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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이스라엘 이야기 6 : 우리는 왜 김구공항이 없는가.

by 격암(강국진) 2010. 2. 24.

우리는 왜 김구 공항이 없을까.

 

예루살렘 시내에는 벤 예후다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나 여러 가지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차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중앙 쪽에 탁자나 벤치가 있는 곳도 있다. 여기서는 가끔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한다. 지나가다 재수가 좋으면 바이올린 음악을 한 자락 듣게 될 수도 있다. 벤야후다 거리를 채운 이스라엘 사람들의 옷차림은 대개 현대식이다. 허리를 들어낸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도 있다. 이스라엘을 엄숙한 종교국가로 잘못아는 사람도 있는데 미국이나 한국과 다를게 없다.

 

의자에 앉아 떠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중동지방 특유의 쾌활함과 치열함이 느껴진다. 조용히 말하는 법이 없다. 팔다리가 움직이고 고개를 움직이고 어조는 한국사람이 느끼기에는 좀 과장스럽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언어는 히브리어다. 그리고 벤 예후다는 히브리어를 현대에 소리가 있는 언어로 되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전세계 유태인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엽에 걸쳐 부활한 언어다. 그 전에는 종이 위에만 존재하던 언어가 일상의 소리나는 언어로 부활한 것이다. 이제는 수백만의 이스라엘사람들이 소리내어 히브리어를 말한다.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유태인들은 전세계에 천삼백만 정도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 인구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아직 자기 나라도 없던 시절에 자신들을 위한 언어를 부활시키고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뉴욕에 가보면 유태인들이 15억이 된다는 중국인들보다도 더욱 존재감있게 느껴진다. 미디어에서는 항상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잘 모르는 사람은 세계에 유태인이 몇 억은 있는 줄 알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유태인들의 활동은 눈에 띤다. 아인쉬타인, 프로이트, 트로츠키, 키신저, 프루스트, 샤갈, 로스차일드, 토머스 만, 아서 밀러, 하이네, 카프카, 멘델스존, 그린스펀,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마이클 델, 스티븐 스필버그, 캘빈 클라인이 유태인이다. 유태인은 이제까지 수상된 노벨상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유태인들은 대단한 나라를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2007년 기준으로 국민평균소득 33300불을 기록한 부자나라다. 이스라엘은 미국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벤처기업이 탄생하는 나라이며 북미국가를 제외하면 미국 나스닥 증시에 가장 많은 회사를 상장시킨 나라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의 히브루 대학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대학과 연구소는 세계적 명문으로 꼽힌다. 이스라엘은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인구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과학논문을 출판하는 나라다.

 

벤예후다 거리는 바로 그런 대단한 유태인들이 쓰는 언어인 히브리어를 부활 시킨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거리다. 그러나 이 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유태인이 대단해서 히브리어를 부활 시킨 게 아니고 언어를 소중히 하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유태인이라서 대단해 진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스라엘 땅에 관련된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그것은 필리스틴이라는 단어다. 기원전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는 필리스틴이라 불리는 민족이 있었고 그들도 독자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좀 남아있다. 한때 유태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그들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문서를 남기지 못했다. 그들은 정복당하고 억압 받는가운데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지금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말하는 민족의 개념을 형성하지 않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팔레스타인국가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유태인 시오니즘보다도 늦게 나온 것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강력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채 수많은 인종을 받아들이며 그 땅에서 살아온 것이다. 필리스틴의 피도 이 땅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령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남기지도 못했고 그들의 언어를 지키지도 못했다. 전세계가 유태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영어로 필리스틴이란 말은 속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가 이렇듯 모욕적 뜻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 단어의 명예를 지킬 주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명예를 지킬 사람이 없으니 민족도 사라져 버렸다. 땅도 잃어버렸다. 이것은 히브리어를 되살린 유태인과 크게 대조된다.

