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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노동자 일기

철학자의 삶, 노동자의 삶

by 격암(강국진) 2023. 10. 30.

23.10.30

나는 누구인가. 나는 퇴직한 과학자이고 책을 한권 썼으니 작가이며 번역도 하니 번역가이다. 이밖에도 유튜버라던가 블로거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나를 생각하면 나는 사색하고 그걸 글로 쓰는 일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는가와 상관없이 말이다. 뭘 사색하는가? 그냥 이것저것이지만 그것도 돌아보면 공통된 주제가 있다. 그건 바로 합리적이란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이 시작된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는데 그래서 나는 어릴적에는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는다면 철학을 전공하려고 했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질문이라고 함축해서 말도 하지 못하던 시절부터 나는 내가 그 답을 찾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인공지능과 뇌과학쪽으로 연구를 했는데 나의 연구 이력이 그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나의 내부에 이런 철학적 질문이 존재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한권 쓰면서 아 내가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같았던 생각들이 사실은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이런 삶은 줄여서 말하자면 철학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철학자로서의 삶을 나의 삶의 중앙에 두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에는 노동자의 삶도 살고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니 좀 우스운데 사실은 알바를 시작한지가 5일밖에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알바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학생 과외를 한다던가 번역일을 더 하는 것도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런 일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인연이 닿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게 우습게도 처음 알바자리를 알아볼 때 이것만 아니면 뭐든지 된다고 하던 그 일이다. 문제의 그 일은 상하차 알바였는데 전에 인터넷에서 이것만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던 알바였다. 하지만 나는 공고를 보고 쿠팡 소화물분류 알바가 상하차 알바를 뜻한다는 것을 모르고 지원해 버린 것이다.  정말 힘들게 사시는 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는 하지만 이 알바는 적어도 내가 노동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만큼은 어렵다. 인터넷에서는 군입대에 비교되기도 하는 이 알바가 안 어렵다면 인간 학대 수준이 아닐까. 

 

얼결에 시작해버린 쿠팡 알바는 소문만큼 어려웠고 다행히 견디지 못할정로 어렵지는 않았으며 공고를 보고 내가 느낀 것처럼 장점도 있었다. 일단 내가 듣기에 상하차 알바의 세계에서는 쿠팡 알바는 매우 난이도가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이도가 낮다고 해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평생 노동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고 몸쓰는 일에 재주도 없다. 엔지니어로 평생 일하다가 퇴직한 우리 큰 형님의 경우에는 하신다면 나보다 훨씬 잘할 것같은데 나는 기민하게 빨리 물건을 정리하는 일에 재주가 없다. 그러니까 5일차가 된 지금도 주변에 민폐를 끼치면서 그저 겨우 겨우 버티는 수준이다.

 

이 알바의 장점은 새벽 4시에 시작해서 아침 9시반에 끝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3시 이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하지만 알바가 끝나고 나도 아직 10시가 넘지 않았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하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원하는 날에는 부담없이 빠질 수 있다고 말을 들었다. 물론 아직은 빠져본 적이 없지만. 나는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이 알바를 내 삶과 융합시키고 있다. 체력을 키우고 일하는 방식과 밥먹는 시간, 휴식하는 시간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최적화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알바를 그저 집안청소를 한다거나 아침에 세수하고 면도하고 샤워를 하는 것처럼 해야 하지만 약간 귀찮은 일 그렇지만 매일 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하게 되는 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하루도 안빠지고 하려고 한다. 일을 하는 날과 안하는 날을 구분하면 일이 다시 힘들어 질것만 같아서다. 

