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아내가 쓴 이스라엘 : 양보하라고 하지 마세요.

by 격암(강국진) 2010. 2. 18.

양보하라고 말하지 마세요!

 

양보하라고 하지 마세요. 쿄코는 잘라 말하며 야엘을 위한 아기 의자를 하나 더 꺼내 왔다.

 

그 집 아이의 의자에 앉아 비키지 않으려고 하는 예나에게 네 것이 아니니까 내 주라고 달래고 있는 참이었다. 너무 단호한 태도에 얼마간 의아해 있는 나에게 쿄코는 이렇게 일러주었다.

 

여긴 이스라엘이에요.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언제나 양보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여기선 자기 것을 주장하는 법을 가르쳐요. 한국식으로 교육시켜서 유아원에 보내면 아이들이 상처받기 쉬워요.

 

처음 이사온 그 날부터 쿄코는 내 이스라엘 생활의 지침대였다. 쇼핑에서부터 육아 문제, 자동차 관리까지 조금만 막히는 일이 있으면 나는 쿄코에게로 달려갔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부러 찾아와 도움을 주고 싶어했던 그는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하기만 했던 나에게 샘물 같은 존재였다.

 

쿄코는 이스라엘에 와서 유대인 남편과 산 지가 벌써 10년이지만 아직도 이 곳 생활이 힘겨울 때가 많다고 한다. 서양 정서와 동양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특이한 사회 구조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기 만은 아니다. 너무나 적극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기까지 한 유대인들의 성격에 적응하기란 어른이 다 될 때까지 일본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다른 운전자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하이빔을 쏘기가 일쑤이고, 신호등의 푸른 불이 켜지기 전 노란 불 상태에서 출발 준비를 마치지 않으면 여지 없이 빠~앙 하는 경적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서로의 이해가 조금만 맞지 않으면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싸우는 듯이 맞고함을 치고 있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다고들 하지만 유대인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겁내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얼핏 들으면 그게 무슨 장점이야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교에서 교수가 강의할 때 모르는 것이 나오면 내가 공부를 더 해 와야지 하고 생각하지 그게 뭐냐고 직접 물어보는 경우는 드물다. 외부 강사의 초빙되어 올 때 그런 분위기는 더욱 심해지는 게 보통이지만 이 곳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와서 강의를 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아무리 초보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서슴없이 질문하고 그 자리에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한다. 다음으로 넘기지 않는다. 다른 사람 생각해서 침묵하지 않는다. 강사와 학생간은 화기애애하면서도 긴장이 있다. 온갖 권위에 눌려서 침묵을 지키는 한국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고 진취적인 모습임에 틀림없다.

 

이스라엘에서도 요즘은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에 대한 인기가 단연 최고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대인들의 독서량은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받으며, 토론 문화도 활성화되어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일지라도 서로 생각이 맞지 않으면 소리 높여 자기 주장을 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의 대화를 뜻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채로 듣고 있으면 저런 버릇없는 자식, 저런 참을성 없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훈련이고 문화인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가정교육 탓인지 유아원에 다니는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도 자기의 것을 주장하는데 서슴이 없다. 일본이나 한국에서처럼 무조건 상대방이 원하면 양보해야 한다고 가르치다간 유아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외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쿄코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곳에서 영원히 살 게 아니고 곧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니 자칫 버릇없는 녀석으로 오해 받기 쉬운 유대인들의 성격을 그대로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이렇게 성미 급하게 소리 높이지 않고도 자유롭고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다. 아니, 그보다도 여기 사는 동안 긍정적인 내용은 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성급히 목소리를 높이는 나쁜 버릇에만 물든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더 급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