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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7 : 예루살렘의 올드시티와 다문화 사회

by 격암(강국진) 2010. 2. 24.

예루살렘의 올드씨티는 0.9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본래의 예루살렘이다. 0.9 평방미터라니 사각형으로 치면 한면이 1킬로인 사각형보다도 조금 작다는 이야기다. 1860년대까지는 예루살렘이라 하면 이곳을 말했다. 그러니 예루살렘은 본래 상당히 작은 지역이었던 셈이다. 올드시티에 대해 좀더 알게 되면 이곳이 정말 좁은 곳이라고 생각하거나 충분히 좁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올드씨티는 현재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장 작은 아르메니안 구역과 크리스찬구역, 유태인 구역 그리고 무슬림 구역이다. 이중에서 아르메니안 구역은 넷 중에서 가장 작다. 고작 500명의 아르메니아 인들이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은 이스라엘 전역을 따져도 3천명정도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역사는 만만치않다. 아르메니아인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95년경부터였다. 그후 아르메니아는 크리스찬 국가가 되었고 예루살렘은 아르메니아 인들이 순례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여기 살고 있는 500명의 아르메니안들은 크리스찬이지만 크리스찬 구역과는 독립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크리스찬은 대부분 아랍사람인데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해 가면서 아르메니아의 문화와 혈통을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드 씨티의 다마스커스 게이트안으로 들어서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은 좁은 베이지색 돌벽 사이로 죽 늘어선 가게들이다. 특정 종교에 속해있지 않은 나로서는 고도의 가게들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고 중요한 일이다. 거리에는 여기저기서 손발을 흔들고 고개를 저으며 흥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표정은 매우 과장되고 진지하다. 상대적으로 표정을 쓰는 일이 별로 없는 한국에서 온 내게는 어쩐지 우스꽝스러울 정도다. 내가 흥정을 할 때가 아니라면 말이다. 여기도 햇볕 때문에 차양이 어지럽게 쳐져 있다. 물건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사방에 눈에 띤다.

 

다마스커스 게이트는 크리스챤 구역과 무슬림구역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 문으로 들어서서 왼편에는 무슬림 구역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은 크리스찬 구역이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의 이야기가 있다. 제자의 배신으로 잡힌 예수는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힌다. 그리고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거듭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되어진다. 다른 이야기보다 훨씬 많이 이야기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예수의 고난을 잊지 말자? 배신자 유다를 잊지 말자?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빠질 수 없는 이 이야기의 절정은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은 크리스찬 종교의 핵심에 있는 이야기다. 기독교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이번 생에서만 희망이 되신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불쌍한 존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예수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영원히 사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부활을 보여 준 사람 이상의 존재다. 단순한 선지자나 성인이 아니다. 교회가 일요일에 예배를 가지는 이유는 예수가 일요일에 부활했기 때문이다. 부활절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중의 하나다. 예수의 탄생은 일년에 한번 축하 받지만 부활은 거듭거듭 축하 받는 셈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했던 곳이 골고다언덕이다. 그 골고다 언덕의 자리에는 지금 부활의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가 서 있다.  예수의 부활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고 부활의 장소가 여기 이므로 이 크리스찬 구역에 있는 교회는 크리스찬에게 가장 성스러운 성지가 되는 것이다.

 