 

유태인들도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역사 속에서 잊혀질수 도 있었지 않을까 싶다. 유태인들은 거의 2천년동안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라고 비난 받고 박해 받았던 사람들이다. 유태인에 대한 박해는 추방과 혈통에 대한 비난, 대량학살과 강제 개종의 형태로 이뤄졌다. 특히 십자군 전쟁때는 그 박해가 심해서 독일에 있던 모든 유태인들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오스트리아에서 유태인들은 추방당했다. 14세기부터 유럽에는 흑사병이 퍼진다.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3분의 1내지 3분의 2를 죽인 병이다.  유태인들은 우물에 독을 퍼뜨려 이 병을 퍼뜨린 사람들로 비난 받았고 유태인 마을들은 폭도에 의해 파괴되었다. 1870년대까지 중부 이탈리아에 있었던 교황령에서는 유태인들은 게토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만 살수 있었다. 유태인들에게는 세금이 따로 부과되고 개종을 강요당했다. 종교적 이유로 인한 박해는 현대로 와서 줄어들었지만 세계2차대전 때 독일에서는 다시 한번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일어난다. 1941년에서 1945년까지의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6백만명의 유태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말해진다.  

 

역사에 기록된 유태인의 박해를 보면 그 박해를 이겨낸 유태인들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진정 감탄해야 하는 것은 문화와 언어의 힘이 아닐까.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불리는 기독교, 유대교, 이스람교 모두는 유태인에게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이렇지 않았더라면 과연 2천년의 박해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들의 언어가 이어지다가 부활하고 세계를 호령하는 유태인이 될 수 있었을까. 유태인들을 끝끝내 지켜낸 유태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분명 그 문화적 종교적 힘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에는 사람의 이름을 사방에 붙이는 일이 아주 많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이스라엘 국제 공항의 이름도 벤 구리온 공항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연구소이름도 화학자 와이즈만의 이름을 딴 와이즈만 연구소다. 벤 구리온은 전쟁의 영웅이며 이스라엘의 첫 번째 수상으로 그를 나에게 소개해준 목사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김구로 불렀다.

 

이름을 소중히 하는 것은 유태인 가족에서도 존재하는 일이다. 유태인들의 이름은 대개 성경에서 나온 이름들이긴 하지만 친족의 이름을 아이들이 물려받는 것이 전통이다. 할아버지나 삼촌의 이름을 아이들은 물려받는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이름의 명예를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 명예를 지키자는 것이다. 이름 하나의 뒤에는 항상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지키자는 것이다. 거리의 이름이 꼭 누군가의 이름일 필요는 없지만 역사적 인물이 거리에 즐비하다면 이름을 외우다 보면 역사를 저절로 외우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공항을 김구 공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김구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은근히 김구는 견제 당하는 느낌이다. 그 밖에도 몇몇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이 머리에 스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잘 기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뭘 빼놓으면 이건 한국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라가 되는가. 우리나라에는 정체성의 위기가 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섞여서 싸움을 벌일뿐 명예나 이름이 존중되질 못한다. 뭘 위한 명예고 이름인지 가치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이름이 없고 이야기가 없다. 있는 이야기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다보면 역사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한국이 뭔지가 희미해진다. 유태인과 필리스틴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다. 나라와 민족을 지켜내는 힘은 이야기의 힘이다. 돈과 무력이 아니다. 그 사회구성원이 자기가 누군지를 알고 기록해야 한다. 뭐가 한국인에게 소중한 가치인지 확실하게 합의하고 기록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분란이 적다. 그래야 생명력이 보존된다.

 

공동체를 지키는 정신과 가치에 대한 싸움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생생한 것이다. 벤예후다 거리에서 자파거리를 따라 중앙버스역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하네 예후다 시장을 만난다. 이 시장은 물고기며 과일등을 파는 재래 시장으로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비슷하다. 과자를 쌓아놓은 곳이 있는가 하면 싸구려 장난감을 파는 곳이 있다. 재래시장의 활기찬 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힘이 나는 것 같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보여주는 장소중의 하나다. 예루살렘 사방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서는 1997년과 2002년에 팔레스타인 자살폭탄 테러가 있어서 각각 16명과 7명이 죽고 수백 명씩이 다쳤다.

 

1997년에 죽은 16명이라는 숫자는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16명의 이름들을 보면 그 숫자가 좀더 크게 다가 온다. 명단을 살펴보면 그 절반은 60이 넘은 노인으로 92살이 되신 분도 보인다. 그 중엔 15살 먹은 그리샤 라는 소년의 이름도 있다. 죽은 사람은 16명이지만 다친 사람은 178명이나 된다.

