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노동자 일기

일을 해내는 것과 자기 탓

by 격암(강국진) 2023. 11. 15.

23.11.15

일이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면 좋을텐데 적어도 언제나 이렇지는 않다. 나는 요즘 쿠팡 소화물 분류 알바를 하고 있다. 시작한지 3주가 되었는데 어찌보면 약간 솜씨가 좋아진듯도 하지만 어찌보면 변한게 없는 것같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그 바닥에서 몇년씩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분명하다. 

 

하지만 손이 얼마나 빠른가에 상관없이 이따금 감당하지 못할 만큼 일이 몰아치는 일은 반드시 생긴다. 소화물 분류란 컨베이어 벨트 위로 보내져 오는 소포들을 레이블에 따라 분류해서 따로 저장하는 일을 말하는데 제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그 소포를 모두 내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포가 많이 몰려 오는 일이 이따금 생긴다. 그걸 분류해서 자기 자리로 가져다 놓고, RT라고 불리는 큰 짐칸에 잘 쌓아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다. 

 

이 일은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행해진다. 한 사람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짐을 내리는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그걸 RT에 가져다 쌓는 사람인데 보통 벨트 앞에 서는 것은 여자고 가져다 쌓는 사람은 남자가 한다. 그래서 벌써 3주나 되고 보니 아주 많은 사람들과 조를 짜서 일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몰아치면 사람들의 차이가 들어난다. 일단 침착성이 큰 차이다. 일이 감당하지 못할만큼 많아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더 빨리 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건 좋은 방법이지만 어떤 한도를 넘어서면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침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한도를 넘으려고 하고, 그러면 실수가 생겨난다. 그 결과 일을 그렇게 빨리 하려고 하는 것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다. 잘못 쌓아올린 짐들은 무너질 수있고, RT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짐 정리를 새로 하거나 새로운 RT로 교체하거나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더 늦어지는 것이다. 일이 몰려들고 있을 때 소포가 파손되거나 RT에 쌓인 짐이 무너지면 눈앞이 컴컴해 진다. 함부로 던진 요쿠르트 박스가 터져서 요쿠르트 병들이 바닥에 좍 퍼지는 광경은 공포스럽다. 일은 밀려들고 있는데 무너진 짐들이 통로를 다 가로막고 있으면 그것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몰려들고 적체가 심해질 때 생기기 쉬운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을 탓하는 것이다. 더 빨리 일을 하고, 더 내 마음에 꼭 맞게 일을 하면 효율이 더 올라갈 텐데 왜 일일이 시켜야 하고, 시키는 일도 잘 하지 못할까? 왜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일을 할까? 그거 먼저 하지 말고 이거 먼저 해야 할텐데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불만도 도움이 안된다. 이유가 뭐건 어차피 파트너가 순식간에 바뀔리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으로 서로 다 조금씩 다르다. 내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도 없고 그것이 협력체계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어떤 방법을 써도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은 결국 오고야 만다. 어떤 사람은 그걸 결사적으로 피하려고 하다가 그 일을 앞당긴다. 앞에서 말한대로 일의 효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파국이 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말하자면 망하더라도 우아하게 침착하게 망하는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 옆에 무작위로 쌓아 올려진 짐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사실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때로 일은 다시 풀린다.  갑자기 몰려드는 일의 양이 줄어서 밀려있는 일을 처리할 시간이 나거나 너무 적체되어있는 일거리를 보고 어딘가에서 도움이 오기도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럴 때 RT가 잘 정리되어 있고,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어차피 완벽한 하루란 존재하기 힘들다. 오늘도 대충 수습하는 불완전한 하루가 연속되어지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숙련자이면서도 그걸 못하는 사람을 여럿봤다. 그들은 손도 판단도 빠르지만 평정을 잃기 시작하면 초보와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자꾸 번거로운 일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난리가 지나가고 나서 좀 한가해 지거나 일이 끝난 뒤에는 같은 생각이 나에게 떠오르곤 했다. 일을 해낸다는게 뭔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일은 해내고 싶다. 하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해도 언제나 한계는 존재한다. 그리고 실패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놀랍게도 회사와 자기를 일치시키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 즉 일의 실패는 모두 나의 잘못,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실패하는 것을 내 책임으로 여기지 않는 것도 곤란하지만 이런 태도도 곤란하다. 말했듯이 일이 몰려들 때는 조력자가 더 있기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질 정도로 많은 때가 있다. 게으름을 피운 결과라면 곤란하지만 나름대로 노력했는데도 일이 실패하는 것은 결국 노동력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고 일거리를 가져오는 회사책임이지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다. 게다가 노동자는 곧 회사가 아니다. 노동자는 그냥 보수를 받고 일을 해주는 사람이다. 사람이 어떤 보수를 받고 어디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을 잘못해서 택배가 배달되지 않으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돈에 상관없이 택배가 잘 가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십명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손이 빠른 노동자만큼 손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보수를 도둑질 해가는 것일까? 왜 일정량의 보수를 약속하고 노동자에 대한 기대는 한없이 올라가는가? 

 

물론 이런 일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가 그걸 유도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걸 위해 조직을 만든다. 그 조직의 중간에 있는 사람의 역할은 적은 비용을 써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는 일의 가장 큰 부분은 노동자를 세뇌하는 것이다. 일이 잘못된 것은 노동자의 탓이며 여러분은 개인이라는 입장에서 사고 하지 말고, 내가 곧 회사라는 입장에서 사고하라고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전쟁은 개인적 취향이나 욕심때문에 일으키고 전장에서 죽는 청년들에게는 국가를 생각해서 몸을 바치라고 말하는 정치가가 떠오르게 된다. 왜 책임감은 노동자의 몫일까? 이렇게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는 어딘가에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어서 누가 옳고 그른게 아니다. 말했듯이 집단에는 공동체의 사고도 있고, 개인의 사고도 있다. 회사와 노동자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 각자의 선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 선의 위치가 애매하고 이데올로기에 잘 중독되는 사람이 몇몇 있을 때 문제는 나빠지기 쉽다. 거래는 꼭 돈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일을 해내도록 힘을 합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갑자기 애국주의나 애사주의같은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다른 노동자를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나서면 그것도 곤란하다.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은 꼭 있다. 중요한 것을 가장 먼저 잊어버렸으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주제별 글모음 > 노동자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팡 알바와 아버지의 기억  (0) 2023.11.05
철학자의 삶, 노동자의 삶  (2) 2023.10.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