무슬림 지역은 네 개의 지역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성지 알 아쿠사가 있다. 한국에는 그다지 없는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신자들이다. 이슬람의 핵심적 교리는 다섯개다. 무슬림은 유일신 알라를 믿으며 하루에 5번의 기도를 한다. 라마단의 한달 동안에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단식을 하는데 라마단이란 이슬람음력의 9월을 말한다. 단식을 할 수 없는 사람은 뒤로 미뤄도 되지만 단식을 하는 사람은 신을 명상하며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경건한 한달을 보내야 한다. 자선을 하는 것도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다.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은 수입의 일정부분을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이슬람의 포교를 돕기 위해 기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슬람의 신자는 성지메카로 최소한 평생에 한번은 순례를 해야 한다. 이슬람은 예수나 모세도 알라가 보낸 선지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크리스찬, 유태교, 이슬람은 실제 같은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알 아쿠사가 성지가 된 것은 선지자 무하마드 혹은 모하메드와 관련이 있다. 무하마드는 이슬람의 성전 쿠란을 기록한 이슬람의 핵심적 선지자다. 무하마드는 성지메카로부터 하룻 만에 버락이라는 신비의 동물을 타고 이곳으로 여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두번의 기도를 하고 그는 하늘로 올라가 천사가브리엘을 만났다. 그리고 무슬림은 하루에 5번의 기도를 한다는 규칙을 받는다. 알아쿠사는 이슬람에서 세번째로 중요한 성지로 말해지는데 그곳에서 한번 기도를 하면 다른 모스크에서 기도한 것보다 오백배의 효과가 있다고 말해진다. 알 아쿠사는 이스라엘에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사람들이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알 아쿠사의 자리에는 고약한 악연이 있다. 무슬림의 성지인 이 자리는 유태인들도 최고로 성스럽게 생각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는 본래 유태인들의 예루살렘 유대교회가 서 있었다.  그런데 1세기 때 로마인들이 침입하여 이 유대 교회를 파괴한다. 그 이후에 그 자리에 선 것이 바로 알 아쿠사와 바위의 돔이다. 

 

유태인들이 최고 성지로 여기는 자리에 이슬람에서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모스크가 서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물론 유태인들은 그 자리의 모스크를 허물고 유태인교회를 세우는 것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 교회가 2000년 전에 무너진 교회라도 말이다. 설사 유태인이 그렇지 않다고 부인 해도 이슬람교도들은 그런 의심을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한번은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유태인 샤론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 아쿠사를 방문했다. 이것은 대단한 도발로 받아들여져 팔레스타인 분쟁은 즉각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다.

 

1929 8 15, 아직 영국이 이스라엘 지역 다시말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당시, 몇 백명의 유태인 시오니즘 군중이 이스라엘의 서쪽 벽에 모여 들었다. 그들은 이 벽은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태인의 국기를 꼽고 시오니즘 노래를 불렀다. 그 벽에 누구도 아무것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 규정 때문에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1929년의 시오니즘 군중집회는 아랍사람과 유태인간의 폭력적 싸움으로 번졌다. 이렇게 시작된 팔레스타인 폭동은 249명의 사망자와 339명의 부상자를 내고서야 정리가 된다. 1929년의 팔레스타인 폭동 이전에는 무슬림과 유태인과 크리스찬은 예루살렘에서 그냥 섞여서 살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폭동 이후 사는 구역은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아주 소수의 유태인만이 무슬림 지역에 살고 있다.

 

문제의 서쪽 벽이 이렇게 중요한 것은 이 벽이 무너진 유대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19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 이스라엘 서쪽 벽은 약 57미터의 길이이며 통곡의 벽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유태인들이 성스런 교회가 무너진 것을 슬퍼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통곡의 벽에 가면 많은 유대인들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기 있다. 그 위치는 바로 이슬람 사원 알 아쿠사의 바로 앞이다. 즉 유대교회가 서 있었던 시대에 존재하던 벽 앞에서 유대교회가 무너져 있음을 슬퍼하는 장소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자리에 교회를 두 번 세웠다. 기원전 10세기에 솔로몬 왕이 세운 교회는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 다시 만들어진 교회는 로마인이 1세기에 파괴하였다. 그리고 유대인의 믿음에 따르면 세번 째 교회가 선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번째 교회의 자리에 세 번째 교회가 서는 것은 바로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을 상징한다. 이 메시아란 물론 유대인의 메시아로 유대민족의 번영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번째 교회의 건설이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유대정교신자나 극보수 유대인들인 하레디 신자들이 하는 하루 세 번의 기도에는 이 교회가 다시 서기를 기원하는 것이 포함되어져 있다고 한다. 이 기도는 물론 이슬람 사람들 마음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남의 성지 앞에서 우는 것도 싫을 것이다. 성지는 누구의 것인가. 예루살렘은 매우 붐빈다. 그 좁은 땅에는 천국과 번영으로 가는 신화가 최소한 세가지나 있다. 같은 크리스찬도 인종에 따라 갈라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구역을 나누어 살고 있다.

