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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와 의사

by 격암(강국진) 2024. 2. 22.

나는 한국의 의료현실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고마워 하는 편이다. 외국에서 15년 이상 살았던 내 경험에 따르면 어느 외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의료보험과 한국의 의료가 뒤지지않거나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는 나같은 비의료인 혹은 시민들의 자부심과 감사함만큼이나 의료인의 자부심과 감사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자부심과 감사함이란 의료인 스스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와 대한민국의 시민들에 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 행여나 몇몇 의사들이 무식한 한국시민들 때문에 내가 고생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내가 겪은 외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사실이 아니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다른 나라의 의사들이 한국 의사들보다 더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지금의 한국은 의료에 대한 사회적 계약이 성공적인 덕분에 모두가 승리하고 있는 상황이며 만약 이 사회적 계약이 어느 한쪽의 오만으로 망가진다면 그건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패배가 될 것이다.

 

이 점은 특히 지금의 정부처럼 권위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정부가 있을 때 기억해야 한다. 사실 의사 증원의 당위성이 옳냐 그르냐를 떠나 한해에 3천명을 뽑던 의사를 갑자기 5천명을 뽑겠다고 하면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갑자기 두 배로 늘리거나 반 수로 줄이겠다고 하면 정치인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할 것인가? 공무원을 그렇게 한다고 하면 어떤가? 그런데 그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의사의 수를 갑자기 거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하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런 어마어마한 개혁안 다음에는 출국금지니 군대입대니 구속이니 하는 협박으로 정부는 일관하고 있다. 이건 그냥 정부가 맘대로 권력을 휘두를 테니 너희들은 굴복하라는 독재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정부의 무리한 행동에 반발하는 의사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공감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의사들의 언행을 보고 듣자면 그들의 사고 방식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그들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 의사신분이라는 것을 그저 자신의 노력으로 달성한 트로피쯤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생길 수 있는 환자들의 문제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여론을 기대하지는 않을테니 그들은 그저 이건 재산권같은 당연한 내 권리인데 왜 참견이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내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쉽고 돈되는 것만 하고 싶은데 당신이 왜 간섭하냐는 식으로도 보인다. 많은 의사들은 자신들이 고등학교때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돈을 잘 버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여러모로 틀린 이야기다. 첫째로 수입이 반드시 고등학교 성적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은 고등학교때 우등생이었던 자신의 모습에서 성장하지 못한 유치한 이야기다. 사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0년대에는 서울대 물리학과의 커트라인이 의대를 포함한 어느 학과보다 보다 높았다. 이공계에서 가장 공부잘하던 사람들이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에 가던 시절도 있었다. 고등학교때 공부를 잘했으니 나는 높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유치한 것인가. 둘째로 원인과 결과가 뒤집어져 있다. 의사의 수입이 좋기때문에 의대의 커트라인이 올라간 것이지 의대의 커트라인이 높아서 의사의 수입이 좋아진게 아니다. 솔직히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보고 있으면 의사의 고등학교때 성적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공부만 하는 우등생이었기 때문에 일반상식에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등생이었던 그들은 전교 1-2등이었던 그들 대신에 전교 5-6등하던 사람이 의사가 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마 이번 의료파동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조금 공부를 못하더라도 사회성을 겸비한 사람들이 의사를 해야 의료의 질이 높아질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돈이 아니라 정말 봉사정신으로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도 의사가 될 수 있고 말이다. 

