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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인공지능에 대한 글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다.

by 격암(강국진) 2023. 11. 8.

23.11.8

일찌기 철학자 칼 포퍼는 그의 자서전 끝없는 탐구에서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연구 프로그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그가 진화론을 부정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진화론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과학이 갖춰야 할 조건을 반증 가능성이라고 말할 때 진화론은 이걸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어느 혹성에 가서 지구와는 다른 생명체를 찾거나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그것이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진화론은 왜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은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과학이 아닌데도 소중히 여겼다라는 말은 소중한 것은 꼭 과학뿐이 아니며 합리적 판단이란 반드시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것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건 과학이 아니야라는 말을 그것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역방향으로도 몰아쳐서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과학이 과학이 아닌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든다면서 거꾸로 과학을 부정하려고 하는 셈이다. 

 

진화론과 관련해서 과학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오늘날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얼마전에는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 딥마인드가 내놓은 프로그램인 알파폴드는 오랜간 생명분야에서 난제로 불렸던 단백질 접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한 적이 있다. 단백질 접기 문제는 염기서열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연결하는 문제이며 신약개발같은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알파폴드는 이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확률을 크게 높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딥마인드가 알파폴드를 통해 단백질 접기 문제를 푼 것은 과학이었을까? 중력법칙이나 양자역학같은 물리학은 엄밀한 방정식을 기반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개 맞는다라는 것은 과학 법칙이 아니다. 오히려 한번이라도 틀리면 그것은 반증된 것으로 여겨진다. 양자역학은 흔히 본질적으로 확률적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래도 그것은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파동함수를 예측한다. 즉 양자역학도 파동함수의 차원에서는 결정론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AI에서 법칙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과연 AI를 써서 단백질 접기 문제를 풀었다는 것이 반증가능한 것일까? 만약 단 한번이라도 AI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것에 틀리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고 한다면 AI를 써서 단백질 접기 문제를 해결한 것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AI는 그렇게 엄밀하게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게다가 반증가능성을 제쳐두고서라도 우리는 이같은 과학연구에서 과학이 가져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이해다. 이제까지 알려진 과학법칙은 인간이 이해가능한 것이었다. 양자역학조차도 인간이 풀 수 있는 방정식에 기반한다. 왜냐면 그 법칙을 제안하고 검사하는 것이 이제까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가 어떻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가는 인간이 이해가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알파고가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 프로그래머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알파폴드가 어떻게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과학일까?

 

이쯤되면 뭔가가 과학인가 아닌가를 생각한다던가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해 동의하는 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판단만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하면서 반드시 이건 과학이야 라던가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결되어야 해라는 생각만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합리적 문제 접근 방식이란 과학적 문제 접근 방식과 거의 같은 말이 되어 있다. 이때문에 우리가 그게 과학인지 아닌지가 안 중요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적 접근 방식이 아닌 것을 과학이라고 여기면 오해가 생긴다. 오늘날 AI의 발달을 볼 때 인간의 문제해결을 위해 AI가 사용되는 일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이럴 때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에 혼란을 가져서는 안된다. AI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과학적 해결 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과학적 해결방식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늘날 인간의 뇌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대개 인간의 뇌를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인간의 본질에 관련된 기관인 뇌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도 상상한다. 인간은 뭐든지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당장 그게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걸 계속 추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알파고로 돌아가 보자. 알파고의 과학적 이해라는게 뭘까? 알파고의 기능인 바둑두는 방법을 알파고의 변수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럴 것같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알파고 보다 훨씬 더 대단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인간의 뇌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서 과학적으로 그걸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지어 오늘날에는 인간의 뇌를 거의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마치 알파고가 작동하는 컴퓨터의 전기 배선같은 걸 알아내고서 알파고가 뭔지 거의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실 AI와 인간의 뇌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철학적인 유사성이 있다. 그 둘은 모두 정보의 누적과 최적화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즉 엄청난 데이터가 누적되고 그 과정에서 최적화가 일어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그 둘은 모두 엄청나게 큰 도서관과 비슷하다. 너무 도서관이 엄청나서 그 걸 다 인간이 읽을 수가 없을 정도다. 이게 AI와 인간의 뇌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한 간단한 이유다. 이해가능한 단순한 시스템이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다. 뇌의 과학적 이해란 요약이 안되는 것을 요약하려고 하는 잘못된 시도일 수 있다. 

 

사람들의 상식은 이제까지의 인간이 다뤄왔던 규모의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느 정도의 데이터를 다루는가 하는 것은 시대별로 크게 달랐고 컴퓨터와 전자통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매일 매일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점점 더 엄청난 데이터를 컴퓨터로 처리한 결과를 만나게 되는 일이 흔하며 AI는 이런 경향이 만들어 낸 가장 극적인 예다. AI는 뇌가 아니지만 뇌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는 우리가 왜 뇌를 이해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통찰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합리적으로 세상에 대처하는 방식이 백년이나 5백년전 혹은 3천년전과는 같을 수가 없다. 핵심적인 차이는 정보량에 있다. 이때문에 뉴튼이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거의 다 소진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우리가 무슨 신비주의나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로 가고 있을 뿐이다. 그 미래에는 엄청난 정보가 누적되어 만들어 져서 결코 간단하게 요약되고 묘사될 수 없는 뇌같은 것들이 많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제 3의 지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지금 과학의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듯 우리는 미래에는 제 3의 지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 제 3의 지식의 인공적인 예는 AI이며 자연적인 예는 뇌와 유전자이며 사회적인 예는 문화다. 결국 진화론은 뉴튼의 과학혁명과는 다른 종류의 지적인 혁명을 예언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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