 

지금은 알바를 끝내고 집에 오면 잠에 빠져든다. 특히 허리를 쉬게 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하고 불과 3일만에 오후 시간까지 계속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두번 그렇게 해봤는데 적응되면 못할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여럿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노동의 피로때문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할 것같아서 사양하고 말았다. 알바의 목적이 돈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돈이 내 삶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알바에서 하는 일은 간단하다. 택배로 배달될 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로 밀려들어오면 그걸 일련번호대로 소분류하는 것이다. RT라고 불리는 사람보다 키 큰 카트위에 물건을 가져다 놓는다. 그게 거의 전부다. 문제는 그 화물의 숫자가 많고 종종 그 화물들이 아주 무겁다는 것이다. 쌀포대는 쉬운 편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아령세트같은 걸 택배로 주문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다. 가벼운 봉지에 든 택배도 숫자가 많아지면 정신이 없다. 이렇게 정신없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보면 아 내가 노동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끔은 작업장에 블랙핑크의 노래나 뉴진스 그리고 다이나믹 듀오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나오는데 힘든 일을 하면서 들으면 노동가가 왜 있는지 알 것같다. 다이나믹 듀오의 스모크 같은 노래를 따라하면서 일의 고됨을 잊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글의 제목이 된 생각이 떠올랐다. 철학자의 삶과 노동자의 삶은 극명하게 다르다. 뭐가 다를까? 물론 여러가지가 다르겠지만 내가 새삼 느낀 것은 철학자는 보편, 일반의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바쁜 노동자는 코앞의 일만 생각하게 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주거나 민폐를 끼치는지에 생각이 집중되고, 알바비는 언제 나올 것인지, 오늘은 일이 쉬운 줄에 배정되는 행운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재수없이 성질나쁜 사람과 한 조가 되지는 않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일상에 깊고 좁게 빠져드는 것이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고 피로에 지쳐 잠에 빠져들 때면 정말 모든 생각들이 사라진다. 

 

철학자의 문제는 그렇게 보편을 논하기 쉽기 때문에 삶의 특수성을 무시하기 쉽다는 점이다. 전세계에서 사람이 하루에 얼마가 죽는가를 생각하다보면 우리 동네에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사람이 하나 죽은 일은 그냥 흔히 있는 사고에 지나지 않게 된다. 철학자의 관념은 땅위에서 떠올라 추상의 세계만 떠돌기 쉽다. 흔히 서양철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플라톤은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직접 실험하고 관찰하는 일따위는 천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의 철학이 전체주의의 기원이 되고, 현대 과학 혁명을 만들어 낸 변화를 가질 수 없었던 이유다. 조선 시대에는 선비가 엔지니어나 상업 일을 천한 것으로 여겼다고 하니 이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삶은 기계나 동물의 삶이 되기 쉽다. 노동이 가치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힘든 삶의 현실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힘든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만 그 힘듬이 사람들의 생각을 점점 줄어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도 땅을 파는 일에 쓰일 수 있고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오직 땅파는 일에만 머무르게 되면 사람이 소로 변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전태일평전을 읽으면 전태일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극악의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일상을 초월할 수 있었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최초의 종교는 이 일상 초월의 이유때문에 생기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그저 짐승처럼 먹고 마시는 일만 생각한다면 사람은 그저 짐승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적 엄숙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을 초월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짐승의 삶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이상으로 살 수 있다고 믿게 되며 심지어 언젠가는 이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거라는 꿈도 꾸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위해서 꼭 종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색하고 읽고 쓰며 철학하는 사람은 같은 효과를 종교없이도 누릴 수 있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노점상을 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그렇게 모은 자본으로 가게를 낸다던가 어딘가에 투자를 한다던가 하는 꿈을 꿀 수 있다. 그들은 단지 한치일 뿐이라도 그들의 삶의 특수성을 초월한 보편적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희망도 없이 그날의 노동에 빠져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철학의 의미로는 그걸 한다면 그들도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고, 이렇게 보면 인간답다는 말의 핵심이 바로 철학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산해진미를 먹고 비싼 옷을 입는다고 해도 단지 같은 상황이 반복되기만 해서 삶이 지겨워진 수준이라면 그래서 그 지겨움을 해결하고자 남들을 괴롭히는 일에 빠져든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인간답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육체노동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노동이 힘들 것이 두려운 것보다는 그 노동에 지고 말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노동속으로 빠져들어가서 결국은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지금은 좀 덜 두려워졌다. 나는 이정도의 노동을 하고 나서는 여전히 생각도 한다. 적응을 다하고 나면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동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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