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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아내가 쓴 이스라엘 6-7 + 1

by 격암(강국진) 2010. 2. 18.

예루 살렘으로부터의 편지 6

 

모두가 즐기는 가장 축제, 프림

 

겨울이 끝나 날씨가 좀 따뜻해지는가 했는데 바로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군요, 이 곳은. 사막 지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실감하고 있답니다.

.

3월초가 되자 어딘지 도시가 살짝 들뜨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의 수도 늘어나고 색깔도 화려하고... 그러나 뭘 모르는 우리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아줌마 쿄코(일본 사람이에요)가 곧 축제가 있는데 예나 의상을 준비했냐고 묻더군요. 이제 겨우 17개월인 예나에게 무슨 축제 의상? 아줌마의 말인즉은 이제 곧 프림이라는 축제가 시작되는데 그 때 유아원에서 아이들이 축제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괜찮다면 자기 아이가 작년에 입었던 옷을 빌려 주겠다더군요. 정말 고마운 이웃이지요?

 

그렇게 얻은 분홍색 발레복이 예나의 축제 의상이었고, 우리는 커다란 방울이 흔들거리는 분홍색 머리띠를 사서 코디를 완성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분홍색 발레복을 입고 하얀 타이즈를 신고, 머리에 흔들거리는 방울을 단 예나는 불편한지 찡얼거리기만 하더군요. --;

 

굉장한 행사를 기대했던 나는 안 하던 화장을 하고 평소보다 훨씬 옷차림에 신경을 써서 유아원에 갔는데, 거긴 다른 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이 입가에 음식을 묻힌 채 겅중겅중 뛰어 다니고 있었어요. 물론 다른 엄마나 아빠들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차림새였구요.(하지만 축제 전야제나 파티에서는 어른들도 간단한 분장 정도는 한다고 해요.) 좀 어색하더군요. 아이들이 너무 어려 특별한 행사는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옷을 입고 와서 사진 한 장씩 찍는 게 다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거예요. 차려 입은 내 모습을 킥킥 웃으며 보던 남편의 눈길... 이런 게 이방인의 비애겠지요, 호호...

 

그러나 조금 더 큰 아이들이 다니는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는 마치 학예 발표회처럼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엄마들은 비디오나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해요. 학교 행사 때도 부모들이 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또 작은 선물도 주는데 이런 걸 보면 이 축제가 어린이날 대용인 것 같아요.

 

여하튼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 프림은 알고 보니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 중에 하나라더군요. 그 유래는 역시 역사적인 데 있었구요. 옛날 페르시아의 왕 아쉬베루스(Ahashverus; 어떻게 읽는지 잘 모르겠어요, 죄송...)가 자기가 다스리고 있는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몰살시키려고 하자 왕비였던 에스더가 설득하여 재앙을 막았다고 해요. 성경에 에스더 서라고 있지요? 아마 거기 이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유대인을 모두 죽이라고 사주한 사람은 하만이라는 사람과 그 아들인데요, 그들은 유대인을 몰살시킬 날짜를 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대요. 그 제비뽑기 이름이 프림이었다는군요. 그렇게 날짜까지 잡았지만 에스더와 모데카이(Mordechai)라는 사람의 지혜로 계획은 무산되고, 오히려 그들이 사형당했다는 게 이야기의 대충이랍니다.

 

재미있는 것은 텔아비브나 다른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올해의 경우 320(유대력도 음력이어서 해마다 날짜가 바뀐답니다)에 프림 행사가 있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그보다 하루 더 지나서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날짜가 다른 건 에스더 서에 성벽에 둘러싸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성벽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기념하는 축제일이 서로 다르게 적혀 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성벽이 있는 예루살렘의 축제일이 다른 곳보다 하루 늦은 거죠. 성경의 힘, 정말 대단하죠? 종교가 얼마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나가 대해 저는 다시 한 번 놀랐어요.

