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노동자 일기

쿠팡 알바와 아버지의 기억

by 격암(강국진) 2023. 11. 5.

23.11.5

쿠팡 소화물 분류 알바를 시작한지 이제 열흘이 되었다. 빼먹으면 오히려 하기 싫어질까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데 이제는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기는 한다. 알바를 나가면 거기있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고 먹을 것도 가져다 주는 사람도 있다. 일은 조금, 아주 조금 익숙해 졌는데 그게 익숙해 진 건지 아니면 그냥 그날 좀 운이 좋아서 화물이 적게 오거나 다루기 쉬운 화물이 오는 건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이젠 적응했냐고 묻는 긴 경력의 노동자 분에게 적응은 했지만 힘들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인기있었던 웹튠이자 드라마에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나는 쿠팡 일터에서 미생이다. 나는 이 일을 해보기 전까지만 해도 쿠팡 알바란 그냥 쿠팡과 개인간의 계약으로 하는 알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근에 나온 공고를 보고 신청해서 시작해보니 이건 인력 하청 업체의 알바였다. 다시 말해 쿠팡은 인력 하청업체에 보수를 지불하고 그 업체가 나에게 알바비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청을 하면 당연히 조건이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들어오는 일터에 관한 정보도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나에게 전달된다. 그나마 몇일을 열심히 나갔더니 그날 배정받은 라인에 내 이름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없었다. 나는 그냥 외주인력 1이나 2의 이름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사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하루 하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 10분만에 대책없이 도망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초짜는 두 번보게 될지 알 수 없다. 

 

6시간의 노동은 세번의 휴식시간을 기준으로 네 조각으로 나뉘어 진다. 언제나 첫번째 시간이 제일 힘들다. 물건도 너무 많이 들어오는 데다가 아직 일이 끝나려면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첫날에는 더이상은 너무 힘들다면서 시간을 봤더니 그게 겨우 한시간 노동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일할 때는 시계를 보면 안된다. 시계를 볼 시간도 없지만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면 언제나 생각보다 시간은 훨씬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인지 창고에는 시계가 없다. 힘든 것을 참으면서 첫번째 시간을 끝내고 나면 일은 조금 쉬워 진다. 그래도 끝날 때가 가까우면 빨리 끝나기만 바라게 된다. 피곤이 잔뜩 쌓였기 때문이다. 일을 다 끝마치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이 든다. 어쩌면 젊고 건장한 청년들에게는 좋은 운동수준이 아닐까?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날마다 이건 너무 심하네 하는 생각이 돌아온다. 휴식 시간이 되면 다들 이것저것 먹는다. 일하기 직전에 식사를 해도 계속 몸이 연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일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일이 힘들다는 사실때문에 운게 아니라, 나처럼 고학력에 화이트 컬러의 삶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 젊어서 부터 몸쓰는 노동자 생활을 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힘드셨을 것이다. 나와는 사람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니 훨씬 더 힘드셨을 것이다. 

 

나는 택시운전사의 아들이다. 동생만 주렁주렁있는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후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서 동생들 교육시키고 자식들을 셋이나 교육시키고 살았다. 나는 그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눈물이 났다. 책임져야 할 식솔이 있으니 그만둘 수도 없는 노동을 그 긴 세월 하다보면 정말 하기 싫은 때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솔제니친이 쓴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이 있다. 러시아의 강제노동소에서 일하는 사람의 하루를 그린 소설인데 그 소설은 이런 하루 하루가 10년 20년씩 계속된다고 말하면서 끝이 난다. 쿠팡 알바를 몇일 해보면서 그 소설 생각이 자주 났다. 나는 겨우 6시간의 노동이 끝나고 나면 하루의 노동이 끝났다면서 기쁜 마음이 든다. 나는 아직 노동에 코가 꿰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노동을 그만둔다고 해서 당장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아이들은 이미 상당히 컸다. 그런데도 하루의 노동이 쉽지 않은데 누군가가 앞으로 당신은 이렇게 40년간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중간에 그만둘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자식을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하는 것은 사실 힘든 노동에 끼지도 못한다. 더 힘든 일터에서 더 장시간 일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하루도 안빠지고 새벽 시간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시는 분도 자신은 대단한 축에 들지 못한다고 말하신다. 게다가 40년정도 전에 한국에서의 노동자 인권이 어땠는가를 생각하면 그때는 막말과 갑질이 넘쳐났을 것이 뻔하다. 요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한다. 쿠팡 알바는 2일 1조로 일하는데 다른 비슷한 곳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는 파트너에게 들으니 쿠팡 알바보다 일이 더 힘든 곳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쿠팡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만 거기서는 외주업체 직원들에게는 사람취급을 안해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쿠팡에서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자주 하는 말 중에는 코가 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건 아마도 자유롭게 살자는 뜻일 것이다. 자유란 참으로 지키기 어렵다. 그리고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자식 생각에 열심히 일하는 부모가 부자유하다는 것은 외부인의 눈에는 명백하지만 부모가 자식때문에 내가 부자유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그건 자유로운 것이다. 나도 코가 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식을 낳고 그것때문에 후회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어느 정도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조금 공부를 잘했고 학위도 했다. 연구주제도 잘잡아 박사를 따는 일에도 그 이후의 일정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고 결혼도 순탄하게 했다.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에게도 운좋았던 날들이 있었겠지만 분명 그 시대를 생각해 봐도 아버지는 별 선택의 여지가 없게 살다가 가셨다.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못해 본 것들을 더 해보고 돌아가실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다. 그것이 이제는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 되었다. 

 

'주제별 글모음 > 노동자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을 해내는 것과 자기 탓  (0) 2023.11.15
철학자의 삶, 노동자의 삶  (2) 2023.10.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