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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미국 이야기 2 : 미국과 자유의 신화

by 격암(강국진) 2010. 2. 19.

자유의 신화 


빅터 프란클은 유태인 학살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라는 책에서 그는 자신의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스스로가 만들어낸 로고세라피라는 정신치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에 따르면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내부적 공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내부적 공허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따라하거나 다른 사람의?기대에 따라 산다.?그들은 사는 것이 지루해 견딜수가 없으며 종종 휴일처럼 자유시간이 많을때 더욱 우울해 진다. 그들은 중독에 빠지거나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 권력이나 돈을 탐하고 성적인 자극을 추구한다.


빅터 프란클은 아내를 사별하고 그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당신이 겪는 그 고통을 아내가 겪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고통은 무의미한게 아니라 당신의 죽은 아내를 위해 겪는 것이다. 그의 고통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을 가지게 된다.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고통으로서 존재하기를 멈춘다. 빅터 프란클은 니체를 인용하면서 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힘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우리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객관적 상황이상으로 행복과 정신적 안정에 기여하는 것 같다.  


한 집단이나 한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나라도 존재의 의미가 필요하다. 그럴때 국민은 행복하고 어려움도 잘 이겨나갈수가 있는거 아닐까. 그 사회의 존재 의미를 주는 생각이나 이야기는 종종 이데올로기나 신화라고 불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되어 사람들에게 말해진다. 


레슬리 스티븐슨은 인간본성에 대한 일곱가지이론에서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실수와 처방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일단 인간관과 세계관으로 시작한다. 즉 세상은 이러저러한 곳인데 인간은 이러저러한 존재다라는 설명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의 실패나 실수를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데올로기란 우리는 이러저러한 사람인데 이러저러한 실수를 했다. 따라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뭔가를 잘못했고 그것을 고쳐서 더 바람직한 미래로 나가려고 한다. 유교나 공산주의, 민족주의도 다 이런 구조를 가지고 정리해 볼 수있다. 모두 어떤 인간의 실수와 실패를 논하고 그 처방을 말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미국은 자유와 평등으로 시작했고 자유와 평등을 믿으며 그것으로 번영할 것이라고 믿는 나라다. 미국의 신문 잡지를 보면 자유를 퍼뜨리자는둥,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둥, 자유를 성취한 위대한 나라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볼수가 있다.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다. 그런데 이세상에는 자유와 평화를 해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세상은 온전히 행복한 세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시민들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세상 전체에 퍼뜨려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만들어 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은 미국에 본국과는 다른 차별적인 법을 적용하고 세금을 거두고 있었다. 홍차를 전매하고 비싼 세금을 매겼으며 미국의 농부들은 부당한 거래조건 때문에 영국과 거래를 할수록 돈을 손해 보는 일을 겪고 있었다. 미국과의 독립전쟁을 이끌었으며 후일 미국의 초대대통령이 되었던 조지 워싱턴도 한때 엽초를 재배하면서 영국과의 거래가 미국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를 몸소 겪었던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식민지와 본국과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고 결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패트릭 핸리는 독립전쟁에 돌입하기 직전 버지니아주의 협의회에 참석하여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여기서의 자유란 바로 영국으로부터의 자유였던 것이다. 


1776년 7월 4일 독립전쟁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의 대륙의회는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쓴 미국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이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만들어졌으며 신으로부터 빼앗을 수 없는 권리들을 받았습니다. 그것들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이 서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되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때 마다 인용된다. 미국이란 바로 평등과 자유의 나라인 것이다. 미국은 5만명이 목숨을 잃고 영국과 6년간 전쟁을 한 끝에 독립을 쟁취했다. 당연하게도 미국내부에도 영국의 지배를 선호하거나 의리 때문에 영국을 배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분열하여 싸웠고 승리한 것은 자유와 평등을 외친 독립군이었다. 