 

하지만 이렇게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축제이지만 아이들이 입은 의상은 에스더나 모데카이 하고는 거리가 멀더군요. 제일 인기는 텔레토비가 아니었나 싶어요. 파워레인저, 슈퍼맨, 동물 복장, 공주 차림, 뭐 이런 게 다였거든요. 아이들이야 뭐, 의미보다는 재밌는 게 최고니까 그렇겠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이렇게 명절을 정말로 즐기며 보낼 수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 나라 명절은 좋기도 하지만 좀 어렵기도 하잖아요. 우리도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물리친 기념으로 가장무도회 한번 열어보면 어떨까요?

 

샬롬, 아기고양이야!

 

 

~!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삼키고 있다. 커튼으로 가는 손길이 자못 떨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조바심에는 아랑곳없이 조그맣게 열려진 차창을 통해 그 작고 검은 몸뚱아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낼름 내 시야로 뛰어 들어온다. 주차장 한 귀퉁이 커다란 올리브 나무 아래 바로 그 자리에 어제 그 모습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갑자기 마구 방망이질치는 심장을 누르며 얼른 커튼을 내리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 어쩌면 좋아.

 

새까맣고 조그마한 아기고양이가 저 자리에 누워 있은 지 꼬박 이틀이 지났다. 첨엔 나무 그늘에서 자나 했지만 예민한 고양이가 사람 인기척이 뻔한 자리에 네 다리를 펴고 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처음 본 그 때부터 혹시나 고양이가 일어나서 가지 않았을까 하며 나는 창 밖을 수도 없이 내다보고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게 이미 너무나 명백해졌는데도 말이다. 아직 어린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사실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길거리를 헤매며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도둑고양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겁먹고 적의 어린 시선은 웬지 낯설고 무섭기만 해서 "야옹아~" 하며 반기는 아이를 연신 끌어당기기 일쑤다. 새벽녘에 아이의 우유를 가지러 부엌에 들어갔다가 불 켜진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고양이와 눈이라도 마주 치면 괜스레 몸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봄, 경탄과 기쁨으로 그네들을 만나게 되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조심조심 골목길을 운전해 들어오는데 대여섯 마리의 아기고양이들이 길가에서 놀다가 화다닥 옆 화단에서 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직 털도 제대로 안 난 새끼들이었다. 서둘러 차를 집 앞에 세우고는 아이랑 같이 아기고양이들을 보러 다시 길가로 달려갔다.

 

검둥이, 줄무늬, 얼룩이, 귀와 꼬리만 색깔이 다른 녀석... 한 형제일텐데 색깔도 얼룩무늬도 가지가지였다. 우리가 다가가자 단박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풀숲에 뛰어들어가 숨기도 하고 고개를 쏙 내밀고 자기들이야말로 신기하다는 듯 우리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미처 채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뻗어보기도 하고 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생명은 이렇게 신기한 것이구나. 쓰레기장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천덕꾸러기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는구나. 알 수 없는 감동이,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기쁨이 가슴 속에서 뽀글뽀글 굴러다니는 듯했다. 아이 역시 고양이를 바로 코앞에서 보고 있는 게 신기한지 연방 꺄르륵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몇 개월, 조금씩 자라는 아기고양이들을 놀이터 구석에서 골목 어귀에서 나무 그늘 밑에서 만나는 게 생활 속의 작은 기쁨이 되어 왔다. 좀더 날렵해지고 좀더 날카로워진 녀석들의 모습을 보며 괜히 내가 돌봐 주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저께 아침, 남편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던 나는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 자는 듯이 누운 까만 아기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자나 봐."

"저런 데서 자는 고양이가 어딨어?"

"찻길도 아닌데 왜..."