 

인터넷과 비행기여행과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세상은 이 올드시티처럼 좁아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전세계가 문화적으로 균일해 지는 미래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그들은 세상어디를 가나 이미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코카콜라를 마시고 청바지를 입는다면서 이미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균일해 졌다고 말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이웃해서 사는 것처럼 거리가 가까워지면 보편의 문화가 저절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하나 강조되는 것은 인간본성의 보편성 같은 것이다. 이에따르면 문화적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는 다른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뿐으로 실은 모든 사람과 인간집단은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그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걸 너무 강조하다보면 문화적 적응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랜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고 일어나기가 얼마나 힘든것인가를 과소평가하기 쉬운 것같다. 여기 사람은 이래서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고 저기 사람은 저래서 이렇게 저렇게 행동한다는 설명을 죽 듣고 있으면 사람들에게 설명 몇마디만 해주면 갑자기 이슬람교도와 유태인이 문제없이 같이 잘살수 있고 중국인이 미국인이 되고 한국인이 일본인이 될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쉽다면 정치적 분란따위는 오늘날 없어야 할것이다.

 

세상이 좁아진다는 것이 반드시 세상사람들이 화합하여 비슷하게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좁은 올드시티에서 서로 갈라져 사는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분열하고 더 많이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젠 세상이 좁아서 서로 부대끼기 때문이다. 올드시티처럼 좁은 곳에서 오랜기간을 동거해도 보편의 문화가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좁아진 세상이라고 해서 보편의 문화가 저절로 나올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오히려 분쟁을 준비해야 할 판이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에 기반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고 전통문화의 유지를 강조하며 혈연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 바로 옆에서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단일민족도 허구고 문화도 역사도 사실 다 남의 것 베끼고 날조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과연 이런 사람들이 단순히 서로 자주 만나게 되면 공통의 문화를 가질 것인가. 그게 아니라 서로의 집단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자신들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분노하고 싸우게 되지 않을까?

 

오늘날에는 전 같으면 주변과 동화되고 말 소수문화가 살아남기에도 좋은 환경이 존재한다. 인터넷이 발달되어 이젠 세계 어디에 있어도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문화권과의 연계를 가지면서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몸은 이스라엘에 있지만 한국의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한국의 뉴스를 매일보고 한국사람들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서 받는 것이 가능하다. 작은 수의 아르메니아 인이 나름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그들의 뒤에 아르메니아라는 문화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아주 소수의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뭉쳐서 그들의 문화를 존속하게 할 수 있는 집단을 만들 수 있다. 한국에 살면서 아랍인이나 베트남인이 자기들끼리만 뭉치게 되기 쉽고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인끼리 뭉치기 쉽다. 한 지역 내에서의 다양성은 크게 증대되기 쉽다.

 

다문화시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좁아지고 있고 다양한 생각을가진 소수파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생존을 추구한다. 세상이 복잡해 지면서 우리나라안에서 여러가지 상황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난다. 특히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고 앞으로는더더욱 그럴것이다. 그러니까 다문화시대를 열어야 한다던가 그러지 말아야 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불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폐쇄냐 개방이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능력의 문제다. 다양성을 포용할수 없으면 결국 폐쇄속에서 후진국이 되던가 열린 속에서 나라가 쑥대밭이 될것이다.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려면 우리의 문화적 중심,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가치를 확실히 하면서 그외의 것에 대해 관용과 포용성을 가져야 하는 것 같다. 하나의 집단은 큰 포용성을 가질수 있지만 한나라에 법이 하나이듯이 중심적 가치, 문화적 중심은 있어야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와 필요에 따라 구부리고 변화할수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집이라고 뭐든지 내식대로 하겠다는 것도 곤란하지만 뭐든지 남이 요구하면 그대로 해준다면 난장판이 될뿐이다. 여러가지 종교적 문화적 충돌이 계속되는 분쟁지역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양보할수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깝다고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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