이 독립선언문이 모든 인간은 원하면 독립된 국가를 만들 자유가 있다고 말한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라고 말한 것은 중요하다. 만약 그랬다면 미국은 끝없이 분열했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에서 자유는 독립의 근거였지만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일 시키는 구심력과 강제력의 근거이기도 했다. 


미국은 태생부터 복잡한 나라였다. 흑인과 인디언 그리고 많은 이민자가 있었고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멕스코등 다양한 나라가 지배하던 땅을 병합하면서 커졌기 때문이다. 나라도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주들이 연합하는 연방이었다. 미국에서 여러 가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처음부터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개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합의에 의해 만들어 진 법에 의한 법치를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자기 평생의 업적중의 하나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버지니아의 법률을 저술 한 것을 꼽았으며 이를 자기 무덤에 새겨줄 것을 부탁했다. 나머지 두 개는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쓴 것과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미국이 탄생하면서 말해진 자유와 평등이란 단어들은 미국 역사에서 고비마다 등장하여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1861년 미국은 상공업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북부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가 노예제도의 폐지문제로 갈라져서 남북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미국은 자유의 나라고 연방들이 모인 나라다. 그러니까 노예제도를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 주의 자유가 아닐까? 실제로 남부의 주들은 노예제도의 유지나 폐지는 각주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링컨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남의 자유를 빼앗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남부의 주들은 연방의 탈퇴를 선언하고 링컨이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링컨 대통령은 각 주가 연방을 탈퇴할 자유가 없다고 말하고 곧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1863년의 게티스버그 전투는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쟁이다. 17만명이 싸우고 약 5만명이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게티스버그 전투후 전사자들을 위해 국립묘지를 만드는 것이 결정되었다. 1863년까지 남북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25만명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전쟁에 지쳤고 링컨의 입장은 좋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지에 대해 다시 정리해 줄 필요가 있었다. 아브라함 링컨은 1863년에 게티스버그 연설을 한다. 그 연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87년전 우리의 아버지들은 이 땅 위에 자유의 이상 속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만들어 졌다는 생각에 바쳐진 새로운 나라를 건설 했습니다.’. 게티스버그 연설은 남북전쟁을 시민의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자유를 지키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이므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열 문장밖에 안되는 게티스버그 연설을 미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암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한 연설로 강조된다는 뜻이다. 실은 링컨이 게티스버그 연설을 했을 당시는 이 연설이 크게 대중을 움직이거나 신문방송에서 요란하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인기없는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그저 마지 못해 초청해준 연사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 연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졌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말해주는 연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끝나더라도 남부와 북부간에 원한을 가지거나 보복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1865년 4월 14일 남부군이 항복한지 얼마 후 그는 저격 당해 사망한다. 링컨의 영구차가 지나가는 길에는 최대 15만명까지의 사람들이 나와서 애도를 표하며 영구차를 따라 걸었다. 링컨은 시민의 자유를 외치고 그를 위해 죽은 대통령이다.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1963년 6월 11일 앨러바마 대학에서 주지사 조지 월래스가 학교의 복도를 막아섰다. 수업을 들으려는 두 흑인 학생들을 멈추게 하기위해 서다. 게티스버그 연설이 나온지 백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받고 있었다. 그날 저녁 전국의 티브이와 라디오는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방송한다. 여기서 케네디 대통령은 시민의 권리를 주장했다. 케네디는 곧 여성과 흑인에 대한 민권법안을 상정한다. 


1963년 8월 28일 흑인들을 위한 민권운동가들은 워싱톤에 모여 직장과 자유를 위한 행진을 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링컨기념관 앞에서 미국 민권운동의 절정을 이루는 나는 꿈이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다. 이 연설에서 그는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한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나라가 일어나 이 나라가 만들어진 본래의 뜻에 따라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만들어 졌다는 것은 자명하다 라는 것입니다.’ 타임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그 해의 인물로 뽑았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 당하고 온 세계가 놀란다. 그가 죽은 후 두 달 동안 들어온 애도의 전문은 80만통에 달한다고 한다. 1964년엔 그가 상정한 미국민권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했다. 이것은 미국 민권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이 해에는 킹목사가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1968년 3월 29일, 킹목사 역시 암살 당했다. 이 당시 전국 백 개 이상의 도시에서 이에 항의하는 폭동이 발생했다. 