 

나는 반드시 의사들의 고민이나 어려움의 호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반박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의사는 다른 어떤 직업이상으로 한국에서 공무원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 즉 의료행위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하에 이뤄지는 것이지 개인의 장사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 대해서 의사들이 좀 더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믿는다. 교사나 경찰이나 소방관이 사회적으로 생길 수 있는 결과를 외면하면서 파업하면 누가 그들에게 공감해 주겠는가. 의사는 준 공무원이라는 말은 의사들이 자본주의 자유시장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그 뜻만은 아니다. 이 대신에 한국의 의사들은 일거리와 직업 안정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애초에 정말 개인주의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무관하게 의사문제에 접근한다면 의료는 산업이 되고 그 결과 피해를 보는 것은 절대로 일반 국민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의료 분쟁에서 개인들이 이긴적이 드물다던가, CCTV같은 걸 수술실에 넣지 못하고 있는 것, 현실적으로 부족한 의사수 때문에 간호사가 의사의 일을 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데도 그걸 눈감아 주고 있는 현실, 성폭행을 하거나 사람을 죽인 의사들도 의사면허가 박탈당하지 않아서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제쳐두고도 한국에서는 의사에 대해 매우 높은 사회적 존경도 보내주는 편이다. 즉 사람들은 의사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걸 누리고 있는 한국의 일부 의사들이 그런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이게 다 뭐냐면서 다 필요없고 시장논리대로 하자고 우리도 공장노동자처럼 파업도 할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은 큰 착각이다. 

 

정말로 자유 시장 논리로 의료산업에 접근한다면 분명 스타 의사와 거대 의료기관은 돈을 벌겠지만 의사는 양산되고 대부분의 의사의 처우는 훨씬 더 형편없어 질 수 밖에 없다. 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없거나 자본이 부족한 의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이것이 공공의 성격을 띤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면 왜 의사들이 누가 의대를 세워 의사를 키우냐 마냐에 관여하는가. 멀리 외국의 의료 상황을 볼 것도 없이 다른 이공계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의사보다 수입이 적은 것만 봐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즉 엔지니어들은 의사와는 달리 시장논리대로 접근한 결과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만약 엔지니어들도 의사처럼 수를 조절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빵집들이 연합해서 더이상 제과점이 만들어 지지 못하도록 나라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식당의 진실을 알려주는 가장 큰 사실은 그 식당에 손님이 얼마나 오냐는 것이라고 믿는다. 즉 그 가격에 그 맛에 그 서비스에 그 식당이 갈만한 곳이냐는 의견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식당에 가득한 손님만큼 그 식당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사실은 없다는 말이다. 지금의 대학입시를 보면 엽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의대 입시가 과열되어 있다. 이제 서울대니 연고대니 하는 대학서열 따위는 무너진지 오래다. 그러니까 서울대 이공계의 학과에 수석입학했다는 것보다 어디든 의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더 칭찬받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뜻이 아닐까? 이런 현실에서 의사들이 내가 고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설득력이 있고 당연한 것일까? 

 

나는 고작 몇백명을 더 뽑자고 하던 전 정권에 대해 극렬 반대를 하던 의사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수의 의사들이 반대하던 그 정권이 물러가고 새 정권이 왔다. 이제 새 정권은 2천명을 말하고 있다. 나는 새 정권의 대책없는 정책에 찬성하지 않지만 타협하지 않고 상황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든 건 누구인가라고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사들이 단합하여 의사들의 이익만 지키면 되지 다른 학문이 어떻게 되건, 다른 사람들이 어떤 현실에서 일을 하고 있건 그걸 왜 의사들이 신경써야 하냐고 말한다면 내가 처음에 말한 것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 의료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세계 어느 곳보다 더 훌룡한 것이다. 물론 세상은 바뀌고 있으니 그 합의라는 것도 조금씩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접근 없이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개혁을 막을 때 우리는 사회적 합의의 붕괴를 볼 것이고 한국 의료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자부심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지금의 의대생들에게도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지지없이는 의사들의 행복도 없다. 이 글의 결론은 이 글의 시작과 같다. 나는 한국 시민으로서 한국 의료에 대해 한국 의사들에 대해 자부심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의사들도 제발 한국 사회와 한국 시민들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의료행위는 개인주의자의 일이 아니다. 바다건너 어딘가에 의사들의 천국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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