습득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문자다. 문자로 정보를 기록하고 융합한 이래 인간의 정보처리 기술은 크게 발전했다. 제 1의 지식인 인문학적 지식은 이때 부터 나온 것이다. 이때 인간은 종종 영적인 존재로 파악되었다. 과학이 큰 발전은 수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과학의 중심에 가져다 놓으면서 생겨난 것이다. 제 2의 지식인 과학적 지식은 인간의 문명을 새로운 단계로 진보시켰다. 이때 인간은 종종 기계적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컴퓨터와 AI의 발전은 정보처리를 또한번 새로운 차원으로 밀어올렸다. 미래가 내일부터 펼쳐지지는 않겠지만 제 3의 지식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이제 인간은 제 3의 지식으로 파악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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