미국에는 미정부가 기념하는 연방휴일이 총 11번이 있다. 그 중의 4개가 개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크리스마스, 컬럼버스의 날, 프레지던트의 날 그리고 마틴루터 킹 주니어의 날이다. 프레지던트데이는 본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생일에서 시작된 날이었으나 날짜가 바뀌면서 미국역대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바뀌었다. 대통령을 제외하면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연방휴일로 기념되고 있는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유일하다. 


미국에서 자유라는 말의 뒤에는 피의 역사가 있다. 미국의 자유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피를 흘리면서 선택한 가치다. 자유라는 이상을 위해 흘린 피는 미국의 정체성을 보다 확고히 만들었다. 물론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더더욱 그 이상을 추구한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자유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고 일종의 사회와 문명평가의 척도가 되고 있다. 즉 자유가 없는 사회나 문명은 미개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는 왜 좋은가. 그런 것들은 애초부터 당연한 것 인가 아니면 자유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한 것인가. 


자유에 대한 주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유의 사회적 유용성을 제외하고 말하기는어려울 것이다. 즉 개인의 자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유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유란 소중한 것이지만 사회에 피해를 입힌다고 하면 자유를 주장하는 논리는 약화 될 것이다. 


존 베리는 사상과 자유의 역사라는 책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때 인간의 지식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발전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베리가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를 따른다고 말하면서 주장하는 것으로 사상의 자유를 서구가 발전한 역사를 가지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5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천년동안 유럽은 강력한 기독교의 권위주의 아래서 살았다. 자유로운 주장을 할 수 있는 자유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주류가 되기 이전에는 종교적 관용과 자유를 주장하였으나 자신이 권력을 가지게 되자 매우 강경해져서 세례를 받기 전에 죽은 아이는 지옥 불에서 고통 받는다고 가르쳤고 신학적 오류는 가장 큰 죄로 엄벌했다. 신앙적 믿음을 위협할 수 있는 지적 탐구는 모두 이단으로 죄악시 되고 위험하다고 판정 받았다. 중세시대에는 이슬람 쪽의 과학기술은 빨리 발전했던 반면 서구에서는 지식발전이 뒤쳐지게 된다. 베리는 서구의 중세를 이성이 감옥에 간 시간으로 묘사했다. 권위주의는 이성의 적이고 이성이 죽으면 발전도 없다. 


중세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지식이 쌓이면서 사람들이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신이 깊어짐에 따라 끝이 난다. 인간의 이성이 인간을 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근세 유럽 철학자들의 중심문제가 되었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우리는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인간의 윤리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유럽을 전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지식의 확장에 의해 인간이 발전한다고 하는 믿음은 아주 확고해졌다. 더불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 역시 확고해 진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가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에 의해 만들어 졌을지 모르나 독립적으로 혼자 생각하여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퍼졌다. 


이 논리를 살피면 결국 자유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이성을 믿고 선의를 믿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고 자유로울 때 사악하게 행동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사악하다면 인간들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  그들은 그 자유를 가지고 혼란만 만들고 피해만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패거리가 생겨서 서로 싸우지만 상대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없어서 상대들을 미친 사람이나 어린애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상황이라면 자유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명하다. 서로 믿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유로워 진다.   


사람들이 서로를 못 믿고 우리 사회는 불합리하다라고 생각하면 사회적 자유는 사라진다. 독재나 시민권리의 억압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득세하게 된다. 일반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정보를 대중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은 자기에게 좋은 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순한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 되어야 하고 불온한 서적은 못 읽게 한다. 대중이 멍청하다고 믿을 때 그들에게 자유란 과분한 것이며 사회 공공이익에 대해 위협이 된다. 