 

아침부터 죽은 고양이를 본 기분이 상쾌할 리 없는 남편은 서둘러 주차장을 떠났고, 나는 돌아올 무렵에는 제발 그 고양이가 그 자리에 없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나의 기원과는 상관없이 고양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나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않은 듯 눈과 입을 모두 앙다물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누군가 치워 주겠지. 무심코 이렇게 생각해 놓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돌아왔을 때 고양이가 그 자리에 없어 주길 바란 건 고양이가 살아있어 주길 원해서라기보다 그저 치우기 싫어서가 아니었어? 살아 있을 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들이라고 좋아하다가 이제 뻣뻣하고 흉측한 몸뚱아리로 남았다고 해서 마치 더러운 오물 보듯 피해 버리는구나...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이틀 동안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려도 엄마 고양이가 아닐까? 이렇듯 내버려두고 자기들과 편한 잠자리 속으로 쏙쏙 기어들어간 인간들에 대한 원망의 소리는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두려움이 밤새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마 지금쯤은 누군가가 치웠을 거야. 건물 청소하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 먹이 주던 아주머니도 계시잖아. 그래, 내일 아침에는 그 자리에 없을 거야. 틀림없어. 그렇게 믿으려고 애쓰며 겨우겨우 밤을 넘겼다.

 

그런데 아직도 아기고양이는 까만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처음 본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워 있다. 저 창 밖에...

 

나는 정수해 두었던 물을 따라 커피를 한 잔 끓였다. 떨리는 마음을 좀 진정시켜 보려는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서 가슴으로 머릿속으로 퍼져 나가자 조금쯤은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이 동네에 왔던 그 날이 생각났다. 꼬불꼬불한 언덕길, 정성껏 가꾼 정원들과 작은 놀이터... 그 뒤로 일 년, 낯설고 물설은 이 이국땅에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힘겹게 자리를 잡아왔다. 물가는 너무나 비싸고, 엄격한 종교적 제한은 낯설기만 하고, 메마르고 척박한 날씨는 우리를 너무 쉽게 지치게 했다.

 

해발 800m나 되는 높은 곳에 자리잡은 성지 예루살렘은 종교인이 아닌 우리가 뿌리내리기에는 너무 푸석푸석한 곳이었다. 그러나 일 년. 그 사이에 단골 슈퍼마켓도 생기고 급한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이웃도 생겼다. 이제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거리 이름을 댈 수 있는 수준이니 작으나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셈이다.

 

그렇지만 나의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은 아직도 일 년 전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대학 주변이라 사람들의 사회적 수준이 높은 편이어서 의사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고, 동양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차별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

 

매일 오후 다섯 시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서 한 시간쯤 놀다 들어온다. 그 시간이면 뜨거웠던 태양도 한풀 꺾이고 유아원에서 돌아온 아이들도 제각기 엄마들을 데리고 놀러 나와서 하루종일 텅 비어있던 놀이터가 가장 활기를 띤다. 하루종일 남편의 전화 몇 통화 외에는 입을 열 일조차 없는 나로서는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어서 놀이터에 갈 때면 내 마음도 아이처럼 살짝 달뜨곤 한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만나는 엄마들은 아이의 나이나 상태 등을 묻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는 자기네들끼리 자기 나라 말로 수다를 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걸을 줄 아는 아이 중에서는 가장 어린 데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놀아 주느라 더더군다나 그 대화들에 끼여들 수가 없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의 대화 모습을 지켜 보다 아이를 따라 뛰어다니다 한 시간 남짓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 몸도 마음도 다 지쳐 버린다. 설명할 수 없는 초라한 기분과 함께...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혹시 나를 이방인으로 남게 만든 건 나 자신이 아닐까? 입 속에 머금고 있던 커피 한 모금이 쏴한 기운을 머릿속 깊은 곳까지 쏘아 올렸다. 만약에 여기가 한국이고 내 집 앞에 죽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면 지금처럼 이틀이 넘도록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이 곳에 와서 일 년이 넘도록 손님처럼 굴고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아닐까? 무겁게 눌려져 있던 가슴이 갑자기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흘째 저 아기고양이가 저 차가운 바닥에 누워서, 저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누워서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였구나.

 

아직 커피 잔에는 커피가 반이나 남아 있지만 나는 이제 그만 일어서야겠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이 손으로 어서 고양이를 묻어 줘야지. 낯선 땅에서 만난 좋은 친구이며 고마운 조언자인 아기고양이야, 이제 그만 안녕! 아니 샬롬!