 

이런 좁다란 재래시장에서 폭탄이 터졌으니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 중에 노인이 절반이나 되는 것은 아마도 그 아비규환 속에서 힘이 없어 희생당한 탓일 것이다. 폭탄이 터지고 먼지가 피어 올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뛰어 도망가고 피 흘리는 사람, 깔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다. 여자들은 두려워 울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가족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며 고함소리가 이 시장을 가득 메웠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 난장판을 상상할 수 있다. 그 참담한 비극은 그만큼의 원한과 불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런 테러는 이스라엘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유태인과 아랍인이라는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이 충돌한다. 정체성은 역사속에서 유령처럼나타나서 온갖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정체성은 사람이 죽어도 지켜야 하는 문제다. 정체성이 없어지면 사회적 구심력이 없어지고 집단의 힘이 약화된다. 그럼 다른 강한 정체성을 지닌 사회에 의해 잡아 먹히고 만다. 이등국민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믿어 주질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도 사라지고 만다. 일제시대를 겪어서 한국은 이런일을 더 잘알고 있지 않은가?

 

벤예후다 거리쪽에서 자파도로를 따라 옛 예루살렘인 올드시티지역으로 걸으면 자이온 광장을  지난다. 여기서 나는 종종 한 무리의 총을 든 젊은 군인을 보곤 했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된 군인들로 때로는 매우 어려 보이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징병제를 하는데 남녀가 모두 징병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직후 대부분 군대를 간다. 대학진학은 군복무 이후의 일이다. 이스라엘은 전쟁과 분쟁이 잦은 나라다. 아이를 군대에 보낸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한 군인과 이야기하게 되어 힘들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별로 힘들지 않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첫 번째 여자친구를 군대에서 주로 만든다는 말도 해준다. 남녀가 같이 입대하여 숙소생활을 하는데다가 군기가 그리 엄하지 않으니 그렇게 되나 보다. 힘들다고 말해도 될 텐데 굳이 즐겁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가 든든해 보인다. 군에 끌려가서 너무 억울하다는 식의 항변은 없다. 실전이 있어서 죽을지도 모르는 나라의 군대인데 말이다.

 

나는 이후 몇 명의 유태인 친구들에게 유태인 군대이야기를 짮게 들었다. 그들 중에 군복무가 너무 힘들었다고 과장해서 말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히려 어디서 들었는지 한국의 군복무는 힘들다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건낸다. 그러나 군복무가 진짜로 아무것도 아닐리가 없다. 방위나 공익근무를 하면서 아무리 육체적으로 쉬운 곳에서 군복무를 해도 한국 사람 중에 군복무한 것이 쉬웠고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스로 군복무를 빠졌거나 자식들 군복무를 면제시켜주는 권세있는 사람들 이야기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다. 국민들이 군복무를 자랑스러워 해야 올바른 사회가 아닐까.

 

쟈파거리를 따라 계속 걸으면 드디어 옛 예루살렘인 올드시티가 나온다. 길은  올드시티의 자퍄게이트나 다마스커스 게이트 앞으로 이어진다. 쟈파도로의 끝이다. 쟈파거리는 본래 영국이 이스라엘 지역을 통치하던 시대에 번성해져서 예루살렘에 통합된 것이다. 자파도로는 예루살렘과 쟈파를 잇기위한 도시외곽도로였다.

 

올드시티의 성벽은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이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11세기에도 이미 성벽이 잘 구축된 요새도시였다는 기록이 있다. 오랜 비바람을 견뎌낸 올드시티의 담벽은 굉장히 튼튼해 보인다. 유태인을 지켜온 이야기, 문화, 종교의 힘을 연상케 한다. 한 사회를 소중하게 만드는 가치는 그 전해져오는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이야기가 없고 역사가 없는 사람들은 흩어지고 무력해 진다. 유태인들을 보고 있으면 우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문화적 정체성의 성벽을 너무 푸대접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된다. 우린 어느새 중심이 없는 허깨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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