가끔 보면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를 외치지만 대중은 무지하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자기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입으로 자유나 민주주의를 외치냐 안 외치냐가 아니라 사람들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이다. 자유의 가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믿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행동은 이 믿음의 수준에서 결정 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자유를 강조하는 것도 반드시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개개인들이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사회의 관습과 도덕이 개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 하다보면 부모 자식간의 인간관계도 좀 허술해 지기 쉽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에 대한 구속을 모두 제거하면 남는 게 얼마나 될까. 자유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말수도 있다. 


개인의 이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개인주의를 흥하게 한다. 그런 사회는 약육강식으로 갈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평등과 자유를 말하는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이 진짜로 평등한 것 같지는 않다. 흑인이야 숫자가 적다고 해도 여자 정치인이나 여성 CEO 여자 교수의 수는 한국보다 특별히 더 많지도 않게 느껴진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정도에 비하면 왠지 현실은 좀 초라한 것이 아닐까.  


미국사회가 스스로가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사회적 통합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확신도 전만큼 강력한지 의구심이 든다. 카테리나 태풍이 뉴올리언즈를 덮치자 도시는 약탈과 범죄가 넘치는 무법 천지로 변해 버렸다. 적어도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위기가 닥치자 미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도 들어나게 되었다. 마이애미에는 엄청난 수의 남미 이민자가 산다. 스페인어가 주류언어가 되고 영어를 쓰는 백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섞여 살지 못하는 것이다. 쌍둥이 건물테러사건 이후엔 애국법에 따라 시민의 자유를 더더욱 제한하게 되었다. 미국 시민들이 가지는 미국사회에 대한 자신감은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의 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정복자 백인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 안에는 인디언이 없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미국대륙에는 7500만의 인디언이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이주민들은 인디언들을 거듭차별하고 거듭 거짓된 약속을 했다. 이 땅만을 가지겠다. 이 땅만을 가지겠다. 그렇게 거듭 깨지는 약속 속에서 인디언은 자신들의 땅을 잃었다. 그리고 결국 ‘개척자들’은 미국대륙 전체를 먹어버렸으며 대부분의 인디언이 병과 학살과 굶주림으로 죽었다. 


미국이 말하는 인간평등에는 인디언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인디언은 타인이 되고 결국 우리를 죽이는 적이 되어 우리는 공존을 원하지만 결국 우리가 살자면 그들을 죽일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이야기와 놀랍게 비슷하다. 인디언의 입장에서보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믿었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늘날에도 그렇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미국시민의 목숨과 아프칸 시민의 목숨은 정말로 평등하게 여겨지는가. 미국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는 아랍사람도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 이래서 미국의 자유의 이야기는 신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신화가 미국에서 강조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은 미국의 꿈이고 이상향이다. 이런 과거의 역사를 폭로하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결국 인간의 자유와 평등개념에 철저해 지려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강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더 훌룡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에는 자유라는 이름의 종교가 있다. 종교적 자유가 있는 미국이지만 이 한가지 종교는 예외다. 미국 대학은 자유의 교회당으로 자유의 가치를 역설한다. 방송은 이 자유의 복음을 더 널리 퍼뜨린다. 미국인들은 미국사회는 때로 무질서해 보이지만 결국은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합리적인 나라라는 말을 종교적 교리처럼 외우고 다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이상을 위해 순교했으며 자유교의 입장에서 이교도들은 야만인이라는 이름으로 배척당하고 심지어 공격 당한다. 미국이 911이후 아프칸 전쟁을 시작할 때 각 일간지들이 말한 것도 아프칸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자유는 강력하고 부유한 미국을 보장해 준다. 미국의 자유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번성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었던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하여금 인류문화발전을 선도할 수 있게 했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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