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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죽음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

by 격암(강국진) 2010. 2. 16.

나는 아이에게 죽음을 가르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는 세상은 변해 간다는 것, 주변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사라지며 자신의 생명도 무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자신의 하루하루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환경은 우수한것 같다. 일본을 돌아다녀보면 아주 쉽게 볼수 있는 것이 무덤들이다. 한국도 물론 그렇지만 경우가 좀 다르다. 일단 일본의 묘지들은 주택단지와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람에 비해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혐오시설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사람이라면 자기집 주변에 묘지가 있다면 기겁을 할것이다. 일본사람이라고 좋아만 하기야 할리없지만 묘지주변이라고 사람살지 못한다는 발상은 없는 것같다.


우리 집근처에 작은 묘지는 이곳저곳이 있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묘지도 자전거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아이들에게 묘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묘지를 가본적이 있다. 가보면 1제곱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면적으로 자리가 죽 마련되어 있고 바닥에 시멘트 뚜겅같은것이 있다. 그곳에 묘지를 만드는 경우는 그 안에 화장한 재를 넣고 비석을 세우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죽는다는게 뭔지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아이들은 다 안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알아듣는지 모르겠다. 어린 경호는 알아 알아 하다가 아빠도 나중에 죽는다고 하면 아빠도 죽어? 하면서 농담처럼 받아들인다. 나는 그냥 슬쩍 웃어넘기고 말았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화장을 한다. 그리고 가족묘를 쓴다. 묘소에 가보면 비석이 정면에 그리고 측면에 있는데 측면쪽의 비석에 이름이 여러개 쓰여있다. 그 이름 옆에는 그사람이 죽은 일자가 씌여져 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보아 선산에 가족들이 뭍히던 한국의 관습과 차이가 없지만 훨씬 현실적이고 편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땅도 비싸고 관리도 힘들어 잡초가 무성해 지거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묘소가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쉬운 한국의 현실과는 대비된다. 묘소를 쓰고 그걸 관리하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정 조상과 죽은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다면 일본의 예를 고려해 봐야 할것이다. 더 자주 갈수 있고 더 관리를 잘하며 비용은 저렴하고 모여있으니 잊혀지는 사람도 적다. 


일본의 묘지를 쉽게 볼수 있는 또다른 곳은 사방에 널린 절들이다. 일본에는 신도신자로 태어나 불교신자로 죽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날때는 신사에 가고 죽을때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루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죽고 나서도 절에 붙은 묘지에 안장되며 절의 관리를 받는다. 일본의 절은 이 장례에 관련된 사업으로 유지되는 면이 큰것같다. 아 일본의 절은 꼭 산중에 있지 않고 시내에 자주 있다. 그러니 절에붙은 묘지라는 것도 주택가의 묘지인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죽은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일본인들의 집에 있는 신단이나 불단이다. 여기에 죽은 자를 위한 신위를 모신다. 이걸 신도신자는 신단이라고 부르고 불교신자는 불단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의 집에는 대개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일본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대물에도 곧잘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본다. 구석의 작은 벽장같은 곳에 있는 사진을 모신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작은 종을 치고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다. 요즘은 얼마나 일반적인지 모르겠으나 전에는 집을 설계할때 반드시 불단이나 신단을 놓을 자리를 고려 할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옛집들을 구경하러가면 반드시 구석에 불단이나 신단자리로 생각되는 장소가 있다.


미국인들을 보고 있으면 죽음과 싸운다는 느낌이 있다. 결국 인간은 죽음과 싸워 이길수 없지만 죽지않고 늙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것같다. 그것은 그것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시간과 싸워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는 것은 멋지지 않는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젊게 살려고 한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늙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젊게 사는 것만이 사람의 사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같다. 쭈글주글한 얼굴에 짙게 화장한 할머니나 젊은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 능력좋은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윤회사상이 널리 퍼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본은 다르다. 사람이 나서 늙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죽은 자들도 산자와 같이 살아가게 된다는 느낌이다. 일부러 늙은 티를 낼필요는 없지만 늙으면 늙은대로 젊으면 젊은대로 인생을 사는 적합한 방식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국인으로서는 동양의 방식이 좀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부모님집에는 당연히 신단이나 불단같은 것은 없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진은 집에 걸려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런 것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잘 모를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장례식같은데 아이들 데리고 가는 것을 좀 꺼리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어린아이들은 죽음을 알게 되기가 쉽지 않다.


장례식이나 조상을 기리는 것이나 모두 산자를 위한 것이다. 사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죽은자를 가볍게 잊어버리고 만다면 살아있는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 진다. 어차피 긴 세월에 비하면 인간의 백년삶이란 한순간처럼 느껴질수도 있다. 죽자마자 잊혀지고 만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죽어도 그 자취가 남는다는 것을 알때 성실히 살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죽은 자를 기리는 것은 산자를 위한것이다. 죽은 조상님들은 우리에게 교육을 시켜주시고 위안을 주시고 계신것이다. 우리가 죽은후에도 우리의 삶은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 이어질것이고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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