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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여러개의 언어가 있는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3. 10. 24.

23.10.24

우리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 말할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서둘러 비과학적이라거나 미신적으로 여기고는 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능력이 유한함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태도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개미를 생각하거나 짚신벌레를 생각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개미나 짚신벌레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인식하거나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을 명확히 안다. 개미는 영원히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양자역학이라는 시스템이 가진 복잡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양자역학은 비록 존재하는 질서이지만 개미의 의식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미의 의식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든 개미이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개미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인간의 유한함을 지적하는 것은 뭔가를 알기를 포기하고 어떤 종교적이고 비과학적인 존재에 의지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런 태도는 옳지 않고 또 이런 태도에 반발해서 다시 인간의 문명이 가진 힘을 너무 강조하는 것도 옳지 않다. 21세기 현재 인간의 문명적 힘이란 대부분이 아니라면 상당부분 문자의 힘에 근거해 있다. 우리는 문자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문자를 통해서 이룩한 문명적 업적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문자는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숲을 어슬렁거리며 살던 인간을 우주선을 만들고, 핵폭탄을 만드는 존재로 만들었다. 이런 엄청난 업적을 생각했을 때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인간은 노력만 하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한다면 말로 표현할 수도 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속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고, 문자로 쓸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게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정확하게 말로 쓸 수 없다. 누군가가 그걸 정확히 말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문자로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를 초월한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나 신비하고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며 그것을 이해하기란 사실 굉장히 간단하다. 컴퓨터에는 gif 파일이나 jpeg 파일 같은 사진 파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파일들을 텍스트로 열어보면 우리는 끝없이 계속되는 문자의 나열을 본다. 인간의 능력은 명백히 제한적이라서 우리는 컴퓨터 파일을 아무리 오래 들여다 봐도 컴퓨터로 그것을 사진으로 변환하는 일 없이는 그것이 어떤 사진일지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지식이라고 하고,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까지 포함해서 쓰고 저장할 수 있는 것을 데이터라고 할 때 모든 지식은 데이터이지만 모든 데이터는 지식이 아니다. 앞에서 예로 든 것처럼 도구를 사용하면 명백히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진 데이터라고 할지라도 그 표현형식에 따라 인간은 그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컴퓨터가 다루는 데이터들은 이미 인간을 개미로 만든지 오래다. 게다가 전통적으로는 지식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불가능한 데이터같은 성질을 가지게 된 지도 오래인데 이는 그 지식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득히 차있는 책들은 모두 인간의 언어로 써져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인간이 다 읽고 이해하기 불가능한 양이다. 그런데 그런 텍스트는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하면 작은 USB 하나도 채우지 못한다. 이렇다고 할 때 이게 지식일까 인간이 이해불가능한 데이터일까? 인간이 가진 지식의 양은 이미 한 인간이 모두 알기에는 너무 많아진지 오래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전문화가 일어나고 전문학과를 따로 공부하는 전문가를 키우게 된 것이다. 지금은 대학이 전공학과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처음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몇백년전만 해도 교육받은 지식인은 모든 책을 다읽었다.

 

이런 현실속에서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명확하게 정의된 것으로 만들어낸 과학적 지식은 비교하고 검증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즉 명확하게 측정된 데이터로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이런 특징이 만들어 낸 결과는 이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과학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에는 독일과학이 있고 한국 과학이 있고 일본 과학이 있는게 아니다. 그런 말을 쓸 때 우리가 의미하는 바는 그 과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 써진 물리학책과 한국어로 써진 물리학책은 정확히 같은 과학을 의미해야 한다. 세상에는 두 개의 과학이 존재할 수 없다. 둘이 서로 다르면 둘 중 하나는 과학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서로 다른 주거 문화를 가지고, 서로 다른 음식 문화를 가질까? 언어와 과학은 뭐가 다른 것일까? 그 차이는 바로 말할 수 없는 지혜다. 즉 각각의 언어는 오랜 세월 동안 문화적 진화를 거치면서 그 사회가 가진 혹은 가졌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질서를 그 내부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질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신비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바둑을 졌을 때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도 그 AI의 내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AI는 변수 최적화를 통해서 만들어 지고 인간은 그 변수값을 들여다 봐도 AI가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 모른다. 다만 알파고 같은 AI가 바둑을 잘 둔다는 것을 테스트를 통해 확인할 뿐이다. AI의 변수값에 신비적인 요소는 없다. 다만 유한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발달한 언어 시스템안에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신비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는 달리 정확한 실험과 논리적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 진 시스템이 아니다. 우연과 역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우리는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된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어디에 존재하냐고 묻던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라.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그게 그럴듯해 보였지만 진화의 결과와 세월의 누적된 힘을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세상을 둘러 보면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넘쳐난다. 무엇보다 모든 문화적인 것은 전부 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것을 명확한 언어로, 어떤 시스템으로 설명하는 것은 뭔가 중요한 것을 빼먹는게 된다. 사실 자연도 인간이 말로 다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자연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이건 아주 큰 착각이다. 설사 우리가 자연법칙을 모두 안다고 해도 그렇다. 바둑의 규칙을 아는 것과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기는 것이 다른 것이듯 현실로 존재하는 자연이란 단지 법칙의 결과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우연과 초기조건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왜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지를 엄밀하게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이러저러한 조건때문에 지구에 생명이 출현했다면 우리는 왜 지구에는 그런 조건이 존재했었냐고 물을 수 있고 그걸 답하는 것은 점점 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 데이터가 없거나 실험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 여기 저기에 존재하던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미신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그것은 많은 부분 발전이었지만 동시에 크나큰 정보의 손실이기도 했다. 부뚜막에 신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이상 신에게 기도하지 않겠지만 기도하는 행위의 효과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발현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인간의 하나의 언어로 통일 된 세상을 살지도 모른다. 그것은 엄청난 정보의 손실일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는 서로 번역될 수 있지만 거기에는 번역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이런 사실은 두 사람이 만나서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와 영어로 이야기할 때 전혀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주목하면 쉽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내는 와이프가 아니고 친구는 프랜드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래도 언어의 통일은 일어날 수 있다. 과학이 미신을 없애면서까지 이룩한 혜택이상의 것이 그 통일로 얻어진다면 말이다. 그런 세상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 수 있다. AI는 이미 40개 국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AI가 발달해서 언어와 언어간의 번역이 표준화되고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가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과학을 외면하고는 세상을 살 수 없는 때가 왔듯이 그런 표준언어에 근거한 사고를 외면하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오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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