 

 

예루살렘으로 부터의 편지 7

 

빵 그리운 일주일 페삭

 

오늘에야 드디어 페삭이 끝났어요, 흐이유~

무슨 나라가 명절이다 하면 기본이 일주일인지 이방인인 우리로서는 지내기가 참 쉽지 않네요. 지난 목요일(20)부터 시작되었던 페삭이 어제 26일 해가 지면서 끝났답니다. 이 명절이 다른 휴일보다 유난이 길게 느껴졌던 것은 다름아니라 발효균이 들어간 빵을 못 먹는 때이기 때문이에요. 한 마디로 어딜 가도 빵을 볼 수 없다는 거죠. 원래 우리 주식은 쌀이고 빵은 어쩌다 가끔 먹는 거지만 빵을 전혀 구할 수 없다니까 갑자기 빵이 왜 그렇게 먹고 싶은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야릇하더군요.

 

그런데 빵이 주식인 사람들이 일주일이나 빵을 못 먹으면 뭘로 연명을 할까요? 마츠오트라는 네모나고 납작한 과자 같은 걸 빵 대신 먹는데요, 커다란 참크래커 같이 생겼어요. 아무 맛도 없는 그걸 우리 예나는 겚齋?라고 하며 좋아하더군요. 우린 명절이 되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잘 먹는데, 여긴 정말 까까 같은 걸 먹으며 명절을 보낸다니 문화라는 게 정말 차이가 많이 나지요?

 

페삭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에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지요. 페삭이 시작되기 전 슈퍼마켓은 사뭇 전쟁터와 같답니다. 슈퍼마켓에서 이용할 수 있는 커다란 트레일러에 산처럼 물건을 쌓아놓고 계산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은 정말 대단해요. 우리처럼 어슬렁어슬렁 슈퍼에 늦게 들른 사람은 물건이 없어서 못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첫날과 마지막날은 원래 휴일이라고 하지만 그 중간에는 반나절이라도 문을 여는데 왜 그렇게 장을 많이 보나 했더니 명절에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더군요.

 

우리 가족도 한 이스라엘 가정에 초대를 받아 페삭의 행사를 조금은 맛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식탁을 앞에 두고 시작된 그 행사는 무지무지 길어서 식사를 다 하고 나니 3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더군요.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그건 아주 약과고, 새벽 1시 반에 끝났다는 집도 있었어요. 그 저녁 식사 행사를 위한 책이 있는데 그걸 거의 다 읽고 노래 부르며,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데, 정말 배가 고프더군요. 그렇게 배가 고프게 한 다음, 아주 많이 먹는 게 전통이래요. 행사 도중에는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가 겳윱쳄 왜 다른 날과 다른가궭 대해 묻는 노래도 부르고, 마츠오트를 숨겨 둔 다음, 아이들에게 그걸 찾아오게 하기도 한답니다. 흥미로운 행사이긴 했지만 저는 예나가 자꾸 찡얼거리는 통에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어요.

 

그 집 여주인인 이레느의 말로는 페삭을 보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지 않는 게 더 나았겠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 긴 하루 저녁 식사 때문만은 아니고요, 그 주된 원인은 아이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집안에 아이들이 4, 5명씩 되는데 모두 학교나 유아원에 가지 않고 우당탕거리니 보통 정신 없는 게 아니라더군요. 학교는 3주씩 쉰다니 거의 방학에 가깝지 뭐예요. 여긴 여름 방학은 길지만 겨울 방학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이렇게 명절이 있을 때 조금씩 나누어 쉬는 것 같아요.

 

여하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종교의 힘은 대단해서 아랍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도 빵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맥도널드의 햄버거도 빵 아닌 다른 걸 얹어 만들었더군요. 페삭의 특별 메뉴라나요...

어쨌든 페삭은 끝나고 어젯밤부터 슈퍼에 다시 바케트 빵이 놓여져 있더군요.(여긴 모든 명절이 해질녁에 시작되서 해질녁에 끝나니 사실은 어젯밤부터 명절이 끝난 셈이지요.) 빵아, 너 본 지 오래다 하며 얼른 하나 집어 왔어요. 지금부터 명절이 끝나자마자 빵을 만들어 놓은 놀라운 순발력에 감사하며 치즈를 발라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럼 이만 빠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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